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집으로’ 강종만 영광군수, 또 직위 상실…“‘군수 무덤’ 오명 붙을라”

정성환 호남본부 기자 2024. 5. 23. 17:19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르포] 군수 잃은 영광군 가보니…“뒤통수 맞아”vs “안타까워”
16년 전엔 돈 받아서, 이번엔 돈 줘서 자리 잃은 강종만 군수
다시 ‘군수 권한대행·실과장 행정’으로…군정 공백·혼란 가중

(시사저널=정성환 호남본부 기자)

"뒤통수 맞았다" vs "안타깝다"

강종만(70) 전남 영광군수(이하 강종만 군수)가 두 번째 군수직을 잃은 가운데 지역 주민들의 반응이 교차하고 있다. 지금은 엿새 전 대법원 판결로 전직이 된 강 군수는 민주당 아성인 전남지역에서 무소속으로 두 번이나 군수선거에서 당선될 만큼 지역민들의 지지와 인기를 누린 몇 안 되는 기초단체장이었다. 그러나 이번에도 군수직을 잃은 불명예를 안았다. 그런 만큼 강 군수의 직위 상실이 지역에 미치는 충격파와 실망감이 증폭되고 있는 상황이다. 이에 대한 반작용으로 지역사회에선 제대로 된 인물이 뽑아 군수 낙마의 악순환을 끝내자는 자성의 목소리도 커지고 있다.

22일 오후 전남 영광 읍내 버스터미널 부근 시가지 모습 ⓒ시사저널 정성환

"일부러도 힘든 중도 퇴출을 두 번씩이나…기막혀"

22일 오후 3시쯤, 영광 읍내 버스터미널 부근에서 만난 김철수(가명 63·군서면)씨는 "군민들은 강 군수가 처음 군수직에서 낙마한 후 정치공작에 의한 함정 때문이었다고 억울함을 호소해 다시 기회를 줬다"며 "그런데 또다시 임기 반환점을 앞두고 중도 퇴진함에 따라 너무도 큰 실망감과 배신감에 충격을 받고 있다"고 말했다.

지역 정치권에서 잔뼈가 굵은 한 인사는 "일부러 하려해도 무소속으로 두 번의 당선돼 모두 낙마하는 것이 결코 쉽지 않을 일이다"며 "군수와 군민의 운명이 참으로 기구한 것 같다"고 탄식했다. '군수 무덤지역'이라는 오명이 따라 붙지 않을까하는 우려도 감지된다. 

반면 군청 민원실에서 만난 주민 박아무개(남 63·백수면)씨는 "강 군수는 지역 정서상 힘든 무소속으로 두 번이나 군수에 당선될 만큼 지역민으로부터 신망이 두터웠다"며 "뭔가에 홀린 듯 신뢰성이 떨어진 인물을 만나 봉변당한 것 같다"고 안타까워했다. 

​22일 오후 영광군청 2층 군수실이 불꺼진 채 굳게 닫혀 있다. ⓒ시사저널 정성환​
22일 오후에 찾은 영광 군청 청사는 착 가라앉은 분위기였다. 평소 결재 받기 위해 오가는 공무원들로 붐볐던 2층 군수실 가는 복도가 텅 비어있다. ⓒ시사저널 정성환

이날 찾은 군청은 가라앉은 분위기였다. 청사 내에 들어서자 '청렴'이 새겨진 상징물이 눈길을 사로 잡았다. 주인 잃은 2층 군수실은 불이 꺼진 채 굳게 닫혀 있었다. 웃음기가 사라진 공무원들은 몸가짐에 조심하느라 애쓰는 모습이 역력했다. 가급적 동료들과 말을 섞지 않는 등 자신의 업무에만 몰두했다. 

군청의 한 간부는 "군정이야 원래 시스템으로 돌아가기 때문에 차질이 없겠지만 전반적으로 '안타깝다'는 분위기가 팽배하다"고 말했다. 이 간부는 "한때 A씨의 허위 증언으로 이번 선거법 소송이 대법원에서 파기환송 될 것으로 기대했으나 대법원은 1·2심의 판단을 유지한 것으로 나오자 직원들이 당혹감을 감추지 못했다"고 전했다.

강 군수의 낙마에 대한 조짐은 군청 내부에서부터 감지됐다. 군청 주차장 모퉁이에서 구두수리소를 운영 중인 배인석(81)씨는 "다섯달 전쯤부터인가 강 군수가 운동화를 신고 다닌다는 이유로 2~3일에 한번씩 구두를 맡기던 횟수가 뜸해지더니 아예 3개월 전부터는 구두를 가져오는 여비서조차 발길이 뚝 끊기고 사라졌다"며 "좀 이상하다고 여기던 차에 지금와서 생각해보니 군수 주변에서 뭔가 불길한 징후를 감지한 것 아닌가 싶다"고 했다. 

