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TX에 끊기고 생수공장에 뺏기고…‘지하수’ 고갈 심각

이문수 기자 2024. 5. 24. 05: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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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양시 덕양구 일대 50여농가
하우스농사 포기하는 등 고통
시공사·주민 보상 놓고 견해차
생수공장 설립·취수 증량 놓고
전국 곳곳서 갈등·분쟁 심해져
정부·지자체 적극 개입 중재를

지하수 고갈이 농촌사회에 심각한 문제로 떠오르고 있다. 농촌 주변에 대규모 공사가 이뤄지거나, 물을 많이 사용하는 공장이 들어선 후 농업용수는 물론 식수로 사용하는 지하수가 부족해지며 주민 생존마저 위협하는 탓이다. 지하수가 물 복지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는 만큼 이해당사자간 수자원 분배에 지방자치단체와 정부가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는 주장에 힘이 실린다.

경기 고양시 덕양구 대장동에서 블루베리·부추 농사를 짓는 김종성씨(70)가 “지하수 고갈로 농사를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고 하소연하며 잡초만 무성한 시설하우스 내부를 보여주고 있다.

지하수 고갈로 50여농가 올해 농사 포기할 판= “40년 이상 이 동네를 지키며 농사를 지어왔는데 올해처럼 지하수가 안 나온 적이 없었다니까요?”

“농사지을 물이 없는데 어떻게 하란 말입니까? 시공사와 시에서 나 몰라라 하니 울화통이 터질 지경이에요.”

경기 고양시 덕양구 대장·내곡·화정·토당동 일대 시설하우스 농가가 농업용수 부족에 시달리며 올해 농사를 포기하는 일이 속출하고 있다.

대장동에서 블루베리·부추 농사를 짓는 김종성씨(70)는 잡초만 무성한 하우스 내부를 보며 한숨을 내쉬었다.

그는 “한창 땀 흘리며 일해야 할 농번기인데 지하수가 바닥나 아예 손을 놨다”면서 “이대로 가다간 올해에만 3000만원 이상 손실을 볼 것 같다”며 고개를 떨궜다.

다른 농가도 사정은 비슷했다. 고추와 파를 주로 재배한다는 방수연씨(61)는 “지하수를 퍼 올리는 펌프를 계속 돌려도 농업용수량이 턱없이 부족하다”며 “보통 1시간이면 됐는데 지금은 10시간 이상 펌프를 작동시켜야 하니 미칠 노릇”이라고 토로했다.

해당 지역 통장의 말을 종합해보면 50여농가 이상이 지하수 부족으로 고통받는 것으로 나타났다.

3년 전 토당동에 자리 잡은 청년농 박종현씨(26)는 “지하수가 바닥나 고육지책으로 밭작물에 부적합한 농수를 쓰고 있는데 수확량이나 품질이 얼마나 떨어질지 알 수 없다”고 했다. 그러면서 “곧 로컬푸드직매장에 잎채소 등을 출하해야 하는데 이 상태로라면 생계가 끊길 것 같다”고 말끝을 흐렸다.

주민들은 수도권광역급행철도(GTX) 연결공사가 직접적인 원인이라고 입을 모은다. 열무농사를 짓는 차영주씨(66)는 “2019년 6월부터 GTX 공사가 시작된 후 해가 갈수록 지하수량이 급감하는 추세”라며 “물을 차단하는 차수공사가 원인이 아닌가 싶다”고 추측했다.

농가 피해 급증에도 시공사·지자체는 소극 대응=해당 구간 GTX 시공사인 SK에코플랜트 역시 대규모 철로 공사에 일부 원인이 있다는 점을 인정한다. 다만 보상규모와 범위를 놓고 농민과 현격한 견해차를 보인다.

김씨는 “지역 유지나 시공사와 친한 농가는 대공(큰 구멍) 비용을 대주고, 아닌 농가는 소공(작은 구멍)이나 제트펌프만 해줬다는 얘기도 돈다”면서 “울며 겨자 먹기로 푼돈이라도 받으려고 시공사가 제시한 지원 합의서에 서명한 일부 농가도 있는데 지금은 조금 나오던 지하수가 아예 나오질 않으니 다들 후회한다더라”고 귀띔했다.

더 큰 문제는 공사가 끝나더라도 지하수 고갈이 계속될 가능성이 있다는 점이다. 익명을 요구한 한 농가는 “시간이 지날수록 지하수의 수위가 낮아지고 있고, 한번 지하수로가 막혔는데 공사가 끝났다고 회복이 될 리 만무하다”며 “GTX가 완공된 이후에도 농업용수가 부족하면 누구에게 하소연해야 하느냐”고 반문했다.

시공사는 충분한 보상이 이뤄졌다고 해명했다. SK에코플랜트 현장관리팀 관계자는 “환경영향평가·외주용역 등을 거쳐 공사 현장과의 거리 기준에 따라 차등을 두고 피해농가 상황에 맞게 보상금을 지급했다”고 답했다.

해당 지자체는 뒷짐을 진 모양새다. 고양시 생태하천과 양지영 지하수팀장은 “GTX 공사가 민간자본으로 이뤄지는 만큼 시가 개입할 여지가 제한적”이라고 설명했다. 아울러 공사가 끝난 후에도 지하수가 고갈될 가능성을 주민들이 제기했지만 “시에서 별다른 대책을 세우지 않았다”고 했다.

대장동의 한 농가가 부족한 지하수를 대신해 농수로 물을 사용하려고 양수기를 설치하고 있다.

강원·경남 등 전국 곳곳 갈등 격화=지하수를 둘러싼 갈등은 고양에서만 벌어지는 건 아니다. 경남 산청군 삼장면에선 생수공장이 기존보다 더 많은 지하수를 뽑아내겠다고 하자 주민들이 강력하게 반발하고 나섰다. 삼장면에서는 ‘지리산산청샘물’을 포함해 두곳의 생수공장이 있다.

주민들로 꾸려진 삼장면 지하수보존비상대책위원회는 “지금도 지하수가 말라 농업에 피해를 주는 것은 물론 생활에도 막대한 지장을 초래한다”면서 “주민과 한마디 상의 없이 진행되는 지하수 증량 절차를 즉각 중단하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강원 원주시 신림면도 생수공장 설립문제로 홍역을 앓고 있다. 지난해 12월 건강기능식품을 취급하는 한국콜마비앤에이치가 신청한 샘물개발 임시허가를 강원도가 내주면서다. 주민들이 모여 만든 생수공장반대추진위원회의 나광열 위원장은 “갈수기인 겨울과 봄에 지하수가 모자라 먹는 물도 구하기 어려운 곳에 생수공장이 들어선다는 것이 말이 되질 않는다”며 결사 저지를 천명했다.

이처럼 지하수 문제가 물 복지와 직결된 만큼 정부와 지자체가 이해당사자간 분쟁에 적극적으로 개입해야 한다는 의견이 설득력을 얻는다.

지하수 조사를 전문으로 하는 한 기관의 기획팀 담당자는 “지하수는 대표적인 공적 자원으로서 누구나 균등하게 누릴 수 있게 해야 한다”면서 “대규모 공사에 앞서 시행하는 지하수영향평가 등이 요식행위로 끝나지 않도록 정부가 관리·감독을 철저히 할 필요가 있다”고 역설했다.

국민권익위원회 도로교통민원과 관계자는 “철도 공사로 지하수가 고갈되는 현상이 발생해 주민이 민원을 제기하는 일이 왕왕 일어난다”며 “토목공사와 지하수 고갈 간 인과관계가 명확하다면 시공사·지자체·주민 사이에 협의체를 만들어 중재안을 도출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제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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