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미상' 한국계 美 엔지니어 영인(YUNGIN), 프로듀서 데뷔 "정체성 찾아가는 여정"

이재훈 기자 2024. 5. 24.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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켄드릭 라마·닙시 허슬·나스 음반 믹싱…세 차례 그래미
데뷔 싱글 '노 로우키'·두 번째 싱글 '홈식' 호평
9월 첫 정규 '디드 유 노우?' 발매
[서울=뉴시스] 영인(YUNGIN). (사진 = KYTE 제공) 2024.05.24. photo@newsis.com *재판매 및 DB 금지

[서울=뉴시스]이재훈 기자 = 뮤지션이 음악을 만들지만, 음악이 뮤지션을 만들기도 한다.

'그래미 어워즈' 수상자인 오디오 엔지니어 데이비드 "영인" 김(David "YUNGIN" Kim·37·김영인)은 삶의 특수성이 음악을 통해 어떻게 보편성을 획득하는지 증명한다.

한국계 미국인으로서 현지 주류 대중음악 신에 확실히 자리잡은 그는 우리를 감동시키는 건 극적인 다른 삶에 끼어든 평범함이라는 걸 보여준다.

서울에서 태어나 네 살 때 미국 로스앤젤레스(LA)로 이민을 간 영인은 처음엔 미국 미식축구 리그(NFL) 스타를 꿈꿨다. 하지만 부상으로 꿈을 접어야 했다. 그런데 그것이 음악을 '터치다운(touchdown)' 할 수 있는 기회를 줬다.

이후 할리우드 유명 음악학교 '뮤지션스 인스티튜트(MI)'에서 공부했다. 아리아나 그란데, 켄드릭 라마, 나스, 히트-보이(Hit-boy) 등과 작업하는 유명한 음향 엔지니어가 됐다. 특히 켄드릭 라마, 닙시 허슬 그리고 자신이 전곡을 믹스한 나스의 13집 '킹스 디지즈(King's Disease)' 등 힙합 뮤지션들의 음반 엔지니어로서 총 세 차례 그래미를 받았다.

그런 가운데 데이비드 "영인" 김은 자신의 뿌리에 대한 유효함을 잊지 않으면서, 끊임없이 꿈을 꾸고 있다. 프로듀서로 나서면서 지난달 발매한 데뷔 싱글 '노 로우키(No Lowkey)' 그리고 이달 16일 공개한 두 번째 싱글 '홈식(Homesick)'이 그 증거다.

'노 로우키'는 미국 프로듀서 차 차 말론(Cha Cha Malone)이 프로듀싱을 함께 했고, 래퍼 제시와 카모가 피처링했다. 영인의 역동적인 프로덕션 스타일을 담고 있어 그가 프로듀서로 펼쳐나갈 정경을 드라마틱하게 그려낸다.

'홈식'은 데이비드 "영인" 김이 올해 하반기 발매 예정인 데뷔 앨범 '디드 유 노우(Did You Know)?'의 오프닝 트랙이다. 캐나다 토론토 출신으로 래퍼 드레이크의 프로듀서로 유명한 프란시스갓히트(FrancisGotHeat)가 공동 프로듀싱했다.

데이비드 "영인" 김, 한국계 캐나다인으로 토론토 출신인 폴 블랑코(Paul Blanco)', 최근 전역한 래퍼 창모가 변화된 환경에서 느꼈던 감정들을 솔직하게 그렸다.

특히 폴 블랑코는 "영인은 제가 한국인이라는 사실에 자부심을 느끼게 해주는 아티스트"라고 말했다. 데이비드 "영인" 김도 어릴 적 한국계 미국인 래퍼인 타이거JK로부터 영감을 받았다.

데이비드 "영인" 김은 뉴시스와 서면 인터뷰에서 "첫 앨범 '디드 유 노우?'는 제 정체성을 찾아가는 여정이며 그 과정에서 실험을 통해 마침내 지금의 저에 대해 자신감을 갖게 되는 걸 목표로 하고 있다"고 말했다. 다음은 그와 나눈 일문일답.

