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라비안 나이트에 등장하는 거대 조류 ‘로크’의 현실판[멸종열전]

기자 2024. 5. 24.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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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 마다가스카르의 코끼리새 ‘아이피오르니스’
데이비드 애튼버러 경이 1966년 마다가스카르에서 발견한 코끼리새 알. BBC 갈무리

신드바드와 그의 선원들은 항해 중 어떤 무인도에 상륙했다. 낯선 섬을 탐험하다 그들은 지금까지 본 적이 없는 매우 크고 빛나는 거대한 흰색 알을 발견했다. 집채만 한 알을 발견한 선원들은 공경과 두려움을 동시에 느꼈다. 호기심 많고 대담한 모험가였던 신드바드는 완전히 매혹되어 알에 다가갔다. 신드바드와 그의 선원들은 곧 이것이 평범한 알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게 된다.

배고픔과 절망에 빠져 알을 먹기로 결심한 선원들이 알을 깨뜨리자 복수심에 불타는 거대한 맹금류 로크의 어미가 날개로 태양을 가리고 공중으로 배를 들어올린 후 바다에 떨어뜨려 침몰시켰다. <아라비안나이트>에 나오는 이 이야기는 생생한 이미지와 상상력을 자극하는 집 크기의 알이라는 개념으로 수세기 동안 독자들을 사로잡아왔다. 세상에 이렇게 큰 새와 알이 어디에 있겠는가? 그런데 거대한 알이 단순히 신화의 산물이 아니라 현실에 뿌리를 두고 있다면 어떨까?

‘천일야화’라고도 알려진 <아라비안나이트>는 이슬람 황금 시대에 편찬된 중동 민담 모음집이다. 여기에는 여러 세대에 걸쳐 전해져 내려오는 이야기에 역사, 신화, 전설이 섞이면서 관객의 마음을 사로잡는 내용들이 담겨 있다. 로크는 전설 속의 생물이지만 큰 알을 낳는 거대한 새의 개념은 현실에 뿌리를 두고 있다. 지금은 멸종된 마다가스카르의 코끼리새가 그것이다.

지구에서 가장 큰 알

코끼리새, 즉 아이피오르니스(Aepyornis)는 인류와 동시대를 살았던 새 중 가장 큰 새였다. 코끼리새가 살던 곳은 마다가스카르. 지구에서 네 번째로 큰 섬이다. 코끼리새는 마다가스카르의 다양한 동식물이 가득한 울창한 숲과 넓은 초원을 돌아다니며 살았다. 키는 3m에 육박하고 체중이 500㎏에 달했다. 웬만한 공룡과 비슷한 크기였다. 크기만 봐도 코끼리새라는 이름이나 ‘높다란 새’라는 뜻의 아이피오르니스라는 속명이 이해가 된다.

코끼리새의 모습은 강인했는데 다리는 엄청난 무게를 지탱할 수 있도록 튼튼하고 두꺼웠다. 깃털은 거칠고 조밀하여 비바람으로부터 몸을 보호하는 역할을 했을 것이다. 긴 목 끝에는 비교적 작은 머리가 달렸으며 부리는 마다가스카르의 다양한 생태계에 풍부하게 널려있는 과일, 잎, 씨앗을 주로 먹기에 적합했다.

코끼리새는 매우 컸으므로 온순한 거인으로 존재할 수 있었다. 큰 몸집을 유지하기 위해 대부분의 시간을 먹이를 찾는 데 보냈다. 튼튼한 다리 덕분에 지형을 효율적으로 이동할 수 있었고, 긴 목은 높은 곳이나 낮은 곳의 초목을 먹는 데 적당했다.

키 3m·무게 500㎏…웬만한 공룡 크기
주로 초식, 상위 포식자 없어 몸집 키워
인간에 노출되며 11~13세기 멸종 추정
달걀 200배 크기인 알에서 DNA 추출
복원 가능해 언젠가는 다시 만날 수도
9세기 아라비아 탐험가들이 마다가스카르에 도착했을 때는 코끼리새가 살고 있었다. 그들은 아라비안 나이트에 나오는 거대한 새 로크 이야기를 가져왔을 것이다. 하지만 탐험가들의 모험담은 과장되기 일쑤였다. 출처 | 러셀 프랜시스 피터슨의 1913년 그림

코끼리새의 알 크기 역시 어마어마했다. 보통 길이가 34㎝였는데 둘레가 1m에 달하는 사례도 보고되었다. 알 무게는 10㎏, 달걀 200개와 맞먹는다. 그 어떤 공룡의 알보다도 크다. 코끼리새의 알은 지구 자연사에 남아 있는 알 가운데 가장 거대하다. ‘신드바드의 모험’에서 묘사된 것처럼 “집채만 한 알”은 아니지만 상상력을 자극하고 놀라운 이야기를 불러일으키기에 충분한 크기였다. 알의 껍데기는 두껍고 단단하여 그 안에 있는 병아리를 보호할 수 있었다. 약간 거친 껍데기는 알을 더 단단하게 만들었다.

