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들만의 ‘서부개척사’ ‘와일드 웨스트’는 가짜다 [책&생각]

임인택 기자 2024. 5. 24. 05: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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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계 미국인 C 팸 장 첫소설
19세기 미 서부개척 신화 해체
중국이주민 처한 멸시·기만·박탈
그럼에도 처절하고 악착한 욕망
“이민자보다 더한 영웅 있나”
1869년 8월7일 ‘태평양 기사도’라는 제목으로 미국 신문 하퍼스 위클리에 실린 카툰. “캘리포니아”가 새겨진 모자를 쓴 남성이 중국인의 변발을 붙잡고 채찍질한다. ‘미국 만화의 아버지’로 불리는 토마스 나스트(1840~1902)가 처음 미 서부 해안 중국인을 소재화한 그림. 미국 소노마 카운티 도서관(sonomalibrary.org)

그 언덕에는 얼마나 많은 황금이
C 팸 장 지음, 홍한별 옮김 l 민음사 l 1만7000원

중국계 미국인 작가 C 팸 장. ⓒGioia Zioczower, 부커상 누리집

트럼프 정권과 코로나 팬데믹을 거치며 미국내 아시아계 대상의 혐오폭력은 더 노골화되었다. ‘퇴행’은 과거로 되돌아간 상태가 아니다. 과거가 비로소 도착한 상태다. ‘왜 혐오주의인가’란 질문은 곧 ‘언제부터 혐오주의인가’라는 질문일 수밖에 없다.

이 맥락에서 ‘톰 소여의 모험’(1876)을 쓴 마크 트웨인의 아시안·원주민 차별도 소환된다. 트웨인의 아메리칸 드림과 “지당한” 공정 세계에 초대받지 못한 이들의 ‘시원’이 있기 때문이다. 트웨인은 중국 이주노동자를 지독히도 혐오하고 배척했다.

트웨인 사후 80년째 되던 1990년 태어난 중국계 미국인 작가 시(C) 팸 장의 장편소설 ‘그 언덕에는 얼마나 많은 황금이’는 그 시작, 즉 ‘당신들’만의 기억이자 전설이자 신화로 존재해온 미 서부개척 시대를 형해화하려는 문학적 난장 같다. 밀레니얼 세대 작가의 특징이랄까. 명료한 주제로 명료한 주류에 맞서는 아시아계 기존 세대 작가의 방식과는 퍽 다르다.

소설은 출간된 2020년 바로 부커상 예심(롱리스트, 13권)에 뽑힌다. 당시 작가의 인터뷰를 먼저 들어볼 만하다.

“처음 출판업계 만나 제 소설 얘기했을 때 ‘너무 과하다’(too much)고 하더라고요. 성별, 이민, 역사, 인종, 가족, 세대간 트라우마, 환경파괴, 가난 등 관심사가 너무 많아 시장성이 떨어진다는 거예요. 한 줄도 읽지는 않은 채, 너무 많은 이슈를 담으면 안 된다고요.”

여기까지 들으면 당돌한 21세기 작가의 전형적 반전이 펼쳐질 것 같다. 아니다. 위 나열된 항목들은 “이슈”가 아니라 바로 자신의 삶이란 얘기는 차마 못 했다 하니 말이다.

“항상 저는 돈과 뜨거워지는 지구, 사랑하는 이들의 이민 신분을 한꺼번에 고려하며 살아왔습니다. 백인이 대다수인 나라에서 중국계라는 이유로, 가부장제 아래서 여성이라는 이유로 차별받지 않는 몸으로 세상을 살아간다는 것이 뭔지 모르겠습니다.”

베이징 출생 시 팸 장은 네살 때 미국으로 이주했다. 데뷔작이 ‘그 언덕에는 얼마나 많은 황금이’다. 현지 여러 문학상을 받았다. 매해 트위터(지금의 ‘X’)에 오바마 전 대통령이 소개해온 당해 추천 도서목록 17권에 포함됐다. 그리고 이달 한국으로 건너왔다.

1862년으로 추정되는 때, 중국에서 미국 서부 골드러시를 좇아 바다 건너왔던 남자가 한 생을 마감한다. 30대였다. 고아로 남겨진 갓 10대의 자매 루시와 샘이 아버지를 묻기 위해 길을 나선다. 본래 집도 없긴 하다. “거친 땅”으로 떠나는 루시, 20년 전 고향을 떠나온 아버지의 나이가 모두 12살이란 점 주목할 만하다. 세상은 루시와 샘이 “몇 년에 걸쳐 천천히 어른이 될 수” 있도록 두고 보지 않는다. 어쩌면 하룻밤 새 자라야 한다. 일용할 ‘양식’이래 봐야 그간 아버지와 어머니가 들려준 말들이 고작이다.