-프로듀서 데뷔를 결심한 계기는 무엇이었나요? 이미 정상급 엔지니어로서 부담도 있었을 것 같습니다.

"저는 항상 음악을 만들고 싶었습니다. 엔지니어로서 항상 다른 사람들이 작업한 걸 개선했지만, 프로듀서로서 아이디어를 구상하고 곡에 대한 비전을 만든 건 이번이 처음이죠. 프로듀서의 일은 제게 흥미로운 개념이었습니다. 수년동안 히트보이, 퍼렐 윌리엄스, 메트로 부민, 스위즈 비츠, 팀발랜드와 같은 훌륭한 프로듀서들과 같은 공간에서 일할 수 있는 특권을 누렸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이 길을 걷게 됐습니다. 프로듀서로서 커리어를 시작할 때 우려했던 점은 음악이론이 부족하고 능숙하게 악기를 연주할 수 있는 능력이 부족하다는 것이었습니다. 실제로 음악 제작을 직업으로 삼지 못했던 이유죠. 하지만 많은 훌륭한 프로듀서들과 함께 하면서 배운 것이 있어요. 음악을 연주하는 능력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음악을 듣는 귀가 더 중요하다는 것이요. 저는 항상 좋은 소리를 듣는 귀가 있었고, 이번 프로젝트를 통해 마침내 용기를 낼 수 있게 됐죠."

-'노 로우키'는 정말 좋은 노래예요. 긴장하게 만드는 비트와 신호가 있어요. 이 곡을 데뷔곡으로 정한 이유가 있나요?

"음악 신에 큰 파장을 일으키고 싶었습니다. 그러기 위해선 제시보다 더 좋은 파트너는 없었죠. 예전부터 제시, 카모와 함께 곡을 만들고 싶다는 생각이 있었는데, 이번이 완벽한 기회였죠."

-차 차 말론과 협업은 어땠나요?

"차차와의 인연은 몇 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인스타그램를 통해 로스앤젤레스(LA)에서 만났고, 믹싱이나 프로덕션 관련 음악적 팁을 서로 공유했죠. 저는 그의 프로듀싱을 좋아했어요. 엑소 카이의 솔로 데뷔 앨범에 수록된 곡을 함께 작업하기도 했죠."

-제시, 카모와 협업도 큰 시너지를 냈습니다.

"제 친구 알렉스 강이 소셜미디어를 통해 제시를 소개해줬고, 바로 친해졌습니다. 그녀는 저에 대해 들어본 적이 있었고 저 역시 그녀의 작업에 대해 잘 알고 있었죠. 인스타그램 DM을 통해 아이디어를 제안했을 때 그녀는 전적으로 동의했습니다. 카모와는 데뷔 앨범 때부터 인연을 맺어왔습니다. 몇 년 전 서울에서 카모의 A&R인 제 친구 토르스텐을 통해 만났어요. 서로 다른 에너지를 가지고 있어서 함께 작업하는 건 정말 즐거운 경험이었습니다. 제시는 어떤 공간이든 밝게 빛내주는 에너지를 가지고 있었고, 카모는 매우 시원하면서 젊은 에너지를 가져와 보고 듣는 것이 매우 신선했습니다."

-발매를 예고하신 '디드 유 노우?'는 인생의 여정을 담게 될 앨범이라고 소개하셨습니다. 일종의 자전적 앨범인가요?

[서울=뉴시스] 영인(YUNGIN). (사진 = KYTE 제공) 2024.05.24. photo@newsis.com *재판매 및 DB 금지

"앨범 제작이 다소 지연돼 9월초 발매를 목표로 하고 있습니다. 콘셉트는 다소 자전적이지만 피처링 아티스트와 청취자들이 공감할 수 있는 내용입니다. '디드 유 노우?' 파트 1은 항상 놓치고 있었던 저의 한 부분을 표현할 것입니다. 전 한국계 미국인으로서 '집'의 개념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는데, 이제는 집이 지리적 위치가 아닌 마음의 상태라는 것을 알게 됐어요. 이 앨범은 저의 정체성을 찾아가는 여정이며, 그 과정에서 실험을 통해 마침내 지금의 저에 대해 자신감을 갖게 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습니다."

