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생각] 시각·청각·후각 온 감각으로 느껴라

한겨레 2024. 5. 24. 05: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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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책을 펼친다.

그림책은 글·그림 등 시각을 위주로 삼지만, 이 책은 거의 뭉개지고 겹쳐져 있는 그림이 절묘하게 글과 어우러지면서 독자의 청각, 후각, 촉각까지 자극한다.

주변 세계를 인간이 가공한 정보로 가장 먼저 접하는 것은 아기를 위한 사물 그림책류이다.

하지만 그림책에서는, 자연에 대한 느낌보다는 객관적인 전달을 우선하여 사실주의적 묘사가 주를 이루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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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은숙의 내일의 그림책

짐승의 냄새가 난다
미로코 마치코 지음, 엄혜숙 옮김 l 보림(2019)

그림책을 펼친다. 원색과 검정의 강렬한 선들이 굵고 힘찬 붓질로 무질서하게 휘몰아치고 있다. 형태도 양감도 없다. 독자들은 넓은 판면에 박힌 짧은 한 두 문장을 힌트 삼아야만 책을 읽어낼 수 있다. “여기는 짐승의 길/ 이러쿵저러쿵 풀꽃들이 떠들고 있다/ 짐승의 냄새가 난다”. 한 장을 넘기면 “굼실굼실 굼실굼실 꿈틀꿈틀 꿈틀꿈틀” 시의 언어다. 그림의 원시적 색감과 거친 선은 아프리카 전통 예술과 야수파의 그림을 떠올리게 한다.

깊은 숲일 것이다. 그곳의 온갖 소리와 냄새와 흔적으로 가득한 이 책에는 날것 모든 것에 생명이 있다고 믿는 애니미즘이 담겨있다. 그림책은 글·그림 등 시각을 위주로 삼지만, 이 책은 거의 뭉개지고 겹쳐져 있는 그림이 절묘하게 글과 어우러지면서 독자의 청각, 후각, 촉각까지 자극한다. 독자는 자연스럽게 복합적 감각을 작동시켜 자신만의 상상의 나래를 펼칠 수 있다.

지금까지 그림책은 자연을 어떻게 담아왔는가. 주변 세계를 인간이 가공한 정보로 가장 먼저 접하는 것은 아기를 위한 사물 그림책류이다. 이 속에 담긴 대상은 흠이 없는 모습이며, 아름답고 사랑스럽다. 이 세계는 완벽한 것임을 보여주려는 가치관이 담겨있다. 왜 그림책에는 자연의 또 다른 면인 시든 것, 벌레 먹은 것, 죽어가는 것들이 거의 담겨 있지 않을까 의문을 품는다면, 그림책은 어린이에게 보여주기 위해 어른이 만든 책이라는 사실을 떠올려보면 된다.

한 걸음 더 나아가보자. 미술은 사물을 있는 그대로 묘사해서 전달한다는 오래된 통념을 깨고 대상에 대한 인간의 느낌, 내면의 표현을 계속 확장해왔다. 하지만 그림책에서는, 자연에 대한 느낌보다는 객관적인 전달을 우선하여 사실주의적 묘사가 주를 이루었다. 그 결과 그림책 속 자연에 대한 인식은 제한적이었다. 이것은 우리가 주로 시각만을 사용하여 인식하고, 매체를 사용한 간접경험을 통해 자연을 접해오던 지금까지의 관행을 되돌아보게 한다.

우리가 자연을 어떻게 경험해야 하는지 생각해 본다. 요즘 과학교육 현장에서 생태감수성(Ecological Sensitivity)이 화두가 되고 있다. 자연의 변화를 알아차리고 자연에 감정이입하는 정서적인 태도를 강조하는데, 이 책을 통해 작가의 생태감수성도 느낄 수 있다.

작가 미로코 마치코가 라이브페인팅을 하는 영상을 본 적이 있다. 기껏 만든 형태감을 무너뜨리고 마지막 단계에서 눈알이 덧붙여져야 무엇인지가 비로소 구체화된다. 그림에 그날의 분위기, 날씨, 공기 등이 담긴다. 이러한 현장성은 그림책에도 적용되어 있다. 작가는 작품 제작과정에서 독자가 세계를 충분히 느낄 수 있도록 최대한 비워둔다고 말한다. 시각 중심의 감상에서 벗어나서 온 감각을 통해 느끼며 공감하는 감수성, 작가는 자연의 위기 시대에 우리에게 필요한 요소를 이렇게 제안하고 있다.

마침 미로코 마치코 그림 전시회가 다음달 9일까지 서울 용산구 알부스갤러리에서 열리고 있다. 넓은 화면에서 생동하는 자연을 온 감각으로 느껴볼 수 있는 이번 전시회로 나들이를 떠나보면 어떨까.

조은숙 그림책 연구자

※그림책 연구자 조은숙씨가 ‘내일’을 살아갈 어린이를 위해 주목 받는 그림책 현장에 관해 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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