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세기, 기록의 기억] (124) 하남 동사지(桐寺址) 오층석탑

기자 2024. 5. 23. 21: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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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적조차 사라진 ‘동사’…홀로 남은 5층 석탑만 외로이
하남 동사지 오층석탑 1971년(왼쪽)과 2024년. 셀수스협동조합 제공

통일신라 후기에 창건한 큰 절이 석탑만 남기고 모습을 감췄다. 이 절에 관한 문헌 기록도 남아 있지 않다. 1988년에 동국대학교 조사단이 경기 하남시 춘궁동에 위치한 오층석탑 지역을 발굴하면서 ‘동사(桐寺)’라는 글자가 새겨진 기와가 나오기 전까지 이곳이 절터인 줄 아무도 몰랐다. 함께 발견된 주춧돌들 배열로 미루어 당대 최대 규모의 사찰인 것만 추정됐다.

기와에 찍혀 있는 ‘동사(桐寺)’는 ‘불국사(佛國寺)’, ‘갑사(甲寺)’ 같은 절 이름으로 동사가 위치했던 하남은 한강 유역을 차지하려던 고구려, 백제, 신라의 전략적 요충지다. 지금은 고속도로 방음벽에 시야가 막혀 절터가 보이지 않지만 한강을 띠처럼 두른 명당자리다. 조선 왕의 유사시 피난처인 남한산성도 근처에 있다.

가상의 역사를 써본다. 병자호란 때, 남한산성에 고립된 왕을 구하기 위해 동사의 승병들이 전투를 벌였지만 패하고 청나라 군대가 불을 질러 석탑만 남기고 절이 전소, 그 흔적조차 사라졌다. ‘숭유억불’로 불교를 탄압하던 조선시대 권세가 양반이 동사의 명당 터를 탐냈다. 그래서 절을 강제로 빼앗아 자기 집안 묘로 쓰는 악업을 저질러 가문이 멸문지화당하고 방치된 터에는 잡풀만 우거지다가 논과 밭으로 일궈진 거 아닐까?

목조 건축물인 절이 폐사되는 건 화재나 전쟁으로 소실되는 것이다. 백제의 수도 하남 위례성에 세워져 세간의 이목을 집중시켰던 천년고찰 동사가 화산 폭발로 사라졌다는 아틀란티스처럼 존재를 감춘 건 불교용어에서 유래한 불가사의다.

두 장의 사진은 동사가 있던 절터다. 한자로 ‘터’를 뜻하는 지(址)를 써서 절터가 드러난 이후 하남 동사지(桐寺址)라고 부른다. 농부가 농사를 짓듯, 부처님도 불자가 행할 불법(佛法)의 밭갈이에 대해 “믿음이 씨앗이고 진실된 말로 잡초를 베어버리니, 끌어주는 소처럼 정진해서 나아가는 것이 불법의 밭갈이다”라고 말씀하셨다. 그리고 게으른 농부(게으른 불자)는 나무의 뿌리까지 완전히 제거하지 않아서 잡풀(번뇌)이 다시 나와 고통에서 벗어나지 못한다고 하셨다.

5월, 한 해 농사의 시작인 논갈이와 밭갈이가 한창이다. 지금은 석탑 주위에 출입금지 철책이 있지만 1971년 사진에는 오층석탑 바로 옆에 황소가 있다. 여기가 절이었던 것을 당연히 모르는 농부가 논밭을 점령한 석탑 때문에 소 쟁기질이 여의치 않아 투덜대는 모습도 상상해본다.

김형진 셀수스협동조합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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