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근거지라 놀림받아 우는 아들, 국내여행 싫다고” 가장의 한탄

이혜진 기자 2024. 5. 23. 17: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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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시내의 한 초등학교에서 어린이들이 등교를 하고 있다. 사진은 기사와 관련이 없음. /뉴스1

빠듯한 형편에 해외여행을 가지 못한 초등학생 아들이 친구들로부터 ‘개근 거지’라고 놀림을 받았다는 가장의 사연이 전해졌다. ‘개근거지’란 학기 중 체험학습을 가지 않고 꾸준히 등교하는 학생들을 비하하는 신조어로, 이 남성은 아들이 실제 이런 일을 겪을 줄은 몰랐다며 한탄했다.

23일 한 온라인 커뮤니티에는 ‘개근거지라는 게 그냥 밈인 줄 알았는데 우리 아들이 겪어버렸네요’라는 제목의 글이 올라왔다. 초등학교 4학년 아들을 둔 아버지라는 A씨는 “어제 아들이 ‘친구들이 개거라고 한다’고 울면서 말하더라”라며 “개거가 뭔가 했더니 ‘개근 거지’더라”고 했다.

A씨는 외벌이로 월 실수령액이 300~350만원이며, 생활비와 집값을 갚고 나면 여유 자금이 없는 형편이라고 한다. A씨는 “학기 중 체험 학습이 가능하다는 안내는 받았는데 안 가는 가정이 그렇게 드물 줄은 생각도 못했다”고 토로했다.

국내여행이라도 다녀올까 하는 생각이었지만 아이는 해외여행을 가고 싶어하는 눈치였다. A씨는 “경주나 강릉, 양양 같은 곳을 알아보자고 컴퓨터 앞에 데려갔는데 ‘한국 가기 싫다’고 ‘어디 갔다 왔다고 말할 때 쪽팔린다’ 한다”며 “체험학습도 다른 친구들은 괌, 싱가폴, 하와이 등 외국으로 간다고 하더라”고 했다. A씨는 아내와 상의 끝에 결국 아내와 아들 둘이서만 해외로 가기로 하고, 땡처리 항공권을 알아보고 있다고 한다.

A씨는 “당연히 모든 세대만의 분위기나 멍에가 있겠지만 저는 그냥 없으면 없는 대로 자라고 부모께서 키워주심에 감사하면서 교복도 가장 싼 브랜드 입고 뭐 사달라고 칭얼거린 적도 없었다”며 “아이는 최신 아이폰에 아이패드까지 있다. 제 핸드폰은 갤럭시 S10″이라고 했다. 이어 “요즘은 정말 비교문화가 극에 달한 것 같다. 결혼 문화나 허영 문화도 그렇고 참 갑갑하다. 사는 게 쉽지 않다”고 덧붙였다.

이 글을 본 네티즌은 “체험학습을 떠나서 괴롭힘이고 학폭위 열어야 할 사안 아닌가” “아이 키우는데 저런 사례는 들어본 적조차 없어서 낭설이겠지 했다. 진짜라면 너무 씁쓸한 현실” “개거라고 놀리는 애들이 문제다. 부모가 교육을 잘못시켰다” 등의 반응을 보였다. “초등학생들이 아빠 연봉 자랑하는 시대가 됐다” “요즘 태어난 아이들 상당수는 부자 집안 자식이라더라. 앞으로 더 심해질 것” “남들과 비교하며 그저 해외 문물만 좋다고 여기는 구시대적 발상이 끝나는 시대가 왔으면 좋겠다” 등의 의견도 있었다.

실제 딩크족(자녀가 없는 맞벌이부부) 등 무자녀 가구들은 ‘자녀를 갖지 않는 이유’로 시간·경제적 여유 외에도 경쟁이 심한 한국사회의 분위기를 꼽았다. 지난해 12월 보건복지부가 저출산 현장의 이야기를 듣고 정책 과제를 발굴하기 위해 마련한 첫 번째 ‘패밀리스토밍’ 자리에서 이같은 의견들이 나왔다. 한 참가자는 “오죽하면 개근하는 아이들을 여행을 못 가는 거라고 비하하는 ‘개근거지’라는 말까지 나왔겠나”라며 “아이들끼리 비교하는 문화가 개선돼야 한다”고 했다. 참가자들은 △아이를 낳고 남들 사는 만큼 여유롭게 살 수 있는 경제적 여건이 되지 않아서 △ 근로 시간이 길고 보육환경이 열악해서 등을 출산하지 않는 이유로 꼽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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