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사모와 개딸 [김태훈의 의미 또는 재미]

김태훈 2024. 5. 23. 15: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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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무현은 2000년 4월13일 치러진 제16대 국회의원 총선거 당시 새천년민주당(현 더불어민주당) 후보로 부산 지역구에 출마했다가 낙선했다.

이 일을 계기로 노무현을 사랑하는 사람들의 모임, 약칭 '노사모'가 생겨났다.

 "대한민국 최초의 정치인 지지 단체"라는 평가를 받는 노사모는 2002년 노무현의 대통령 당선에 일등공신 역할을 했다.

그런데 노무현이 대통령으로 일한 2003년 2월∼2008년 2월을 떠올리면 과연 노사모가 팬덤에 해당하는지 의문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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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무현은 2000년 4월13일 치러진 제16대 국회의원 총선거 당시 새천년민주당(현 더불어민주당) 후보로 부산 지역구에 출마했다가 낙선했다. 52.5% 과반 득표율을 기록한 한나라당(현 국민의힘) 후보 허태열보다 약 2만표 적은 35.7%로 고배를 마셨다. 지지자들 사이에 ‘바보 노무현’이란 말이 생겨났다. 지역감정 탓에 영남에선 당선이 어렵다는 점을 뻔히 알면서 부산 출마를 강행한 그의 우직함을 칭송하는 ‘반어적’ 표현이었다. 이 일을 계기로 노무현을 사랑하는 사람들의 모임, 약칭 ‘노사모’가 생겨났다. “대한민국 최초의 정치인 지지 단체”라는 평가를 받는 노사모는 2002년 노무현의 대통령 당선에 일등공신 역할을 했다.
노무현 전 대통령. 세계일보 자료사진
오늘날 노사모는 ‘팬덤 정치의 원조’로 불린다. 팬덤이란 특정인에 대한 무조건적 지지를 뜻한다. 그런데 노무현이 대통령으로 일한 2003년 2월∼2008년 2월을 떠올리면 과연 노사모가 팬덤에 해당하는지 의문이 든다. 가장 대표적인 것이 2003년 이라크 전쟁 당시 상황이다. 미국이 “이라크가 대량살상무기(WMD)를 보유하고 있다”며 침공을 단행한 것을 놓고 국제사회에선 비판론이 거셌다. 하지만 노무현정부는 미국을 돕기로 하고 이라크 파병을 결정했다. 한·미동맹의 중요성을 감안한 조치였다. 정작 노사모는 반대 입장을 분명히 했다. 노사모 회원들의 온라인 게시판에는 “노 대통령 아들부터 이라크에 보내자” “노무현 정권에 대한 지지를 철회하고 노사모를 탈퇴할 것” 등의 글이 줄을 이었다.
노무현정부 시절 협상이 시작돼 훗날 결실을 맺은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은 또 어떤가. 노사모 회원 전부가 그런 것은 아니었으나 노무현을 겨냥해 ‘친미주의자’ ‘신(新)자유주의자’ 등 비난을 쏟아냈다. 2006년 9월 어느 언론 보도에 따르면 한 노사모 회원은 “한·미 FTA 문제를 보면서 지지를 철회했다”고 밝혔다. 또 다른 이는 “내가 노 대통령을 배신한 게 아니라 노 대통령이 우리를 배신했다”며 당시 여당이던 열린우리당을 탈당해 민주노동당(현 정의당)으로 옮긴 사실을 털어놨다. 이라크 파병 및 FTA 체결을 통한 한·미동맹 강화는 오늘날 노무현정부의 최대 치적으로 꼽힌다. 중요한 것은 노사모가 노무현이라는 정치인의 팬에 머물지 않고 사안에 따라 노무현과 다른 목소리를 내는 소신파가 다수인 집단이었다는 점이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 세계일보 자료사진
민주당 대표 이재명의 강성 지지층은 흔히 ‘개딸’(개혁의 딸)로 불린다. 퇴임을 앞둔 김진표 국회의장이 22일 고별 기자간담회에서 노사모와 개딸을 비교해 눈길을 끈다. 그는 “노사모는 노 대통령에 대해서도 거침없이 비판했다”며 “그런 건강한 팬덤으로 계속 작용해야 하는데 극단적인 팬덤들은 상대를 수단, 방법 가리지 않고 정쟁의 장에서 배제하는 수단으로 좌표 찍고 집중 공격하는, 대화와 타협의 정치 본령을 훼손하는 것을 목표로 작동하고 있어 안타깝다”고 말했다. 민주당에서 이재명과 조금이라도 다른 의견을 내는 정치인들을 겨냥해 맹공을 퍼붓는 개딸의 행태를 비판한 것으로 풀이된다. 그러고 보니 요즘 주변에 “노무현이 진짜 괜찮은 정치인이었다”고 말하는 이가 부쩍 늘었다. 괜히 나온 얘기는 아닐 것이다.

김태훈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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