코끼리새의 커다란 알은 이 새의 생물학적 특성과 살았던 환경에 대한 정보를 제공한다. 알의 크기와 견고함은 코끼리새가 자신의 새끼에게 상당한 자원을 투자했음을 시사한다. 이것은 날지 못하는 대형 조류의 공통적인 특성이다. 알이 크다는 것은 새끼가 이미 잘 발달한 상태로 부화하여 출생 후 바로 걷고 먹이를 찾을 수 있었을 가능성이 높다는 것을 의미한다. 알 껍데기 성분을 분석하면 어미 새의 식단에 대해 짐작할 수 있다. 특정 동위원소의 존재를 통해 새들이 어떤 종류의 식물을 섭취했는지 알 수 있기 때문이다. 탄산염의 탄소-13과 탄소-12의 비율을 보면 식단이 나무 같은 C3 식물로 구성되었는지, 아니면 풀 같은 C4 식물로 구성되었는지 확인할 수 있다. 산소-18과 산소-16의 비율에서는 기후조건과 수원에 대한 정보를 얻을 수 있다. 질소-15와 질소-14의 비율에서는 먹이사슬에서의 위치를 알 수 있다. 질소-15의 비율이 높을수록 먹이의 단백질 비율이 높다. 즉 먹이 피라미드에서 상위를 차지한다는 뜻이다.

코끼리새 알 껍데기에 대한 방사성 동위원소 분석 결과 코끼리새는 주로 C3 식물, 즉 나무를 먹었던 것으로 밝혀졌다. 이것은 코끼리새가 열린 초원보다는 숲이나 수풀이 우거진 환경에서 먹이를 찾았음을 시사한다. 산소 동위원소 구성은 코끼리새가 살던 당시의 마다가스카르 기후가 비교적 안정적이었으며 강우량과 기온의 패턴이 아열대 환경이었다는 것을 보여준다. 일반적으로 질소-15 비율이 낮았다. 주로 초식을 했다는 뜻이다. 그런데 일부 샘플에서는 질소-15 비율이 높아졌는데 코끼리새의 먹이원이 어떤 이유에서 변화를 일으켰기 때문이다.

섬 거대화와 코끼리새

코끼리새의 놀라운 몸집은 섬 거대화 현상 때문일 것이다. 섬 거대화는 섬에 고립된 동물이 본토에 사는 동물보다 훨씬 더 커지도록 진화하는 현상인데 몇 가지 주요 원인이 있다. 우선 많은 섬에는 대형 포식자가 없기 때문에 위협을 받지 않는 초식동물이 몸집을 키울 수 있다. 또 섬에는 먹이와 둥지 같은 자원이 풍부하다. 그리고 본토라면 다른 생물이 채웠을 생태적 틈새를 차지하여 몸집을 키울 수도 있다.

5000만년 전 마다가스카르와 아프리카는 하나의 대륙이었다. 아직 원숭이나 유인원은 나타나지도 않은 시절이다. 그 후 5000만년 동안 마다가스카르 생태계는 대륙과 교류가 거의 없었으며 독자적인 진화의 길을 걸었다. 마다가스카르에는 세계 동식물종의 5%가 살고 있는데 이 가운데 80%는 마다가스카르에만 사는 마다가스카르 고유종이다. 마다가스카르의 동식물은 아프리카와 완전히 다르다. 사자, 기린, 코끼리, 원숭이, 침팬지 같은 것은 없다. 대신 여우원숭이들이 산다. 마다가스카르의 식물 중 9000종은 오직 여기에만 사는 것들이다.

마르코 폴로 여행기에 따른 마다가스카르 코끼리새(왼쪽)와 코끼리새 골격을 구경하는 유럽인을 그린 19세기 그림. 왼쪽 그림에는 하마가 보이지만 마다가스카르에는 하마가 없다. 마다가스카르에는 15세기에 멸종한 난쟁이하마가 살았을 뿐이다.

마다가스카르에도 포사라고 하는 최상위 육식포유류가 있지만 크기가 삵보다 조금 크고 표범보다는 훨씬 작은 정도다. 또 다른 거대한 동물들이 없으므로 거대한 동물이 차지해야 할 생태적 틈새가 텅 비어 있었다. 이것을 코끼리새가 차지하여 날지 못하는 커다란 몸집의 새로 진화할 수 있었다.

섬에서 진화한 거대 조류의 예는 코끼리새뿐만이 아니다. 인도양 섬나라 모리셔스의 도도 새 역시 포식자가 없는 환경에서 키 1m, 몸무게 18㎏의 날지 못하는 큰 새로 진화했다. 뉴질랜드의 자이언트 모아 역시 날지 못하는 대형 조류인데 키 3.6m, 몸무게는 230㎏에 달했다. 날 수 있는 거대 조류도 있는데 뉴질랜드의 하스트독수리가 여기에 해당한다. 하스트독수리는 날개폭이 3m, 무게가 15㎏에 달했는데 모아가 먹잇감이었다. 하스트독수리는 15세기에 모아가 멸종하자 곧 이어 멸종했다.

