전기요금서 ‘수신료’ 떼어 관리비에…분리징수 시행령 ‘조삼모사’

최성진 기자 2024. 5. 24. 07: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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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송법 시행령 1년, ‘졸속’ 수신료 분리징수 여전
거듭되는 현장 혼란에 ‘시행령 돌려막기’까지
전국언론노동조합 한국방송(KBS)본부 조합원들이 지난 13일 오후 재난방송 점검을 위해 서울 여의도 한국방송을 찾은 김홍일 방송통신위원회 위원장(맨 오른쪽)에게 수신료 분리고지 중단을 촉구하는 손팻말 시위를 하고 있다. 전국언론노동조합 한국방송본부 누리집 갈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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티브이(TV) 수신료를 전기요금과 통합 고지·징수하지 못하게 하는 내용의 방송법 시행령 개정안이 마련된 지 1년 가까이 지났으나, 정부가 추진하는 ‘수신료 분리징수’가 현장에 뿌리내리지 못하고 있다. 아파트 등 공동주택 입주자에 대한 분리 고지·징수 업무를 두고 한국전력과 한국방송(KBS), 아파트 관리사무소가 저마다 다른 입장과 해석을 내세우고 있어서다. 국토교통부는 최근 수신료를 아파트 관리비에 포함해 걷을 수 있도록 공동주택관리법 시행령 개정안을 입법예고했으나, 관리사무소를 대표하는 대한주택관리사협회가 ‘개별 가구의 수신료 납부를 대행할 수 없다’며 반대 의견을 내는 등 논란이 계속되고 있다. 지난해 윤석열 정부가 일방적으로 밀어붙인 수신료 분리징수가 현장에서 어떤 난맥상을 빚고 있으며, 정부가 내세운 추가 해법에는 어떤 문제가 있는지 살펴봤다.

■ 분리징수 위해 나온 ‘관리비 통합징수’ 시행령

23일 정부와 한국방송, 대한주택관리사협회 취재를 종합하면, 국토교통부는 지난 13일부터 열흘간 공동주택관리법 시행령 개정안을 입법예고했다. 개정안은 아파트를 비롯한 공동주택의 관리 주체가 입주자 대신 티브이 수신료를 낼 수 있다는 내용이다. 다시 말해 관리사무소가 수신료를 전기요금이나 수도요금처럼 아파트 관리비와 함께 걷어 이를 대신 납부할 수 있도록 한다는 뜻이다.

방송통신위원회(방통위)는 이와 관련해 “한국방송과 한국전력 사이에 수신료 분리징수 업무 관련 협의가 계속 이뤄져왔으며, 이 과정에서 한국방송이 공동주택관리법 시행령 개정이 필요하다는 의견을 냈다”며 “이를 바탕으로 우리가 국토교통부와 협의해 이번 시행령 개정안이 나오게 된 것”이라고 설명했다.

개정안은 지난해 7월 수신료를 전기요금과 분리 고지·징수하도록 방송법 시행령을 개정한 데 따른 후속 조처다. 당시 방통위는 시행령 개정 사유로 “전기요금과 수신료를 분리해 납부하고자 하는 국민의 선택권을 보장한다”는 내용을 강조했다. 분리 고지·징수로 자신이 수신료를 내고 있다는 사실을 명확히 알 수 있도록 하고, 이를 통해 티브이 없는 가구 등의 ‘수신료 안 낼 권리’를 보장하겠다는 취지였다.

반면 이번 공동주택관리법 시행령 개정안은 “공동주택 거주자의 납부 편의를 위해 방송 수신료를 관리 주체가 납부 대행할 수 있는 법령상 근거를 마련”한다는 것을 제안 이유로 들고 있다. 이렇게 되면 수신료는 전기요금에서 분리돼 아파트 주민이 내는 관리비에 통합된다.

정부가 수신료 분리징수 시행 10개월가량 만에 ‘납부 선택권’ 보장을 내세운 수신료 분리 고지·징수 시행령과, ‘납부 편의’를 위한 (관리비) 통합 고지·징수 시행령을 연이어 내놓은 것은 방송법 시행령 개정 10개월이 되도록 수신료 분리징수가 정착하지 못하고 있는 현실에서 비롯한다.

■ ‘징수 업무 폭탄 돌리기’, 결국 관리소장 몫

앞서 정부는 지난해 7월 수신료 분리 고지·징수 시행을 발표하며 “수신료를 전기요금과 완전히 분리해 고지·징수하기 위해서는 수납 시스템 보완 등에 불가피하게 일정 기간이 소요될 것으로 예상”되는 만큼 한시적으로 통합 고지를 유지하겠다면서, 과도기 분리납부 방법을 주거 유형별로 안내했다. 특히 관리비 고지서에 전기요금과 수신료가 합산 청구되는 공동주택 개별 가구의 경우 “(희망자는) 관리사무소에 수신료와 관리비의 분리납부를 신청해야 한다”고 보도자료에 적시했다.

갑작스럽게 수신료 분리납부 업무를 떠맡게 된 아파트 관리사무소와 대한주택관리사협회는 이에 반발했다. 그동안 한전 각 지역사업소는 아파트 개별 가구가 아니라 관리사무소와 전기사용 계약을 맺고 전체 가구의 전기요금을 받아왔고, 수신료는 여기에 포함돼 있었다. 그런데 방송법 시행령이 개정된 만큼, 한전이 관리사무소에 보내는 전기요금 고지서에 수신료를 끼워 넣는 행위는 ‘위법 행위’라는 게 이 협회의 주장이다.

