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 넷 키우는데 받지 못한 양육비만 6400만 원…父가게도 빼앗겨”

여근호 기자 2024. 5. 23. 17: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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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육비 선지급제 조속히 시행돼야”
아이 넷을 홀로 키우는 40대 신수연 씨가 22일 오전 서울 중구 양육비이행관리원에서 기자들에 자신의 사연을 이야기하고 있다. 신 씨는 전남편으로부터 2년이 넘도록 양육비를 한 푼도 받지 못했다. 미지급된 양육비 총액은 6400만 원에 이른다. 양육비이행관리원 제공
“오늘 전기세를 끊겠다는 고지서까지 받았어요. 경북 지역 대표로 체전을 나가는 셋째가 ‘1등 하면 엄마한테 상금을 주겠다’고 하더라고요. 대학 간 아이 옷 한 벌 해주지 못하는 게 너무 미안합니다.”

2019년 5월 이혼 후 혼자서 4명의 아이를 키우고 있는 40대 신수연 씨는 22일 서울 중구 양육비이행관리원(이행원)에서 “전남편으로부터 매월 200만 원의 양육비를 받아야 하지만, 2년 6개월간 한 푼도 받지 못했다”고 토로했다. 신 씨는 전남편이 다른 범죄로 인한 재판에서 법정구속을 피하고자 양육비를 보낸 것을 마지막으로 양육비를 받지 못했다. 현재까지 미지급액은 6400만 원에 이른다.

이날 서울 중구 이행원에서 진행된 기자 간담회에서 여성가족부 및 이행원 관계자는 그동안의 주요 사업과 정책, 향후 계획을 설명했다. 국가가 한부모가족에 양육비를 먼저 지급한 뒤 비양육자로부터 나중에 받아내는 ‘양육비 선지급제’ 도입을 위한 법률안 통과도 강력히 촉구했다.

이날 간담회에 참석한 신영숙 여가부 차관은 “양육비 선지급제 도입은 정부가 양육비 문제를 아동 생존권 보장과 복리 실현 문제로 인식하고 국가의 기본 책무를 적극적으로 수행하겠다는 의지와 계획”이라고 밝혔다. 또 “양육비 이행 정책은 넓게 보면 저출생 대책에 포함된다”며 “저출생 위기 대응을 위해서 여가부도 더 많은 노력을 하겠다”고 말했다.

신영숙 여성가족부 차관은 22일 이행원 간담회에 참석해 “양육비 선지급제 입법을 22대 국회 첫 본회의 통과를 목표로 조속히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양육비이행관리원 제공

“5000만 원 순이익 가게도 빼앗겨… 전남편은 출소 후 외국으로 떠난다고 말해”

신 씨는 2022년 이행원을 찾아 양육비 이행 확보 지원을 신청했다. 이를 통해 재산 명시, 재산 조회, 채무불이행자 명부 등재, 채권 압류 및 추심 명령을 진행했으나 전남편은 모든 재산을 시댁 명의로 돌린 뒤였다. 현재 복역 중으로 경제활동을 할 수 없어 양육비를 지급하지 않고 있다. 신 씨에 따르면 전남편은 “10월 출소하면 바로 외국으로 나갈 것”이라 했다.

신 씨는 아버지가 서울 은평구에서 40년간 운영하던 가게를 이어받아 전남편과 공동명의로 운영했지만, 이혼 과정에서 가게를 전남편 측에 빼앗겼다고 주장했다. 전남편이 건물주를 협박해 가게 명의를 자신의 부친(신 씨의 시아버지) 명의로 돌렸다는 것이다. 신 씨는 “그 가게는 월 순이익만 5000만 원에 달한다. 시댁은 포르쉐와 벤츠를 몰고 다닐 정도로 너무 잘 지내고 있다”며 “1~2월 가게 앞에서 1인 시위도 했지만 돌아오는 건 30분 동안의 욕뿐이었다”고 말했다.

공과금마저 연체될 정도로 힘든 생활을 영위하던 신 씨는 지난해부터 양육비를 받지 못하는 위기 한부모 가구에 자녀 1인당 월 20만 원의 양육비를 지원하는 한시적 양육비 긴급지원을 받았으나, 이마저도 이번 달 지원이 끝날 예정이다. 신 씨는 “양육비 선지급제가 도입이 안 되면 저는 희망이 없다”며 국가에서 미지급된 양육비를 먼저 지원하는 방향으로 제도가 강화돼야 한다고 밝혔다.

9월 이행원 독립기관 전환…“양육비 선지급제 법안 22대 국회 첫 본회의 통과 목표로”

전주원 이행원 원장은 22일 간담회에서 “이행원이 독립기관으로 전환된다면 소송 시 원고적격 문제, 예산·인력 등의 문제가 해결될 것으로 기대한다”고 밝혔다. 양육비이행관리원 제공

2015년 여가부 산하 한국건강가족진흥원 내 조직으로 설립된 이행원은 미성년 자녀의 양육비 이행 청구, 소송, 확보 지원 업무를 수행한다. 3월 26일부터 시행된 ‘양육비 이행확보 및 지원에 관한 법률’ 개정안에 따라 9월 27일부터 독립기관으로 전환한다. 전주원 이행원 원장은 “독립 이전엔 이행원에 법인격이 없어 소송 시 원고적격이 없었다. 이제는 문제없이 소송을 원활히 진행할 수 있을 것”이라며 “기획재정부에 필요한 예산과 인력을 청구할 때 진흥원 내부 절차에 막히는 문제도 해결될 것이라 기대한다”고 밝혔다.

이행원 소속 변호사는 현재 11명인데 직접 소송을 진행하는 변호사는 7명이다. 이행원 이행확보부 부장인 양세희 변호사는 “지난해 기준 변호사당 소송 건수는 250건 정도”였다며 “본안 사건은 인당 50~60건, 추심 사건은 70~80건을 맡는 게 이상적이다. 변호사 인력이 20명은 돼야 업무가 원활할 것”이라 설명했다.

양육비 이행률은 2015년 21.2%에서 2023년 42.8%로 꾸준히 증가했다. 그러나 여전히 양육비 채무자의 동의 없이는 금융정보를 조회할 수 없는 등 양육비 확보에 한계가 존재한다. 한시적 양육비 긴급지원 제도도 그 대상이 ‘미성년 자녀를 둔 중위소득 75% 이하 한부모가구’에 한정되며, 최대 12개월만 양육비가 지급된다.

이에 여가부와 이행원은 관련 법 개정을 통해 대상을 중위소득 100% 이하의 한부모가구로 넓히고, 기간도 자녀가 만 18세가 될 때까지로 늘리는 ‘양육비 선지급제’ 도입을 추진하고 있다. 또 이행원에서 비양육자의 금융정보 등 소득·재산을 조회할 수 있도록 해 양육비 회수율을 2027년 55%까지 올리겠다는 입장이다.

그러나 국회 여성가족위원회 법안소위 개최가 불투명해지며, 21대 국회 내 법안 통과가 사실상 어려워진 상황이다. 전 원장은 “양육비 선지급제는 대통령과 여야 공통 공약인 만큼 22대 국회가 열리면 최대한 빨리 다시 법안을 마련하겠다”고 밝혔다. 신 차관도 “22대 국회에서 첫 본회의 통과를 목표로 조속히 입법을 추진하겠다”고 말했다.

여근호 기자 yeoroot@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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