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첩 몰렸던 재일동포 최창일… 50년 옥죈 누명 벗었다

최다원 2024. 5. 23. 18:15
자동요약 기사 제목과 주요 문장을 기반으로 자동요약한 결과입니다.
전체 맥락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본문 보기를 권장합니다.

"본연의 역할을 하지 못했던 대한민국 사법부의 일원으로서 깊은 사과의 말씀을 드립니다."

재일동포 2세 고 최창일(1941~1998)씨의 국가보안법 및 반공법 위반 등 사건 재심이 열린 23일 서울고법 312호 법정.

2020년 지자씨는 재심을 청구하고 3년 10개월 만에 개시 결정을 받아냈다.

검찰은 최씨에게 반공법 등 혐의가 있다는 입장을 고수했다.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26년 전 사망해 딸이 재심에 대신 참석
재판부 "사법부 일원으로서 깊은 사과"
고 최창일씨의 딸 지자(앞줄 두 번째)씨가 23일 오후 서울 서초구 서울고법에서 열린 선고공판 뒤 환하게 웃고 있다. 뉴스1
"본연의 역할을 하지 못했던 대한민국 사법부의 일원으로서 깊은 사과의 말씀을 드립니다."

재일동포 2세 고 최창일(1941~1998)씨의 국가보안법 및 반공법 위반 등 사건 재심이 열린 23일 서울고법 312호 법정. 재판장인 서울고법 형사13부 백강진 부장판사가 피고인석을 바라보며 이렇게 사과의 말을 풀어갔다. 피고인석에서 주억거리던 최씨의 딸 지자(나카가와 토모코)씨는 곁에 앉아 있던 통역사의 입에서 '무죄'라는 일본어를 듣자 눈물을 흘리기 시작했다. 한국과 일본을 오가며 일하다 간첩으로 몰려 옥살이를 한 아버지가 50년 만에 누명을 벗은 순간이었지만, 아버지는 이미 26년 전 세상을 떠났기 때문이다.

1941년 일본에서 동포 2세로 태어난 최씨는 1967년 한국의 탄광회사에 입사했다. 이후 일본을 오가다가 1973년 육군보안사령부에 붙잡혔다. 보안사는 최씨가 대학 시절 조총련계 단체로부터 장학금을 받은 일을 빌미로, 그를 북한 지령을 받은 간첩으로 몰아붙였다.

군 방첩기관인 보안사는 민간인 수사권이 없었지만, 한국어가 미숙했던 최씨는 강압수사에 제대로 대응하지 못했다. 결국 구금돼 가혹행위에 시달리다 거짓 자백을 했고 1974년 징역 15년을 선고받았다. 6년간 옥살이를 하다가 광복절 특사로 가석방됐고, 1998년 뇌종양으로 사망했다.

이후 박정희 정권에서 조직적으로 재일동포 간첩 사건을 조작한 정황 등이 발견되자, 명예회복의 물꼬가 트였다. 2020년 지자씨는 재심을 청구하고 3년 10개월 만에 개시 결정을 받아냈다. 올해 1월 열린 첫 공판에서 쟁점은 '피고인 진술의 증거능력 여부'로 좁혀졌다.

검찰은 최씨에게 반공법 등 혐의가 있다는 입장을 고수했다. 1974년 재판 당시 그가 사선변호인을 선임한 상태에서 일부 공소사실에 대해 자백한 점을 근거로, "법정 진술은 임의성이 있는 것으로 보고 증거능력을 인정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재판부에 징역 7년을 선고해달라고도 요청했다.

법원은 그러나 이날 수사기관에서의 진술은 물론 법정 진술의 증거능력도 인정하지 않았다. 재판부는 "법정에서의 자백 또한 수사기관에서 불법구금으로 이뤄진 진술이 그대로 이어진 것으로 보인다"며 "참고인들의 진술 역시 증거능력 없는 증거로부터 파생된 2차 증거"라고 판단했다.

또 "이 사건은 남북 분단이 빚어낸 이념 대립 속에서 지식인이자 성실한 재일한국인 청년이 국가폭력에 의해 희생된 사건"이라며 "과거의 판결을 바로잡는다고 하여 고인과 가족들이 받았을 고통이 쉽게 회복되지는 않겠지만 조금이나 치유의 의미를 갖길 바란다"고 무죄를 선고했다.

선고 직후 방청석에서는 박수가 터져 나왔다. 지자씨 역시 "판결만으로 식구들의 아픔이 치유될 것이란 보장은 없지만 대단히 좋은 결과로 마무리 지었다고 생각한다"며 "국가 차원에서 민간인 한 명 한 명의 아픔에 대해 제대로 생각해주고 이런 일이 다시는 생기지 않게 해달라"고 밝혔다.

최다원 기자 da1@hankookilbo.com

Copyright © 한국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