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독증도 과독증도 실독증도, 그저 ‘다르게’ 읽을 뿐 [책&생각]

한겨레 2024. 5. 24. 05: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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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기’를 낯설게 만드는 영문학자
차이에 주목하는 신경다양성 관점
“애초 읽도록 태어나지 않았으니…
각자의 방법으로 읽고 살아가기”
영문학자 매슈 루버리는 난독증 등 다양한 신경다양인들의 읽기 경험을 통해 ‘읽기’ 행위를 낯설게 바라보게 한다. 게티이미지뱅크

읽지 못하는 사람들
우리의 인간다움을 완성하는 읽기와 뇌과학의 세계
매슈 루버리 지음, 장혜인 옮김 l 더퀘스트 l 2만2000원

적어도 내게, 읽기라는 행위처럼 명확한 일은 없다. 그것이 책이든 아니든 읽어야만 거의 모든 ‘일’을 할 수 있으니 그럴 수밖에 없다. 최근 몇백 년 사이 득세한 책이 읽기의 대명사가 되었지만, 인간은 출현 이래로 몸을 읽으며 스스로를 보호해왔고, 별을 읽으며 삶의 자리를 찾아다녔다. 그 연장선상에서 ‘진리’는 아닐지언정 무언가 ‘정상적인’ 혹은 ‘올바른’ 읽기가 있다고, 나를 비롯한 많은 사람들이 오랫동안 굳게 믿어왔다. 당연히, 읽지 ‘않’을 뿐 읽지 ‘못’한다는 생각은 호리라도 해보지 않았다.

그런 점에서 영국 퀸메리런던대학교 현대문학 교수인 매슈 루버리의 ‘읽지 못하는 사람들’은 파격적이다. 지은이는 읽도록 태어나지도 않은, 더더욱 저마다 다를 수밖에 없는 인간에게 읽는 행위를 “한 가지로 정의하는 일은 무의미하다”고 일갈한다. “읽기와 읽기 아닌 것의 경계”를 구분할수록 “읽기라는 용어의 범위를 넓히는 예외적인 사례를 더 많이 발견할 뿐”이라는 것이다. ‘읽지 못하는 사람들’에서 지은이는 신경학적 차이 때문에 발생하는 질환을 장애가 아닌 다양성으로 보는 관점인 “신경다양성”에 주목하며 “읽기라는 개념 자체를 새롭게 이해”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한다. 읽기를 “낯설게” 그리고 “자연스럽지 않은 일”로 봄으로써 읽기가 무엇인지, 그 실체에 다가가자는 것이다.

어떤 책의 첫 페이지를 펼쳤다고 치자. 우리는 주어와 술어 등으로 이루어진 문장들을 만날 것이다. 그 속에 담긴 텍스트는 내남없이 같다. 하지만 난독증 독자들은 “인간이 책을 이해하는 방식에 대한 가장 근본적인 가정, 곧 누구나 같은 페이지에서는 같은 텍스트를 본다”는 가정을 뒤집는다. 난독증 독자는 “책 페이지를 볼 때 흔히 종이가 아닌 픽셀화된 화면처럼 가변적인 활자 유동성(typographical fluidity) 상태를 경험”한다. 사실 보통의 독자가 경험하는 활자 고정성(typographical fixity)은 “15세기 요하네스 구텐베르크가 인쇄기를 발명한 뒤 얻은 주요 이점 가운데 하나”일 뿐이다. 난독증 독자는 “글이 어떤 방향으로 놓여 있든 글자를 읽기 어려워”하고, “어떤 단어를 다시 봤을 때 똑같은 단어로 보이지 않는” 경험을 할 때도 있다. 그럼에도 그들은 읽는다. 방식이 다를 뿐이다. 매슈 루버리는 ‘다시, 책으로’의 지은이 매리언 울프가 한 “문해는 문화가 발명한 것”이라는 말을 인용하면서 “읽지 못하는 사람이 있다는 사실”에 놀랄 필요가 없다고 말한다.

