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동진의 도시이야기] 더 많이 두들겨 보아야 할 산복도로라는 돌다리

강동진 경성대 교수 2024. 5. 24. 03: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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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동진 경성대 교수

6·25 전쟁과 함께 시작된 1023일 피란수도의 시간은 부산에 상상치 못한 후폭풍을 몰고 왔다. 폭풍의 진원은 기존 인구의 세 배에 이르는 인구 백만을 넘어 버린 부산의 현실이었다. 핵심은 집이었다. 주택 건설이 어려운 경제 상황이었으니 새집의 탄생은 원조 자금을 근거로 한 공공주택사업이 유일했다. 기록을 보니 1965년까지 4529동이 건설되었다. 넉넉하게 계산해도 3만 명 정도만이 수혜자였다.

1965년부터 부산시가 본격적으로 팔을 걷어붙였다. 외곽 지역 30여 곳을 정책이주지로 정하고, 철거된 도심 불량주거지의 주민을 그곳으로 옮겼다. 또한 1973년 ‘주택개량에 관한 특별조치법’에 따라 철거 이주, 주택(현지) 개량, 공동주택을 짓는 토지구획정리사업 등을 추진했다. 그 즈음 부산을 위한, 그것도 바다(부산항)로의 조망권 확보라는 대의의 정책이 등장했다. 그것은 산복도로(망양로 등)보다 높게 올라오는 건물을 지을 수 없고, 산복도로 위에서는 10~30m 높이까지만 건물을 짓게 하는 고도제한 제도였다. 부산의 공간 특성을 지켜가려 했던 대단한 혜안의 발상이었다.

그런데 언젠가부터 우리는 이 제도를 50년이 지나 케케묵어 현실과 맞지 않고, 또 원도심(산복도로)의 발전을 저해시키는 주범으로 몰기 시작했다. 부산은 삼포지향(三抱之鄕)의 도시라 불리며, 발달된 구릉지들이 바다와 강과 연이어 있어 전국에서 ‘조망’이란 말이 가장 어울리는 도시로 평가된다. 그 명성의 비결 중 하나가 바로 산복도로의 고도제한 제도였다. 이렇게 생각하니 현실의 틈새를 비집고 뭔지 모를 고민들이 밀려들어온다. 고도제한 해제(완화)가 부산과 지역에 가져다 줄 이익은 과연 무엇인가? 수혜 대상은 누구인가? 누가 떠나고 들어올까? 잃어버리는 것은 없을까? 또 누가 끝까지 책임을 질 것인가?

논란은 북항재개발사업이 불을 지폈다. 바다를 가로 막고 솟아 올라오는, 그것도 주상복합으로 둔갑한 초고층 아파트들이 지어지면서 힘들게 버티던 고도제한의 논리도 무색해지고 말았다. 바다 바로 앞에서 조망을 막으니, 뒤쪽에서의 조망 보호 논리는 힘을 잃을 수밖에 없다. 형평성을 잃은 공공정책 앞에 민심은 흔들릴 수밖에 없고, 더군다나 그 정책의 공동책임을 가진 기초자치단체들이 이를 부추기는 실상이니 뒤죽박죽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해제와 완화의 논리는 이렇다. ‘바다가 가려지게 되어 고도제한의 원 의도가 상실되었고, 해제 후 신규 아파트를 지어 인구 유입을 시도하겠다’는 것이다. 틀리지는 않아 보인다. 그런데 주장 속에 빈틈이 크고 또 생각해야 할 것이 많다.

부산시는 조만간 산복도로에 대한 고도제한 해제(완화) 내용을 결정해야 한다. 불과 수개월 뒤의 일이니 조급하지 않을 수 없다. 꼭 이리 해야 한다면 사후 부작용을 최대한 줄임과 동시에 플러스 요인을 지속적으로 가져올 수 있는 구조와 체계를 짜는 것이 상책이다. 많은 것이 촘촘하게 세밀하게 준비되어야 할 것이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집중과 선택’이다. ‘어디를 풀고 얼마나 완화해야 하는가에 대한 판단’을 말한다. 이것이 제대로 되지 못한다면 부산의 산복도로 일대는 균형을 잃고 난개발의 온상지로 전락하게 될 것이다. 모든 곳을 초고층 아파트로 채울 수는 없기 때문이다. 또 하나를 꼽자면 ‘부산시가 끝까지 책임을 질 수 있는 시스템 구축’이다. 해제(완화) 후의 상황을 민간시장에 맡겨두는 것은 절대 피해야 한다. 공공 개입의 상태에서 조율과 조정 작업이 지속적으로 일어나는 유연한 체계를 구축해야 한다. 왜냐하면 이 일은 한꺼번에 개발이 진행되는 신도시 개발이 아니며, 최소 수십 년 지속되어야 할 부산의 해결 과제이기 때문이다.

지금 선택하려는 방식은 산복도로의 미래를 결정짓는 매우 쉽고 빠른 길이라 할 수 있다. 사실 현 상황에서도 산복도로 개발은 얼마든지 가능하다. 하나를 꼽자면 ‘중·저층 고밀개발’의 선택이다. 지형과 조망 조건을 충분히 수용하며 새로운 변화를 모색할 수 있는 방식이기에 많은 이들이 거론했고 또 주장해 왔다. 골목과 동네를 계획의 대상으로 삼고 한집 한집을 설계에 반영하자는 주장이다. 부산시의 중장기적인 투자와 열정이 전제되기에 쉽게 뛰어들 수는 없겠지만, 느리더라도 추진만 될 수 있다면 지역경제 활성화는 물론 상상치 못할 연쇄 효과들이 지속적으로 발생할 것이다.

인구가 줄어드는 축소시대임에도 계속 집을 지을 수밖에 없는 우리 경제의 모순이 하필 이곳 산복도로에서 반복되어야 한다는 사실 앞에서 무력증을 느낀다. 고지대 구릉지를 보호하기 위한 고도제한을 해제(완화)한 후의 개발에는 신중에 신중을 기해야 한다. 자칫 시대 흐름과 맞지 않을 수 있기 때문이다. 산복도로와 같은 입지 조건의 땅을 우리처럼 다루려는 선진 도시가 세상 또 어디에 있을까.


그럼에도 해야 한다면 부산시는 무한의 책임을 져야 한다. 섬세하고도 공평한 열린 계획과 창조적인 발상이 넘쳐나는, 그리고 시민 모두가 그 이익을 함께 누릴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이를 위한 끊임없는 실험과 지속적인 도전만이 그나마 산복도로를 지켜가는 유일의 길이 되어 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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