이 협회는 한걸음 더 나아가 정부가 방송법 시행령 개정 이후 두차례에 걸쳐 전기요금과 수신료의 통합 고지·징수의 한시적 유지를 요청한 뒤, 한전과 한국방송 등 어디서도 징수 업무를 누가 어떻게 가져갈지 뚜렷한 해법을 내놓지 않자 지난해 말 수신료 업무 중단을 선언하기에 이르렀다.

방송법 시행령 개정 이후 최근까지 수신료 업무에서 완전히 손을 떼지 못한 한전에서도 반발이 일었다. 특히 한국전력 노동조합은 수신료 분리징수 관련 민원이 한전에 쏟아지고 있다며 지난 2월 말부터 주요 일간지 광고 게재와 한국방송 앞 집회를 통해 ‘수신료 분리징수 업무 한국방송 이관’을 요구해왔다. 한전은 지난 3월 말 한국방송이 ‘4월부터는 아파트 수신료 업무를 본사가 수행할 것’이라고 사내에 공지했다가 이틀 만에 이를 다시 번복하자, 급기야 4월17일 한국방송에 ‘수신료 징수업무 위·수탁 계약 종료’를 통보했다.

■ “수신료 미납액 100억원 육박, 위법 행정 결과”

공동주택관리법 시행령을 고쳐 아파트의 수신료 징수 업무를 관리사무소 몫으로 떠넘긴다면, 한국방송과 한전의 업무 이관 협의는 탄력을 받을 수 있지만 문제는 여전히 남는다. 수신료 징수 업무의 범위에는 단순히 고지·징수만 있는 게 아니라 티브이 수상기 보유 여부에 대한 실태 파악 및 미납 가구나 납부 거부 가구 관리 등이 모두 포함되는데, 한국방송과 관리사무소가 이를 어떻게 나누느냐에 대한 정리도 필요하다.

대한주택관리사협회 쪽에서는 수신료 고지·징수 주체 등에 대한 논의는 애초 분리징수 시행 이전에 이해당사자가 모여 협의했어야 할 사안인데, 이제 와서 또 다른 시행령 개정으로 이를 관리사무소에 떠넘기려는 태도부터 이해하기 어렵다는 반응이다. 김이정 정책팀장은 “이번 시행령 개정안에 대한 협회의 기본 입장은 반대지만, 일정 금액의 수수료를 받는 조건으로 수신료 업무 대행을 받아들일 가능성은 남아 있다”며 “그렇더라도 미납 가구에 대한 관리만큼은 받아들여서는 안 된다는 것이 관리사무소 현장의 목소리”라고 전했다.

실제로 지난해 방송법 시행령 개정 이후 아직 수신료 분리 고지·징수가 본격 시행되기 전인데도, 이미 분리납부를 신청한 시청자는 34만가구(일반주택 포함)에 이르는 것으로 알려졌다. 전국언론노동조합(언론노조) 한국방송본부 설명을 들으면, 이들 가운데 대다수(95%)는 수신료를 제대로 내지 않고 있다고 한다. 수신료 분리납부를 납부 거부 수단으로 활용하고 있다는 것이다.

더 큰 문제는 한전이 관리사무소를 통해 받은 분리납부 신청서 중에는 손글씨로 작성돼 필체를 제대로 파악하기 어려운 경우, 입금자 이름만 있을 뿐 동·호수 표기가 없는 경우, 연락처가 없거나 잘못 표기된 경우 등이 상당수 포함돼 미납 가구에 대한 관리가 불가능에 가깝다는 점이다. 이에 언론노조 한국방송본부 등은 수신료 재원의 감소로 이어질 게 명백한 만큼, 주먹구구식으로 추진되는 분리징수를 중단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한국방송본부는 23일 성명에서 “지난해 7월 개정된 방송법 시행령은 수신료와 전기요금의 결합고지를 금지하는 내용이 전부인데, 방통위는 아파트 입주민이 분리납부를 선택할 수 있는 것처럼 혼란을 줬다”며 “(이는) 34만가구의 분리납부 신청을 낳았고, 지금까지 100억원에 육박하는 미납 금액을 발생시켰다. 이것이야말로 명백한 월권이자 위법적 행정”이라고 주장했다. 이어 “분리고지 시행령은 추진의 대상이 아니라 철저한 조사와 폐기의 대상일 뿐”이라며 회사 쪽의 분리고지 본격 시행 중단을 촉구했다.

한편 한국방송은 분리납부에 따른 미납 규모와 이에 대한 징수 책임이 어디에 있는지를 묻는 한겨레의 질의에 “분리납부 신청 가구의 수신료 납부율은 현재 확인하기 어렵지만 (노조의) 수납률이 5%라는 주장은 사실과 다르다”며 “징수 책임의 주체는 수신료 미납이 발생한 사유나 원인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고 답변했다.

수신료 분리 고지·징수에 따른 준비가 충분하지 않은 상태에서 이를 강행할 경우 공영방송 재원 건전성이 취약해질 수 있다는 지적에 대해서는 “본격적인 분리고지 전환 이후에도 비용 절감과 수납률 유지를 위한 이메일 및 모바일 청구 전환, 자동이체 등록 유도, 미납자에 대한 효율적인 관리 방안 등을 마련해 수신료의 안정적 운영을 도모하겠다”고 덧붙였다.

최성진 기자 csj@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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