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류동현의 예술여행] [17] ‘빙글빙글’ 반복하는 역사, 그리고 음악

류동현 전시기획자, 페도라 프레스 편집장 2024. 5. 23. 23: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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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르단 페트라

요르단 페트라의 ‘알 카즈네’. 관광객들과 지역 상인들로 북적인다. /류동현 제공

얼마 전 ‘최애’하는 영화 ‘인디아나 존스’의 OST CD 박스 세트를 해외 구입처에서 배송받았다. ‘인디아나 존스’ 영화 음반은 과거에는 어렵지 않게 구할 수 있었는데, 이번 5편은 음반 형태로 구하기가 어려웠다. 이제는 파일 형식으로 쉽게 스트리밍하거나 구매 가능하기 때문일까. 음악 신보를 음반 형태로 구하기가 점점 어려워진다. 매체가 변화하고 발전하기 때문일 것이다. 그런 가운데 LP와 카세트 테이프가 유행하는 상황이 흥미롭기도 하다.

‘인디아나 존스’ 영화 음악은 미국의 영화 음악가 존 윌리엄스가 작곡했다. 40여 년 동안 한 영화 시리즈의 음악을 계속 맡아서 완성한 점이 대단하다(게다가 하나하나 수준도 높다). 내가 고고학을 전공한 계기인 ‘인디아나 존스와 최후의 성전’ 음악을 듣고 있자니, 영화 마지막에 등장한 ‘성배 사원’이 떠올랐다. 초승달 계곡 안, 십자군이 성배를 보관하고 있는 사원은 요르단 돌산 지역에 있는 페트라에서 촬영했다. 영화를 보고 그곳에 꼭 가 보고 싶었다. 결국 꽤 오랜 시간이 지나, 요르단 아카바 항구를 거쳐 페트라에 갈 수 있었다. 페트라는 그리스어로 바위를 뜻한다. 기원전 1400년경 아랍계 유목민이던 나바테아인들이 긴 협곡 안의 바위산을 깎아 신전과 극장, 주거지, 무덤 등 아예 도시를 건설했다. 교역로로 명성을 떨치면서 한때 5만명이 도시를 채웠다. 그러나 무역 중심지가 바뀌고 지진까지 일어나면서 페트라는 역사 속에서 잊히고 말았다. 19세기 스위스 탐험가가 발견하기 전까지 2000여 년간 망각의 도시가 된 것이다.

매표소를 지나 좁다란 바위 통로를 한참 걸으면 영화에 등장한 ‘성배 사원’이 갑자기 눈앞을 가로막는다. 거대한 바위 절벽을 깎아 만든 ‘알 카즈네’다. 감동의 순간이다. 영화 속 사원같이 입구 뒤로 깊은 통로가 있을까 내부를 살펴 봤지만, 단순히 커다란 방이다. 보물 창고라는 의미답게 거대한 창고 형태다. 영화 개봉 이후 이곳은 관광지로 명성을 얻었다. 망각의 도시는 이제 수많은 관광객과 물건을 파는 지역 상인들로 북적인다. 음반이 그렇듯, 명멸하고 부흥하는 역사가 이곳에도 적용된다. 한때 세상이 끊임없이 발전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렇지만 인간의 역사는 그렇지 않다. ‘빙글빙글’ 반복할 뿐이다. 그러한 이치를 음반과 페트라에서 또다시 확인한다.

류동현 전시 기획자·페도라 프레스 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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