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계자', 따라가기 힘든 '혼돈 서사'와 주연 배우의 장악력 부재 [시네마 프리뷰]

정유진 기자 2024. 5. 24. 07:00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영화 '설계자' 리뷰, 29일 개봉
'설계자' 스틸 컷

(서울=뉴스1) 정유진 기자 = *영화의 주요 내용을 포함한 스포일러가 있을 수 있습니다.

'범죄의 여왕'(2016)은 '그해의 발견'이라 불러도 좋을 만큼 흥미로운 범죄물이자 블랙 코미디였다. 스타 캐스팅도 아니었고, 상업 영화 수준의 제작비가 들어간 작품도 아니었지만 서스펜스 넘치는 연출과 탄탄한 이야기, 재기발랄한 '아줌마' 주인공 미경(박지영 분)의 유쾌한 매력이 신선한 즐거움을 줬다. 그리고 이 '범죄의 여왕'을 연출한 이요섭 감독이 약 8년 만에 내놓는 신작이 바로 배우 강동원 주연 '설계자'다.

지난 23일 언론배급시사회를 통해 공개된 영화 '설계자'(감독 이요섭)는 감독의 전작이 일궈놓은 기대감에 부합하지 않는 작품이었다. 99분이라는, 요즘 영화 기준 그다지 길지 않은 러닝 타임임에도 여러 번 시계를 확인할 정도였다. 이야기하고자 하는 바를 효과적으로 보여주지 못한 탓이다. 영화는 엔딩에 가서야 혼돈을 주던 서사의 의미가 무엇인지 밝히는데, 이는 허무하다 못해 엉뚱하게까지 느껴진다.

주인공은 청부 살인을 사고사로 조작하는 설계자 영일(강동원 분)이다. 재키(이미숙 분)와 월천(이현욱 분), 점만(탕준상 분) 등 팀원들과 함께 일하는 영일에게는 한 가지 트라우마가 있다. 1년여 전, 형제나 다름없이 아꼈던 팀원 짝눈(이종석 분)을 사고로 잃은 일이다. 영일은 짝눈을 죽게 한 사고가 '청소부'라고 불리는 거대 청부 조직의 짓이라 믿고 있다. 세상 사람 눈에는 모든 것이 우연처럼 보였겠지만, 사고사 조작 전문가인 영일의 눈에는 그렇지 않은 점들이 들어온다.

'설계자' 포스터

그러던 중 새로운 의뢰가 들어온다. 유력 정치인의 딸 주영선(정은채 분)이 아버지 주성직(김홍파 분)을 타깃으로 살인을 요청한 것. 영일과 팀원들은 어떤 방법으로 사고사를 조작할지 의논한다. 계획한 대로 완벽하게 맡은 임무를 수행해 가고 있던 순간, 예상치 못한 일이 영일과 팀원들에게 닥친다. 임무는 완수했지만, 일부 팀원의 희생을 막을 수 없었고, 영일은 꼬여버린 상황들 속에서 청소부의 흔적을 느낀다. 1년 만에 재등장한 청소부. 그는 누구이며 누구를 타깃으로 하고 있을까. 영일은 주변에 있는 모든 이들을 의심의 눈초리로 보기 시작한다.

대강의 줄거리를 파악할 수 있으나, 영화 속 이야기에 몰입하기는 어렵다. 생각보다 많은 캐릭터가 '의미심장'하게 등장하는데 이처럼 산만한 인물 활용이 정작 영화의 주요 내용을 파악하는 데 어려움을 준다. 청소부로 의심되는 인물들의 수상쩍은 점들을 보여주는 '떡밥'을 산발적으로 흩어놓고 끝에 가서 숨가쁘게 마무리를 지으려 하니 보는 입장에서는 혼란스럽기만 하다. 차라리 '청소부 후보'들을 점진적으로 소거해 가다 지금의 결말에 이르렀다면 몰입에는 도움이 됐을 것이다.

몰입에 어려움을 준 또 하나의 요소는 주연 배우였다. 강동원은 매력적인 배우지만 이토록 주인공의 장악력이 중요한 작품에서는 그 매력이 발휘되기 어려웠다. 결국 '설계자'는 관객들로 하여금 주인공에게 몰입하게 해 그가 보고 믿는 것들을 따라가게 만드는 것이 중요한 작품이었으나, 영화 속 영일의 생각과 반응을 따라가는 것은 쉽지 않았다. 과연 배우에게 걸맞은 역할을 맡은 것인지 의문을 갖게 된다. 더불어 영화가 이 시대 관객들에게 말하고자 하는 것이 무엇이었나 생각해 봐도 뚜렷하게 잡히는 게 없이 혼란스럽다. '혼돈' 그 자체였을까.

'전우치'(2009)와 '두근두근 내 인생'(2014) '검은 사제들'(2015) '골든 슬럼버'(2018) '브로커'(2022) 등 다수의 작품을 함께 한 제작사 집과 강동원이 다시 한 번 의기투합한 작품이다. 원작이 있다. 홍콩 영화 '엑시던트'(감독 정 바오루이)다. 원작에서 남자였던 재키(이미숙 분)의 캐릭터를 여성으로 바꾸고, 월천(이현욱)에 특별한 정체성을 부여한 점은 흥미로운 설정으로, 어느 정도 차별화가 되는 지점이었다. '대세' 이무생과 김신록의 존재감만은 돋보였다. 오는 29일 개봉.

eujenej@news1.kr

Copyright © 뉴스1.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및 재배포, AI학습 이용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