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향토밥상] 쫄깃한 식감에 칼칼한 ‘맛’…입안에 감도는 은은한 바다향

김보경 기자 2024. 5. 24. 05: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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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토밥상] (53) 경기 화성 ‘맛찌개’
씹는 맛 좋은 ‘가리맛조개’ 사용
살 통통하게 오른 5~7월이 제철
기본양념 풀고 채소 넣어 한소끔
민물새우 넣으면 깊은 맛 ‘일품’
밥·면사리 곁들여 먹어도 좋아
고추장을 푼 국물에 갖가지 채소와 맛조개를 듬뿍 넣어 끓인 맛찌개. 조개에서 우러난 육수에 민물새우까지 들어가 시원한 국물맛이 일품이다. 화성=김병진 기자 fotokim@nongmin.com

경기 화성에 바다향 가득한 재래시장이 있다. 바닷물이 드나들어 하얀 모래가 강처럼 쌓였다고 해서 이름 붙여진 ‘사강시장’은 조선시대부터 서해를 중심으로 수산시장이 발달한 곳이다. 1980년대 후반 대규모 간척사업으로 바다가 막히면서 어획량은 줄었지만, 여전히 정취를 느끼러 찾아오는 사람들로 붐빈다. 이들이 사강시장에 들르면 꼭 먹고 가는 향토음식이 있는데, 바로 맛조개를 듬뿍 넣어 끓여낸 ‘맛찌개’다.

맛조개는 백합목 죽합과 조개로 깨끗한 개펄에 산다. 국내에서 볼 수 있는 맛조개는 7종으로 ‘참맛’ ‘가리맛’ ‘홍맛’ ‘왜맛’ ‘비단가리맛’ ‘대맛’ ‘북방맛’ 등이 있다.

가장 많이 알려진 건 대맛조개지만 맛찌개에 들어가는 건 쫄깃하게 씹는 맛이 좋은 가리맛조개다. 이는 대나무 모양의 대맛조개보다 길이는 짧지만, 너비가 2배 이상 넓고 통통한 게 특징이다. 가리맛조개는 잡는 방법도 특이하다. 개펄 구멍에 맛소금을 넣으면 튀어나오는 대맛조개와 달리 가리맛조개는 60㎝ 정도 깊이에 있어 성인 무릎만큼 펄을 파내야 잡을 수 있다. 가리맛조개는 3월 중순부터 가을까지 나오는 데, 추석이 지나면 순식간에 살이 빠져 맛이 없다. 살이 가득 올라 가장 먹기 좋은 때는 5∼7월이다.

사강시장을 통과하는 도로 양옆으로 횟집과 해산물 좌판이 줄지어 있다. 식당마다 걸려 있는 맛찌개 현수막과 식당 앞에 수북이 쌓인 맛조개가 눈에 띈다. 40년 전 화성 앞바다에선 개펄에 사는 조개·꽃게 등 해산물을 구하기 쉬워 1만원이면 맛조개를 5㎏이나 살 수 있을 정도였다고 한다.

하지만 화성방조제가 생긴 뒤 개펄이 사라져 맛조개를 구경하기 어려워졌고, 지금은 대부분 전라도에서 받아온다. 개펄 생태는 변했지만 오래된 손맛은 사라지지 않았다. 사강시장에서 30년 넘게 자리를 지켜온 희망회센터엔 맛찌개를 포장하러 온 손님의 발길이 끊임없이 이어진다. 센터를 운영하는 양애자 사장(58)은 오래된 단골손님만 알고 먹던 음식이 맛찌개라고 설명한다.

“옛날에 어머니가 바닷가에서 많이 나오던 맛조개를 잡아다가 넣고 고추장을 풀어 끓여주신 게 맛찌개예요. ‘맛조개 고추장찌개’나 ‘맛조개 짜글이’라고도 부르죠. 처음엔 10년, 20년 넘은 단골손님에게 포장해서 팔던 게 조금씩 알려져서 지금은 전국 각지에서 찾아와요. 맛찌개를 처음 먹어본 사람은 기절할 맛이라고 하더라고요. 하하.”

매일 아침 맛조개를 10㎏씩 손질하는데, 조개껍데기를 벗기는 데만 30분, 먹기 좋게 다듬는 데는 2시간이 넘게 걸린단다. 단단한 껍데기를 깐 다음 조갯살 양옆에 까맣게 붙은 이물질을 제거하고 주둥이에 해감이 덜된 부분을 일일이 손으로 다 짜주면서 깨끗이 손질하는 게 중요하다.

맛조개 손질은 오래 걸리지만 맛찌개를 끓이는 건 금방이다. 냄비에 고추장·된장·고춧가루 등 기본 양념을 풀고 호박·감자·버섯 등 채소를 넣은 뒤 센불에 끓인다. 국물이 끓어오르면 손질한 맛조갯살을 가득 얹어 손님상에 올린다. 맛찌개엔 육수가 따로 없다. 맛조개에서 자연스럽게 조개 육수가 우러나오기 때문이다. 그래도 식당마다 맛을 더 좋게 하는 비법은 있기 마련이다. 양 사장은 민물새우를 한 움큼 넣어 깊은 맛을 낸다고 한다.

찌개는 끓이면서 먹어야 제맛. 맛찌개를 식탁에 올려 다시 한번 보글보글 끓인다. 양념이 맛조개에 스며들기를 기다리며 양 사장에게 맛찌개를 맛있게 먹는 방법을 물어보니 “맛(조개)으로 만드니까 맛있게 먹으면 되죠”라며 호탕하게 웃는다.

맛찌개에 들어가는 가리맛조개가 제철을 맞아 살이 통통하게 올랐다(왼쪽). 맛찌개 국물이 잘 밴 칼국수 면과 맛조개를 함께 먹는 걸 추천한다.

그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국물과 함께 맛조개를 한술 떠본다. 달짝지근한 떡볶이 냄새가 났지만 매운탕처럼 맛은 칼칼해 목젖을 친다. 시원한 국물은 먼저 한술 떠먹고 하얗고 통통한 맛조갯살을 두 점씩 집어 먹으면 담백한 맛에 쫄깃한 식감이 넉넉하게 느껴진다.

씹자마자 올라오는 단맛도 맛조개의 매력이다. 부드러운 식감을 느끼고 싶다면 맛조개가 많이 익기 전 앞접시에 덜어 놓는 게 좋다. 맛찌개는 공깃밥과 함께 한그릇, 칼국수 면 사리를 넣어 또 한그릇 즐겨야 한다. 공깃밥에 국물을 자작하게 말아 후루룩 먹고, 맛찌개를 반쯤 먹다 칼국수 면 사리를 넣어 맛보자.

나들이 가기 좋은 화창한 날씨가 이어지는 요즘, 사강시장의 별미인 맛찌개를 핑계 삼아 화성 앞바다로 떠나보는 건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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