아버지를 묻을 “땅”을 찾으러 가는 여정이 소설의 한 줄기인데, 루시와 샘은 세계관, 이상 등이 달라 갈등하고, 오래 전 갈등을 농축해온 아버지와 어머니 사이 진실이 들춰진다.

중국 이주노동자로 만난 부부는 가족을 최우선 가치로 둔다. 가족이 정주할 수 있는 자신들의 ‘땅’을 찾아 자신들의 ‘집’을 짓고 싶었다. 게다 아버진 이주 초기 금도 발견하질 않았던가. 물론 역사는 그리 쓰여있지 않다. ‘아버지들’의 죽음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어쩌다 기록될지언정 ‘톰 소여의 모험’의 살인자 인디언엔 못 미치는 빌런. 1867년 철도건설 노동자 90%가 중국인(옮긴이의 말), 그즈음 미국 전체 노동인력의 25%가 중국인이었는데 말이다. 11살 샘은 열망한다. “내가 이름난 무법자가 되면.”

시 팸 장은 말했다. “평범함 속에서 거룩함을 찾도록 가르치는 책들을 읽으며 자랐다. 나중에야 깨달았다. 그 책들 속에서 저나 제 가족 같은 사람들을 만난 적이 없다는 걸. 바다를 건너 다른 생명을 위해 목숨을 바치는 이민자들보다 더 장대하고 영웅적인 이야기가 있을까?”

당연히 이 소설이 영웅 서사일 리는 없다. 멸시와 천대, 기만과 박탈로 점철된 중국계 이주노동자 가족의 악착하고 지고한, 그러나 무엇 하나 이뤄지지 않는 욕망사다.

“마법의 세제”가 개발되었으니 ‘중국인은 나가라’고 강조하는 광고물. 1886년 미국 일리노이주. 중국계 여성들은 다수가 세탁업 종사자였다. 미국 의회도서관

두 자매의 갈등은 매우 상징적이다. 루시는 문명과 도시를 믿고, 샘은 야생과 고향을 갈망한다. 그래 봐야 학교 간 루시도 놀림 받고 맞지만. 루시는 군중을 좇는 반면 샘은 군중을 불신한다. 그래 봐야 세상은 “어디 잡종 개들이냐” 천시할 뿐이지만. 루시는 아들을 그토록 바라던 아버지를 원망했고, 샘은 스스로 여자다움을 버린다. 셋째로 아들을 낳다 ‘죽은’ 어머니가 결정적 계기다(여기엔 또 다른 진실이 숨어있다).

황야에서 루시는 “여기에서 살 수는 없어. (…) 사람도 없고”라고 말할 때 샘은 “사람들이 우리한테 뭘 해 줬는데?”, 샘이 닮은 엄마가 고향으로 돌아가잘 때 루시는 “다른 칭크들하고 같이 살기 싫어요” 한다. 중국 ‘사람’을 향한 서구의 멸칭이 ‘칭크’다.

이러한 대결은 구조적 차별과 억압에 놓여왔던 이들의 일상적 모순을 집약한다. 모든 열망이 오답일망정 어느 하나도 정답일 순 없는 사람들의 삶 자체다.

루시와 샘은 강박적으로 묻는다. 집은 어때야 집이지? 침대는 어때야 침대지? 부츠는 어때야 부츠지? 남자는 어때야 남자지?…. 땅을 가질 수가 없어 땅을 가져본 적 없는 이가 집이 어때야 집다운지 알 수 있는가.

소설의 결말은 열려 있다. 루시는, 샘은 어디에 마침내 정주할까. 부모의 방어적 가족제일주의가 후대를 통해 확장될 수는 있을까. 강하고 아름다운 버펄로와 호랑이마저 사라진, 인류의 파괴적 개척사는 멈출까.

서너살 때 길 잃은 루시는 기억할 뿐이다. “위쪽을 보라”던 아버지의 말. 그러면 구름이 자신을 향해 몰려오고 언덕이 작아지고 저 멀리 산이 닿을 듯하고 거인이 되던 느낌. “다시 또 길을 잃으면, 다른 누구와 마찬가지로 너도 이 땅에 속한다는 걸 잊지 마라”던 아버지의 말.

그리고 그 말들이 이젠 서사되어야 한다는 게 작가의 믿음이겠다. 다 같이 기억하고 기록하는 공간이 ‘집’이고 ‘땅’이다. “칭크”는 동아시아인을 향한 멸칭이다. 한 민족, 한 지역만 안전한 세계는 없다. (아마도) 같은 밀레니얼 세대 작가로, 차별에 맞서고, 소설 ‘인센디어리스’로 각광받은 한국계 미국인 작가 권오경(미국 이름 R.O 권)이 이 책을 찬사하고, 시 팸 장의 신간 행사에 동참하는 이유일 것이다.

임인택 기자 imit@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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