영광군청 1층 현관 로비에 설치된 '청렴'이 새겨진 상징물 ⓒ시사저널

기구한 운명의 강 군수 "사려깊지 못한 행동 죄송"

대법원 2부는 17일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로 기소된 강 군수에게 벌금 200만원을 선고한 원심판결을 확정했다. 이로써 강 군수는 직을 잃었다. 민선 4기에 이어 두 번째이며 민선 8기 전남 자치단체장 중 처음이다. 영광군수 선거에서 두 차례 당선됐던 강 군수는 지난번엔 돈을 받아서, 이번엔 돈을 줘서 자리를 잃게 됐다.

첫 번째 낙마는 군의원과 도의원을 거쳐 지난 2006년 지방선거에서 승리한 그는 취임한 지 2년 만인 2008년 3월 징역 5년 형이 확정돼 군수직을 잃었다. 강 군수는 아내를 통해 지역 건설업자로부터 뇌물 1억원을 받은 것으로 조사됐다. 2022년 지방선거에서도 무소속으로 당선됐지만, 이번에는 8촌 관계인 조카 손자인 지역 언론사 기자 A씨에게 "선거 때 할아버지를 많이 도와주라"며 현금 100만원을 제공한 혐의로 군수직에서 내려오게 됐다. 

한때 강 군수로부터 돈을 받은 것으로 알려진 지역 언론사 기자인 A씨가 항소심 이후 검찰에 "상대 후보로부터 돈을 받기로 하고 거짓 증언을 했다"며 검찰에 자수하면서 반전 기류가 나타났다. 강 군수도 A씨를 위증죄로 고발했다. 군수직을 유지한 채 A씨 위증을 놓고 법정 공방을 벌이기 위해서였다.

이에 강 군수와 일각에선 A씨의 허위 증언으로 이번 선거법 소송이 대법원에서 파기환송 될 것으로 기대했으나 대법원은 1·2심의 판단을 유지했다. 강 군수는 대법원 판결 직후 입장문을 내어 군민들에게 사과했다. 그는 "사려 깊지 못한 행동으로 군수 부재로 인한 군정 공백과 혼란을 겪게 됐다"며 "무죄를 믿고 지지해준 영광군민들에게 씻기지 못할 상처를 줬다"고 말했다. 강 군수는 이어 "중단없는 영광발전과 잘사는 영광을 염원하며 힘을 모아주셨던 영광군민께 죄송하다"고 덧붙였다.

두 번째 '군수 공석'사태 맞은 영광군 

영광군은 두 번째 군수 공석 사태를 맞았다. 군청 안팎에선 수장을 잃은 영광군은 당분간 군정 공백과 혼란 가중이 불가피하며, '권한대행 군정' '실과장 행정'으로 전락할 것이란 우려도 나온다. 이번 대법원 판결로 김정섭 부군수가 영광군수 권한대행을 맡는다.

비록 4급 서기관인 김 부군수가 직급에선 높지만 전남도에서 파견(?)나와 1~2년의 짧은 임기를 마치고 돌아갈 부군수보다는 평생 군청에서 잔뼈가 굵은 실과장들이 조직 장악력에서 앞선다는 게 지배적 견해다. 사후 평가는 차치하더라도 군수가 실각한 영광군 행정이 16년 전의  '실과장 행정'으로 다시 돌아갈 것이란 관측이 나오는 이유다. 

영광군수 보궐선거는 오는 10월 16일 치러질 예정이다.   

22일 오후 전남 영광군청 전경 ⓒ시사저널

유권자도 책임…"재·보궐선거서 제대로 된 인물 뽑아야"

강 군수의 잇단 중도 퇴출은 본인에게 큰 상처로 남았겠지만, 이로 인한 군정의 후유증과 여진은 더 크게 남아있다. 지역 정가에서는 자치단체장의 중도 낙마를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당선되고 보자는 선거 풍토' 때문으로 보고 있다. 일부에서는 군수가 두 차례나 직을 잃게 된 것에 대해 모두가 자성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지역이 좁다 보니, 선거가 과열되기 마련이고 상대 후보를 떨어뜨리기 위해 불법이 일상화되고 있는 점이 문제라는 것이다. 

군민 김아무개(57)씨는 "잇단 단체장 낙마 사태로 이미지에 큰 상처를 입고 군민들이 자존심을 많이 구겼다"며 "군수가 불명예로 중도 하차하는 악순환의 고리를 끊기 위해선 군민 모두 뼈를 깎는 자세로 자성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정치인도 정치인이지만 유권자들의 썩어 빠진 정신 때문에 선거가 과열되기 마련인 만큼 특단의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목청을 높였다.

영광군민들이 군수 재·보궐선거에서 책임을 통감하는 자성과 저급한 선거운동을 용납하지 않겠다는 유권자의 지성도 분명하게 보여줘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영광지역에선 강 군수 직위 상실형 확정 전부터 재선거를 염두에 둔 군수 입지 자들이 행사장을 돌며 일찌감치 얼굴을 알려온 것으로 전해졌다. 

지역 사회단체 관계자는 "단체장 낙마는 막대한 혈세를 퍼부은 선거를 무효로 돌릴 뿐 아니라 지역발전 차질, 지역여론 악화, 주민의 자괴감 등 많은 부작용을 낳는다"며 "제대로 된 인물이 뽑혀야 지역의 일꾼으로 온전히 임기를 채울 수 있다"고 말했다. 

Copyright © 시사저널.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