-당신은 유명하고 실력 있는 아티스트들과 작업해왔기 때문에 본인의 작업물에 대한 완성도에 대해서도 더 엄격할 거 같아요,

"작년 7월 열 두 곡의 아이디어를 가지고 서울에 왔는데 열흘 만에 모두 녹음할 수 있었어요. 제 친구 디앤서니(defnelson)가 자신의 녹음 스튜디오에서 숙소를 제공해 줬고, 10일 동안 모든 아티스트가 참여할 수 있을 만큼 스케줄이 잘 맞아 떨어졌죠. 업계에서 10년 넘게 일하면서 이런 상황에 대비해 온 것 같아 마음이 편해졌어요. 서울에서 일하면서 오히려 더 편했고 고향 같은 느낌을 받았죠."

-당신의 삶은 특별했죠. 그로 인해 당신의 음악도 더 특별해지는 거 같아요. 음악이 당신에게 처음 다가왔을 때 의미랑 지금 당신에게 음악의 의미가 차이점이 있나요?

"음악을 처음 접했을 때 음악은 제게 산소와도 같았어요. 음악이 없으면 어디에도 갈 수 없었고, 모든 경험에 항상 음악이배경음악으로 깔려 있었죠. 지금은 음악이 제 직업의 일부가 됐어요. 매일 음악을 많이 듣지는 않지만, 음악이 제 삶에서 미치는 영향은 그 어느 때보다 중요합니다."

-좋은 음악이란 무엇인가요? 좋은 음반을 어떻게 만들어진다고 생각하십니까?

"좋은 음악이란 깊은 감정을 느끼게 하는 모든 것입니다. 기쁨이든 슬픔이든 외로움이든 희망이든 좋은 음악은 누구나 느낄 수 있다는데 동의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좋은 음반은 반복성, 깊은 느낌, 중독성을 구현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또한음악의 아름다움은 주관적이고 사람들이 자신만의 취향을 가지고 있다는 점을 덧붙이고 싶습니다."

-처음으로 구입하신 앨범이 나스 '일매틱(Illmatic)'이라고 들었습니다.

"저의 첫 두 앨범은 나스의 '일매틱'과 '잇 워즈 리튼(It Was Written)'이었어요. 초등학교 때 같은 반 친구로부터 앨범을 소개 받았는데, 사운드가 너무 좋았어요. 물론 그 나이에 소개 받은 다른 아티스트도 좋아했을 수 있었지만 나스가 좋아서 다행이었죠. 그 무렵에는 메이스(Ma$e), 제이지(Jay-Z), DMX, 투팍도 정말 좋아했죠."

-원래 NFL 스타가 꿈이었다고 들었습니다.

"저는 어렸을 때부터 미식축구를 했고 세상에서 가장 좋아하는 일이었습니다. 고등학교 때 미식축구를 한 건 분명 제 인생 최고의 경험 중 하나였어요. 하지만 흥미진진했던 만큼이나, 고등학교 3학년 때 허리를 다쳐 선수 생활을 끝내야 했던 건 가슴 아픈 일이었죠. 매우 힘든 시간을 보냈지만 그 시기를 통해 음악에 대한 제 열정을 깨닫게 됐어요. 힙합은 항상 제 인생에서 큰 부분을 차지했죠. 수학방정식을 공부해야 할 시간에 랩 가사를 외웠던 기억이 납니다. 하하! 오히려 음악을 직업으로 삼을 수 있었기 때문에 부상을 당한 것이 제 인생에서 가장 큰 축복 중 하나였습니다."

