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혼 후 '혼인 무효' 가능···가족등록부서도 삭제

김선영 기자 2024. 5. 23. 16:20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대법, 40년만에 판례 변경]
조희대 대법원장, 취임 후 5개월만 첫 전원합의체 선고
전원 합치 의견으로 "이혼했어도 혼인 무효 확인할 이익 있어"
혼인 무효 시 이혼과 달리 법적 분쟁 한꺼번에 해결돼
조희대 대법원장 등 대법관들이 23일 서울 서초구 대법원 대법정에서 열린 전원합의체 선고에서 자리에 앉아 있다. 연합뉴스
[서울경제]

이미 이혼했더라도 당사자간 실질적 합의가 없는 등 특별한 상태에서 이뤄진 혼인일 경우 혼인 자체를 무효로 할 수 있게 됐다. 1984년부터 유지된 대법원 기존 판례가 40년만에 변경된 것이다. 이날 선고로 무효인 혼인 전력이 기재된 가족관계등록부 정정과 채무 연대책임 해소 등 그간 불이익을 받아온 이들의 권리구제가 가능해질 전망이다.

대법원 전원합의체는23일 A씨가 전 남편 B씨를 상대로 낸 혼인 무효 청구 소송에서 원심의 각하 판결을 파기하고 사건을 서울가정법원으로 돌려보냈다. 대법원은 전원일치 의견으로 이혼으로 혼인 관계가 이미 해소됐어도 혼인 무효의 확인을 구할 이익이 인정된다고 보아야 한다고 봤다.

앞서 대법원은 1984년 '여자인 청구인이 혼인하였다가 이혼한 것처럼 호적상 기재되어 있어 불명예스럽다는 사유는 청구인의 현재 법률관계에 영향을 미치는 것이 아니고, 이혼 신고로써 해소된 혼인관계의 무효 확인은 과거의 법률관계에 대한 확인이어서 확인의 이익이 없다'는 취지로 판시한 바 있다.

하지만 대법원은 이날 선고로 40년만에 판례를 뒤집었다. 혼인 관계로 수많은 법률 관계가 형성되기 때문에 이혼으로 해당 무효 확인을 구하는 분쟁 절차를 일일이 밟는 것보다 혼인 자체에 대한 무효 확인을 구하는 것이 한꺼번에 분쟁을 해결하는 수단이 될 수 있다고 판단한 것이다.

대법원은 "무효인 혼인과 이혼은 법적 효과가 다르다"며 "무효인 혼인은 처음부터 혼인의 효력이 발생하지 않지만, 이혼은 혼인관계가 해소되었더라도 그 효력은 장래에 대해서만 발생하므로 이혼 전에 혼인을 전제로 발생한 법률관계는 여전히 유효하다"고 짚었다.

혼인이 무효로 결정될 경우 혼인 당시 생활비 등 각종 지출로 발생한 일상가사채무에 대한 연대책임도 사라진다. 민법 832조는 이혼을 하더라도 일상가사채무에 대해 양측에 연대책임을 물고 있다.

민법 제809조 제2항에 규정된 인척간의 혼인금지 규정도 적용되지 않는다. 이밖에 형법 제328조의 친족상도례 규정이 적용되지 않는다. 친족상도례는 타인이 점유하거나 권리를 가진 전자기록 등의 특수매체 기록을 은닉 또는 손괴해 권리행사를 방해하는 것에 대해 5년 이하의 징역 또는 700만 원 이하의 벌금에 처하는 죄에 대해 직계혈족, 배우자, 동거친족, 동거가족 또는 그 배우자간에는 면제할 수 있는 것인데, 혼인 무효에 따라 처벌도 가능해진다.

재판부는 또 무효인 혼인 전력이 잘못 기재된 가족관계등록부의 정정 요구를 위한 객관적 증빙자료를 확보하기 위해 혼인관계 무효 확인의 소를 제기할 필요가 있다고 봤다.

아울러 "가족관계등록부의 잘못된 기재가 단순한 불명예이거나 간접적·사실상의 불이익에 불과하다고 보아 확인의 이익을 부정한다면 혼인무효 사유의 존부에 대하여 법원의 판단을 구할 방법을 미리 막아버림으로써 국민이 온전히 권리구제를 받을 수 없게 되는 결과를 가져올 수 있다"고 짚었다.

해당 혼인 무효 사건의 청구인은 2001년 배우자와 결혼한 뒤 2004년 이혼했는데, 혼인신고 당시 혼인 의사를 결정할 수 없는 정신 상태에서 실질적 합의 없이 혼인신고를 했다며 혼인을 무효로 해달라고 청구했다. 하지만 1심과 2심 모두 혼인 관계가 해소되었으므로 실익이 없다며 청구인의 소송을 각하했다.

대법원 연구원은 “이혼 후 혼인무효 확인 청구는 포괄적 법률분쟁을 일거에 해결하는 수단으로 혼인 전력이 잘못 기재된 가족관계등록부의 정정을 할 수 있는 수단을 제공하는 등 분쟁을 실질적으로 해결될 수 있도록 당사자의 권리 구제 방법을 확대하였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고 설명했다.

이날 선고는 조희대 대법원장이 지난해 12월 취임한 약 5개월만에 열린 첫 전합 판결이다. 지난 3월 조 대법원장은 대법관 임명 완료로 올해 첫 13명의 대법관이 참여하는 완전체 전합 심리를 진행한 바 있다.

전합은 사회적으로 중대한 영향을 미치는 사건과 판례를 변경할 필요가 있는 경우 법원행정처장을 제외한 대법관 모두가 참여해 심리 및 선고를 내리는 절차다. 대법관들의 의견이 몇 대 몇으로 갈리느냐가 판결에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13명의 대법관 모두가 참여한 완전체 심리는 의미가 크다.

한편 이날 대법원은 혼인 무효 사건 외에도 이미 구속된 피고인이 별도의 사건으로 기소된 경우 국선 변호인을 선정해야 하는지 여부 등 총 3건의 전합 판결을 선고했다. 나머지 11건은 심리 중이다.

김선영 기자 earthgirl@sedaily.com

Copyright © 서울경제.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