몸집이 크면 여러모로 유리하다. 더 높은 초목에 있는 다양한 먹이를 섭취할 수 있고, 더 큰 알을 낳을 수 있어 생존율이 높은 튼튼한 새끼를 낳을 수 있다. 또 몸집이 큰 동물은 부피 대비 피부 비율이 작기 때문에 체온을 유지하는 데 도움이 된다. 체온 유지가 중요한 섬 기후에서는 아주 중요한 장점이다.

도도, 자이언트 모아, 하스트독수리, 코끼리새는 각각 고립된 환경에서 번성할 수 있는 독특한 적응력을 진화시켰는데 공통점은 몸집이 크다는 것이다. 안정된 환경에서는 확실히 큰 몸집이 유리하다.

사람에게 멸종된 코끼리새

앞에서 말한 코끼리새 알의 일부 껍데기에서 질소-15 비율이 높아진 이야기로 돌아가보자. 과학자들은 이것은 삼림 벌채와 농업이 식생 환경을 변화시킴으로써 코끼리새의 먹이원에 영향을 미쳤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그렇다. 코끼리새는 사람들과 함께 살았다. 마다가스카르에는 인도네시아 사람들이 뗏목에 실려 떠내려온 1세기까지도 사람이 살지 않았다. 마다가스카르에 대한 기록은 7세기 이후에 아랍인들이 남기기 시작했다. 15세기까지는 어떤 유럽인도 마다가스카르에 도달하지 않았다.

1960년대 후반 <동물의 왕국>으로 유명한 데이비드 애튼버러는 전설적인 코끼리새의 고향인 마다가스카르로 탐험을 떠났다. 애튼버러가 코끼리새 알을 찾는다는 게 알려지자 원주민들은 그에게 수많은 코끼리새 알 껍데기 조각을 가져왔다. 이것은 인간이 코끼리새 알을 과도하게 채집했으며 인간의 활동이 코끼리새의 멸종에 중요한 역할을 했다는 점을 뜻한다.

애튼버러는 마다가스카르의 외딴 지역에서 거의 온전한 코끼리새 알을 발견했다. 애튼버러는 나중에 이 발견을 자신의 커리어에서 가장 짜릿한 순간 중 하나로 꼽았다. 알을 든 애튼버러는 수세기 전에 마다가스카르를 누비던 코끼리새와 깊은 유대감을 느꼈다.

그렇다면 코끼리새는 실제로 언제까지 살았을까? 유럽인들의 기록에는 17세기까지도 코끼리새를 목격했다고 남아있다. 하지만 이것은 실제 목격담이라기보다는 원주민들의 구전을 실제 상황처럼 기록했을 뿐일 것이다. <아라비안나이트>의 로크가 코끼리새라는 별칭을 갖게 된 것은 마르코 폴로가 <동방견문록>에서 마다가스카르에서 본 거대한 새를 언급한 데서 유래한다. 하지만 마르코 폴로는 마다가스카르에 상륙한 적이 없다. 소말리아의 모가디슈에서 들은 소문을 자신의 목격담으로 둔갑시킨 것에 불과하다.

코끼리새는 아마도 11~13세기의 어느 시점에 멸종했을 것이다. 코끼리새는 인간이 없는 마다가스카르에 최적화된 새였다. 하지만 인간이 들어오자 그들의 거대한 몸집과 커다란 알은 이제 약점이 되었을 뿐이다. 인간은 새를 사냥하고 알을 훔쳤다. 농업을 위해 숲을 태우면서 코끼리새의 서식지를 빼앗았다. 또 인간이 들여온 닭 같은 외래종 조류와 함께 들어온 바이러스에 코끼리새는 속수무책이었다.

코끼리새의 멸종 사건은 우리가 직면한 문제는 개별 종을 보존하는 데 그치는 게 아니라 생태계를 지탱하는 복잡한 생명의 그물망을 보호하는 것이라는 사실을 알려준다.

미래 세대를 위해 우리는 어떤 조치를 취해야 할까? 아직 늦지 않았다. 언젠가는 살아있는 코끼리새를 볼 수도 있을 것 같다. 2010년 코끼리새의 알에서 DNA를 수집하는 데 성공했다. 코끼리새는 이제 복원 가능한 멸종 생물로 분류된다.

■필자 이정모



여섯 번째 대멸종을 맞고 있는 인류가 조금이라도 더 지속 가능하려면 지난 멸종 사건에서 배워야 한다고 믿는다. 연세대학교와 같은 대학원에서 생화학을 공부하고 독일 본대학교에서 유기화학을 연구했지만, 박사는 아니다. 서대문자연사박물관, 서울시립과학관, 국립과천과학관에서 일했으며 현재는 대중의 과학화를 위한 저술과 강연, 방송 활동을 하고 있다. <과학이 가르쳐준 것들> <과학관으로 온 엉뚱한 질문들> <살아 보니, 진화> <달력과 권력> <공생 멸종 진화> 등을 썼다.

이정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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