-할리우드 명문 뮤지션스 인스티튜트(Musicians Institute·MI)에서 공부하셨습니다.

"MI에 등록했을 때 저는 절망적이었어요. 제 인생에서 제대로 된 것은 아무것도 없었고, 제 스스로 무언가를 만들 수 있는 마지막 기회였죠. 잘 안 되면 인생에서 실패한 거라고 혼자 생각했던 기억이 나요. 다행히 잘 풀렸어요!"

-어떻게 믹싱 엔지니어가 되셨나요?

"저는 대형 녹음 스튜디오에서 인턴을 하는 일반적인 경로를 밟았습니다. 인턴에서 녹음 엔지니어가 되기까지 6년이 걸렸고, 풀타임으로 음반을 믹싱하기까지 4년 정도 더 걸렸어요. 매 단계 마다 조금씩 더 많은 것을 원했고, 그래서 지금 프로듀서이자 아티스트로서 앨범을 내고자 노력하는 것 같아요."

-믹싱 엔지니어로서 가장 중요한 역할은 무엇입니까.

"믹싱 엔지니어로서 제가 가장 중점을 두고 추구하는 원칙은 '균형잡기'입니다. 저는 믹싱하는 곡의 개별사운드를 볼륨(크고 조용함), 팬(왼쪽과 오른쪽)등 여러가지 도구를 사용해 각 요소별로 균형을 맞출 책임이 있습니다. 궁극적으로 믹스 엔지니어의 역할은 아티스트와 프로듀서의 비전을 실현하는 것입니다."

-사운드 엔지니어로서의 역할이 이번 앨범 제작에 어떤 도움이 됐나요?

"주어진 시간 내에 앨범의 대부분을 녹음해야 했기 때문에 녹음 및 믹싱 엔지니어로서의 경험이 없었다면 불가능한 일이었을 것입니다. 저는 수많은 세션에 참여했기 때문에 이 앨범을 프로듀싱하는 것이 매우 자연스러웠습니다."

[서울=뉴시스] 영인(YUNGIN). (사진 = KYTE 제공) 2024.05.24. photo@newsis.com *재판매 및 DB 금지

.-이번 앨범에 참여하는 라인업이 놀라워요, 이미 협업한 뮤지션 외에도 박재범, 신스(SINCE), 소코도모, 로스, 돈밀스, 카드의 BM, pH-1, 저스디스 등이죠.

"앨범을 만들기로 결정했을 때 염두에 두고 있던 협업 뮤지션들의 명단을 작성했어요. 프로젝트에 참여한 아티스트의 절반은 제 이전 고객이었고, 나머지 절반은 제가 함께 작업하고 싶었던 아티스트였습니다. 모두 자신만의 독특한 작업방식과 전문성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제가 프로듀서는 처음이지만 곡을 쉽게 완성할 수 있었어요. 전반적으로 앨범이 나온 방식이 정말 만족스러워요. 모든 사람들이 이 앨범을 들었으면 합니다."

-미국 힙합과 한국 힙합을 잇는 가교가 되고 싶다고 하셨습니다. 두 나라의 힙합 신에서 가장 중요한 건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나요? 전성기가 지났다는 한국 힙합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힙합은 한국뿐만 아니라 미국에서도 대중적인 트렌드가 있다고 봅니다. 힙합이 더 이상 대중적이지 않을 때, 트렌드를 쫓는 사람들이 걸러지고 진정성이 다시 돌아올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해요. 그리고 한국 힙합 최고의 때는 아직 오지 않았다고 생각해요."

- 태연, 백현, 카이, 타이거JK 등 국내 뮤지션들과도 작업해오셨습니다.

