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고자만 봐준다”…한국 공정위가 직원 교육에 활용하는 美영화

신현호 경제칼럼니스트 2024. 5. 23. 17: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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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EEKLY BIZ] [Biz&Cinema] 인포먼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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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인포먼트'의 한 장면

스티븐 소더버그 감독의 ‘인포먼트’(2009)는 특이하게도 공정거래법을 다룬 실화 영화입니다. 주인공 마크 휘태커(맷 데이먼)는 코넬대에서 박사 학위를 받은 생화학자입니다. 1989년 서른둘 젊은 나이에 ADM의 최연소 사업부문장이 됐을 정도로 출세 가도를 달렸습니다. ADM은 식품 가공과 생화학 분야의 선두 주자로, 당시에 포천 선정 500대 기업 중 44위에 오른 유력 기업입니다.

휘태커는 라이신이라는 필수 아미노산 사업의 책임자였습니다. 돼지와 가금류 사료의 핵심 첨가물인 라이신은 ADM의 캐시카우(수익원)였습니다. 생산 라인에 퍼진 바이러스를 해결하려고 진땀을 흘리던 휘태커는 일본의 경쟁 회사가 의도적으로 바이러스를 퍼뜨렸다고 부회장 안드레아스에게 보고합니다. 깜짝 놀란 안드레아스는 FBI에 신고하고 휘태커는 브라이언 셰퍼드(스콧 바큘라) 요원과 만납니다.

바이러스 수사가 지지부진한 가운데 휘태커는 자신을 포함한 ADM 경영진이 라이신을 제조하는 경쟁사들과 담합해 가격을 높게 유지하고 있다고 셰퍼드에게 실토했습니다. 큰 건을 잡았다고 생각한 FBI는 휘태커에게 수사에 협조하면 면책해 주겠다고 설득했습니다. 휘태커는 담합 기업들의 비밀 회동이 있을 때마다 몰래 녹음기를 가지고 참석했고, FBI는 은밀히 회의장에 비디오 카메라까지 설치했습니다. 수사 당국은 3년에 걸쳐 담합 현장을 담은 수백 개의 테이프를 확보했습니다.

증거가 쌓이자 검찰은 1996년 ADM을 기소했습니다. 빠져나갈 틈이 없었던 ADM은 유죄를 인정하고 1억달러 벌금에 합의했습니다. 안드레아스를 포함한 세 명의 최고경영진은 도합 99개월 징역형에 처해졌습니다. 미국 반독점 범죄 사상 최고 금액의 벌금이었고, 최고 수준의 징역형이었습니다. 이 사건은 아지노모토, 제일제당 등 일본과 한국 기업들도 연루된 국제적 사건으로 아시아 기업들도 모두 유죄를 인정하고 벌금 납부에 합의했습니다.

공정거래법의 적용 범위에 대해선 이견이 있지만 ‘담합을 통한 가격 조정’을 처벌하는 것은 누구도 반대하지 않는 최소한의 원칙입니다. 극소수 행위자들 사이에서 은밀히 이루어지는 담합은 적발이 쉽지 않아서, 각국은 자진 신고한 기업이나 개인에 대해 책임을 면제해주는 ‘리니언시’ 제도를 운영하고 있습니다. 휘태커도 FBI와 리니언시를 통해 면책을 약속받은 것입니다.

담합과 별도로 휘태커의 엉뚱한 행동도 화제가 됐습니다. 리베이트와 횡령 등을 통해 회사의 재산을 900만달러나 빼돌렸고, FBI 수사로 기존 경영진이 쫓겨나면 자신이 CEO에 오를 것이라는 망상에 빠져 있었습니다. 자진신고자 면책 특권은 담합에 한정된 것이기 때문에 휘태커는 횡령죄로 기소돼 8년 6개월간 복역했습니다.

담합 처벌은 전 세계적으로 강화돼 지금은 라이신 사건이 벌어진 1990년대와는 비교가 안 될 정도입니다. 이럴 때 공정거래법의 교과서 같은 영화 ‘인포먼트’가 도움이 될 것입니다. 실제 국제 담합 사건을 코믹하면서도 사실적으로 재현해 한국 공정거래위원회도 직원 교육용으로 사용하는 영화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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