영화 ‘레인맨’의 실제 모델인 킴 픽은 “세 살 때부터 사전에서 단어를 찾기 시작”했고, 여섯 살 무렵에는 “백과사전의 차례를 다 외울 정도”의 천재였다. 그가 외운 책이 무려 1만2000권이다. 1951년에 태어난 그는 생후 9개월에 ‘지적장애’ 진단을 받았는데, 지은이는 오늘날이라면 “자폐스펙트럼 장애” 진단을 받았을 것이라고 말한다. 자폐는 난독증과 달리 “한 글자도 이해하지 못하면서 책 한 권을 통째로 외우기도” 한다. 그런 점에서 보면 자폐인 독자의 읽기 경험은, 보통의 독자들이 생각하는 “읽기가 해석 활동”이라는 통념을 반박한다. 자폐의 한 특성인 과독증은 탁월한 읽기 능력에 비해 문장 이해 능력은 또래에 훨씬 못 미치는 읽기장애의 한 유형으로, 빠르면 생후 18개월부터 나타난다. 아무도 읽기를 가르쳐준 적이 없기 때문에 부모는 천재라고 오해한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이를테면 “온종일 전화번호부를 들여다보며 행복”해하는 상태가 되면, 사람들은 “무언가를 읽고 있다는 사실에만 신경 쓰고 읽는 내용에는 집중하지 않는 생각 없는 독자”라고 치부한다. 물론 자폐인도 저마다 다르다. 책과 먼 자폐인도 많다는 말이다. 그럼에도 자폐인 독서 또한 무시되거나 부정되어서는 안 된다. “일반 독자가 ‘읽기’라는 말을 사용”하듯, 그들에게도 그들만의 읽기가 있기 때문이다.

게티이미지뱅크

공감각은 장애라기보다 “초능력”처럼 보인다. 공감각은 “다른 사람은 감지할 수 없는 현상”을 느끼는데, 많은 경우 “색채 효과를 지각”한다. 보통의 독자처럼 글자를 읽으면서도 “후광, 윤곽, 얇은 막, 배경” 등을 보는 것이다. 특정한 색조가 불타오르다가 사라지는 경험을 하는 이도 있고, 활자가 색을 입고 종이에서 튀어나오는 일을 경험하는 이도 있다. 공감각자가 보는 색은 “언어의 장벽”마저 뛰어넘는데, 한 다국어 교수는 “로마자와 키릴문자 모두에서 색을 봤다”고 한다. 색뿐 아니라 읽으면서 맛을 느끼는 사람들도 있다. “미각 공감각자”들은 읽으면서 “혀끝, 입천장, 목구멍 뒤쪽에서 특정 맛과 질감을” 느낀다. 단맛, 짠맛 정도가 아니다. 어떤 이는 ‘회장’이라는 단어에서 “설탕에 절인 체리 맛”을 느꼈고, 또 다른 이는 ‘참석자’라는 단어에서 “새콤달콤한 소스에 찍어 먹는 치킨너깃 맛”을 느꼈다. 지은이는 “신경다양성이 읽기의 역사에서 차지하는 역할을 인정”하는 일이야말로 읽기가 “현재와 미래의 독자에게 끼치는 영향”을 찾을 수 있는 길이라고 강조한다.

사실 인생 후반기로 가면 “독자로 남기” 어렵다. 단지 눈의 문제가 아니다. “치매와 퇴행성 신경질환”을 얻게 되면 책과는 영영 이별이다. 하지만 지은이는 이들에게 필요한 것은 “줄거리와 서사에 대한 회고적인 이해와 결말에 주목하는” 보통의 책읽기 담론을 넘어 “지속”(continuance)이라는 읽기의 측면에 집중하는 일이라고 강조한다. 그들에게 있어 삶은 “영원히 현재 시제”(permanent present tense)이기 때문이다. 고색창연한 고전을 더 이상 읽지 못해도 “치매 독자나 다른 기억장애가 있는 사람 역시 보통의 독자처럼 계속 서사를 통해 기쁨을 얻을 것”은 자명하다.

‘읽지 못하는 사람들’은 읽는 내내 읽는 일에 대한 편견과 아집에 사로잡힌 한 얼치기 출판평론가를 부끄럽게 했다. 혼자 읽을 뿐 읽지 못하는 사람들에 대해, 더더욱 그들의 마음자리에는 관심도 없었다. 그런 내게 지은이는 이렇게 말한다. “‘전형적인 독자’ 따위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잊지 마라. 저마다 독특한 방법으로 책을 읽는 독자가 있을 뿐이다. 이 점에서 모든 독자는 비전형적이다.”

장동석 출판도시문화재단 사무처장, 출판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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