"태연, 백현, 카이는 모두 원격 근무를 했어요. 타이거JK와는 직접 작업했죠. 타이거JK는 나스처럼 저의 어렸을 때 우상 중 한명이었는데 한국인이었어요. 주노 플로를 통해 처음 만났어요. 그의 드렁큰 타이거로서 마지막 앨범인 '드렁큰 타이거 엑스 : 리버스 오브 타이거 JK(Drunken Tiger X : Rebirth Of Tiger JK)' 수록곡 대부분을 제가 믹싱하게 됐죠. 그 경험은 제 인생에서 큰 힘이 됐어요. 덕분에 한국 아티스트와 작업하는 데 더 편안해졌죠. 그는 한국계 미국인으로서 저에게 희망을 줬고, 지금도 제게 큰 영감을 주고 있습니다."

- 최근 북미에서 K-POP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는 추세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당신은 생각합니까? 실제로 K팝 인지도가 높아졌다?

"우리 국민들의 잠재력을 보여주는 증거라고 생각합니다. 작은 나라의 역사를 고려할 때, 케이팝이 세계에서 가장 인기 있는 음악 장르 중 하나가 되었다는 것은 놀라운 일입니다. 개인적으로 미국에서의 관심을 직접 확인했고, 케이팝은 앞으로도 계속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한국 아티스트가 프로듀싱한 앨범으로 그래미상을 받는 것이 꿈이라고 하셨는데요. 그 꿈이 빨리 실현될 것 같나요?

"제가 보기에 가장 쉬운 방법은 서구권과 협업입니다. 불과 10년 전만 해도 한국 아티스트가 빌보드 차트 1위를 차지하는 것은 불가능해 보였지만, 그런 일이 일어나는 것을 봤잖아요. 앞으로 5~10년 뒤에 어떤 일이 일어날지 누가 알겠습니까?"

-몇 년 전부터 한국 아티스트들과도 적극적으로 협업하고 계십니다.

"제 인생의 대부분을 로스앤젤레스 문화에 동화되기를 갈망했고, 그 과정에서 무심코 제 자신의 유산을 소홀히 했습니다. 하지만 2018년 신혼여행에서 저는 제 뿌리와 깊은 정서적 교감을 경험 했습니다. 그 이후로 저는 한국 아티스트들과 협업할 기회를 적극적으로 찾았어요. 그들과 함께 작업하면서 엔지니어이자 프로듀서로서 제 기술을 향상시키는 풍부한 학습 경험을 할 수 있었습니다."

-래퍼이면서 사회운동가였던 닙시 허슬과 작업하며 좋은 사람이 되기로 결심하셨다는 이야기를 전해들었습니다. 좋은 사람이 좋은 음악가를 만드나요?

"좋은 사람이 반드시 좋은 뮤지션이 되는 것은 아니지만, 좋은 사람이 문화에 깊은 인상을 남기는 것은 분명합니다. 저는 닙시 허슬을 통해 노력은 언제나 재능을 이긴다는 것을 배웠습니다."

-사회 운동이나 비영리 활동에도 관심이 많다고 들었습니다.

"저는 사회운동과 비영리 활동, 특히 교육분야에 관심이 많습니다. 저희가 매년 주최하는 AIMFEST는 음악세미나/워크숍의 형태를 띠고 있습니다. 참석자들은 이 행사를 통해 곡의 시작부터 완성까지 전체 제작 과정을 지켜 볼 수 있습니다. 가까운 시일 내에 한국에 프로덕션 및 엔지니어링 아카데미를 설립하는 것이 저의 포부 중 하나입니다."

-마지막 질문입니다. 그래미상과 힙합은 당신에게 어떤 의미가 있습니까?

"힙합은 제게 인생의 두번째 기회를 줬습니다. 미식축구를 하다가 부상을 입어 인생이 끝난 것처럼 느껴졌던 저에게 힙합은 열정을 추구하고 목적을 찾을 수 있는 기회를 제공했습니다. 자신감이 흔들리던 시기에 그래미상 수상은 수년 간의 헌신과 노력이 실제로 결실을 맺을 수 있다는 것을 상기시켜줬습니다."

☞공감언론 뉴시스 realpaper7@newsi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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