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영서의 글로벌 아이] `강경파` 라이시의 사망, 이란은 어디로 갈 것인가

박영서 2024. 5. 24. 06: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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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경파' 에브라힘 라이시 이란 대통령이 불의의 헬리콥터 추락 사고로 숨졌다. 이란 최고지도자 아야톨라 세예드 알리 하메네이의 뒤를 이을 것으로 예상됐던 그의 갑작스런 부재는 국내외적으로 파장을 일으킬 것으로 보인다. 중동 정세가 급변할지, 이란 내부에서 권력투쟁이 가열될지 등에 국제사회는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미제 헬기 부품 못 구해서 추락?

이란은 라이시 대통령의 헬기 추락 사망 사고의 원인으로 '기술적 고장'을 언급했다. 다시 말해 부품 문제로 인해 사고가 발생했다는 것이다. 이에따라 서방 제재로 정상적인 유지보수가 어려운 것으로 알려진 이란의 항공기 운용 실태가 주목받고 있다.

라이시는 사고 당시 미국산 벨-212 헬기를 타고 있었다. 해당 헬기는 1960년대 후반 개발된 노후 기종이다. 미국 업체인 벨 헬리콥터가 만든 헬기로 1968년 초도비행을 했다. 이 기종은 2개의 날개(블레이드)에 쌍발 엔진을 장착했으며 최대 탑승 인원은 15명이다.

벨-212 헬기는 샤(이란 국왕)의 집권 후기인 1976년 상업적 형태로 처음 도입됐다. 이번 추락 헬기는 30년 전인 1994년 이란 공군에 인도된 것으로 파악됐다. 현재 이란은 벨 212 기종 13대를 포함해 62대의 벨 헬기를 운용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그동안 이란은 미국 등 국제사회의 제재로 항공기 부품 조달에 어려움을 겪어왔다. 서방에서 새 항공기를 도입하거나 부품 구매 및 유지보수 계약을 할 수 있는 길이 막혀 있는 상태다. 이는 여러 차례 항공기 추락 사고로 이어졌다.

이와 관련, 모하마드 자바드 자리프 전 이란 외무장관은 자국에 제재를 가한 미국이 이번 헬기 추락 사고에 책임이 있다고 주장했다. 자리프 전 장관은 "애통한 이번 사고의 원인 중 하나는 미국이다. 미국은 항공업계가 이란에 판매하는 것을 제재해 대통령과 그 일행들의 순교를 초래했다"면서 "미국의 범죄는 이란 국민의 마음과 역사에 기록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미국은 반박했다. 매슈 밀러 미 국무부 대변인은 "악천후로 묘사되는 상황에서 노후 헬기를 띄우기로 한 결정의 책임은 이란 정부에 있다"고 밝혔다. 존 커비 백악관 국가안보소통보좌관도 "전적으로 터무니없는 소리"라고 일축했다.

◇중동정세 소용돌이 치나

라이시는 이란의 차기 최고지도자 1순위 후보로 거론돼온 강경 보수 성향의 인물이다. 그는 지난 2021년 8월 취임 이후 근 3년간 시아파 맹주 이란의 초강경 이슬람 원리주의 노선을 이끌어왔다.

지난 2022년 시작된 이른바 '히잡 시위'가 전국적인 반정부 시위로 확산하자 그는 국제사회의 비판을 무릅쓰고 시위대를 유혈 진압했다. 지난달 이스라엘이 주시리아 이란 영사관을 폭격하자 이스라엘 본토를 사상 처음으로 보복 공격하는 등 대외적으로도 초강경 이미지를 굳혀왔다.

이런 강경 노선을 진두지휘해온 라이시의 부재는 7개월 넘게 이어지는 가자전쟁 등 요동치는 중동 정세에 일정 정도 영향을 미칠 수 밖에 없을 것이다. 특히 이란과 대척점에 서며 각종 제재 등을 주도해온 미국은 당혹스럽다. 오는 11월 대선을 앞두고 불거진 돌발 상황이 향후 미칠 여파에 셈법이 복잡해 보인다.

◇이란 내부도 불확실성 커져

이번 사고가 이란 내부에 불러올 영향도 작지 않을 것으로 예상된다. 경제난, 개인적 자유에 대한 통제, 사생활 억압 때문에 국민의 불만이 누적된 상태다. 히잡 의문사를 계기로 촉발된 전국적 반체제 시위가 언제 다시 터질지 모르는 상황이다.

이런 위기의식 속에서 이란은 오는 6월 28일 대통령 보궐선거를 치러 후임자를 뽑는다. 후임자 결정의 열쇠를 쥐고 있는 세력은 이란혁명수비대(IRGC)다. 혁명수비대는 한때 최고지도자의 '경호부대'였지만 지금은 그것을 넘어서는 압도적 조직이 됐다. 혁명수비대는 막대한 예산을 향유하고 있고 감사도 받지 않는다. 사실상의 성역이 된 것이다. 그래서 혁명수비대의 지지를 받는 인물이 대통령과 최고지도자의 자리에 오를 수 있다는 말이 나온다.

라이시의 뒤를 이을 가장 유력한 후보로 최고지도자 하메네이의 둘째 아들 모즈타바 하메네이(54)가 거론된다. 모즈타바는 강경 보수 성향의 엘리트 성직자로 이란 정계의 막후 실력자로 평가받는다.

혁명수비대의 지원으로 모즈타바가 대통령이 되면 정국이 또다른 혼란에 휘말릴 가능성이 있다는 시선도 있다. 영국 가디언은 "지도자 자리의 세습은 많은 성직자들이 이란의 혁명 원칙에 맞지 않는다며 반대하는 대목"이라고 짚었다. 성직자들과 군 세력간 파워 싸움이 현실로 닥칠 수 있다는 것이다.

영국 이코노미스트는 "모즈타바가 지도자 자리에 오를 경우 반발을 견디기 위해 혁명수비대에 더욱 의존할 것이며, 이는 결국 정권 내의 IRGC 역할을 강화할 수 있다"며 "그 결과 이란이 성직자와 군부가 권력을 분점하는 '혼합정권'에서 '군사정권'으로 발전할 가능성도 있다"고 내다봤다. 이어 "이런 가능성이 현실화한다면 종교적 보수주의가 약화할 수 있지만, 대외정책 면에서는 서방 등에 대한 적대감을 강화하는 쪽으로 나아갈 수 있다"고 관측했다.

최고지도자의 영향력이 절대적이라 라이시 대통령의 죽음이 이란의 주요 국내외 정책에 큰 변화를 일으키지 않을 것이란 게 중론이다. 하지만 '우연한' 일이 세계를 뒤흔들었던 사례를 우리는 역사를 통해 알고 있다. 이번 사건이 아니더라도 세계는 이미 불확실성에 빠져있다. 이런 시기에 이란에서 정치적 불확실성이 고조되고 있다는 점은 우려를 더한다. 이란의 권력 승계 흐름을 우리가 면밀히 주시해야할 이유다.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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