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사일언] 어서 Osiyo
10년 전, 미국 오클라호마 털사시(市)에서 열린 ‘풀브라이트 방문학자 발전 세미나’. 호스트 패밀리와 저녁 식사를 함께 하고 그의 집을 방문하는 프로그램이 들어 있었는데, 내 호스트는 첫날 나를 픽업해준 클라크씨였다. 한국에서의 멋진 추억들을 잊을 수 없어 참가 학자들 중 유일한 한국인인 나를 게스트로 ‘찜했다’는 것.
그의 집 거실 벽에는 세계의 각종 탈들이 걸려 있었고, 우리의 각시탈도 끼어 있었다. 세미나 행사들 중 가정 초대 만찬이 있음을 알고 준비해간 양반탈은 절묘한 선물이었다. 그는 뛸 듯이 기뻐하며, 즉시 각시탈 옆에 양반탈을 부착했다. 그의 분위기가 대다수 미국인들과 다른 이유를 묻자 자신의 혈통 때문이라 했다. 조모가 체로키 인디언이니, 자신은 25퍼센트의 체로키족 피를 갖고 있다는 것. 체로키(혼혈인)의 우수성에 대한 자부심이 대단했다.
간간이 인디언 보호구역들을 답사해오던 우리 부부는 클라크씨의 조언대로 체로키족에 비교적 긴 시간을 썼다. ‘문명화된 다섯 종족들’ 중 맨 처음 거명되는 체로키. 보호구역에서 목격한 역사적 사실들 상당수가 이채로웠다. 백인들이 자행한 강제 이동을 지칭하는 ‘눈물의 여정’, 독자 표기 체계로 체로키 말을 쓰고 읽게 만들어 체로키인들의 지적 활동에 혁명을 가져온 인물 ‘시쿼야’, 체로키어와 영어로 발간된 오클라호마 최초의 신문 체로키 애드버킷(1844~1906) 등. 한자 문화의 중압 속에 한글을 만들어 썼고, 타민족의 강압에 의해 디아스포라의 아픈 기억을 갖게 된 우리와 여러 면에서 오버랩되었다.
답사 마지막 날. 시내의 작은 식당 앞에서 우리는 ‘얼어버렸다.’ 출입문에 어른 주먹 크기의 글자들 ‘Osiyo’가, 그 밑엔 의미를 보여주는 ‘welcome’이 쓰여 있었다. ‘오시요’라? 분명 우리의 ‘(어서) 오세요’였다. 휴일이라 식당 주인을 만나지 못해 헤리티지 뮤지엄의 큐레이터에게 물으니 그게 체로키 고유의 인사말이라 했다. 그때부터 우리와 인디언 간 상관성을 연구해온 학자들의 논저들을 꾸준히 읽어왔다. 명석한 체로키족과 천만리 떨어진 우리는 과연 ‘Osiyo’를 공유하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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