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닥터 둠’ 루비니 “세계경제, ‘스태그플레이션 늪’ 헤어나기 어려울 것”

김지섭 기자 2024. 5. 23. 13:47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아시안리더십콘퍼런스

“앞으로 세계 경제는 성장률은 낮은데 물가는 잡히지 않는 ‘스태그플레이션(stagflation)의 늪’에서 헤어나기 어려울 것입니다.”

세계적 석학인 누리엘 루비니 미국 뉴욕대 명예교수는 22~23일 조선일보가 주최한 제15회 아시안리더십콘퍼런스(ALC)에 참석해 ‘닥터 둠(Dr. Doom)’이라는 별명에 걸맞게 암울한 전망들을 쏟아냈다. 루비니 교수는 “코로나 팬데믹 이후 다양한 경제적·비(非)경제적 위협들이 결합되면서 세계는 ‘초거대 위협(Megathreats)’에 직면한 상태”라고 강조했다.

2024년 5월 22일 서울 신라호텔에서 열린 아시안리더십콘퍼런스에서 닥터둠 이라는 별명으로 널리 알려진 누리엘 루비니 뉴욕대 스턴 경영대학원 명예교수가 세계 경제 전망에 대해 말하고 있다. /박상훈 기자

2008년 미국발(發) 세계 금융위기를 예측한 것으로 유명한 루비니 교수는 경제에 대한 비관적 전망을 많이 해 ‘닥터 둠’으로 불린다. 1998년 클린턴 행정부 당시 백악관 경제자문위원회 수석이코노미스트였고, 미국 연방준비제도(Fed), 미 재무부, 국제통화기금(IMF) 등에서도 근무했다. 금융위기 당시 금융위원장을 지낸 전광우 세계경제연구원 이사장은 이날 루비니 교수와의 대담에서 “금융위원장이었을 때 루비니 교수의 말에 더 귀를 기울였어야 했다”고 말했다.

◇초거대 위협으로 스태그플레이션 고착화

루비니 교수는 세계 경제가 2020년 코로나 팬데믹을 기점으로 이전과 차원이 다른 ‘다중 위기’와 ‘영구적 위기’ 국면에 들어서고 있다고 진단했다. 전통적 경제·통화·금융·무역 위기 외에도 우크라이나 전쟁 등의 지정학적 위기와 저출생·고령화 문제를 비롯해 정치적 갈등, 기후 위기, 전염병 확산, 기술 혁명 등의 비경제적 위협들이 상호 작용하면서 ‘퍼펙트 스톰’을 일으키고 있다는 것이다. 그는 “현재 세계경제는 저금리·저물가·저성장이 이어졌던 팬데믹 이전과 판이하게 다른 환경이 됐다”며 “고금리로 각국 정부의 부채 위험이 커지고, 탈세계화 속에 경제 파편화 현상이 나타나고, 국제 거래에서 달러화 결제를 위안화 등 다른 통화로 대체하려는 시도들이 나타나는 점도 큰 변화”라고 짚었다.

루비니 교수는 이러한 경제적 변화에 비경제적 위협들이 복잡하게 얽히면서 스태그플레이션이 반복적으로 나타날 것으로 내다봤다. 루비니 교수는 “미·중 갈등과 탈세계화 등으로 성장은 위축되고, 인구 고령화와 기후 위기 대응을 위한 재정 투입이 늘어나 물가를 자극하는데다 친노조 정책 등으로 임금은 계속 오를 것”이라며 “이는 스태그플레이션을 유발하기에 적절한 환경”이라고 말했다.

2024년 5월 22일 서울 신라호텔에서 열린 아시안리더십콘퍼런스에서 닥터둠 이라는 별명으로 널리 알려진 누리엘 루비니 뉴욕대 스턴 경영대학원 명예교수가 세계 경제 전망에 대해 말하고 있다. /박상훈 기자

루비니 교수는 디플레이션(물가 하락)과 부동산 경기 침체로 어려움을 겪는 중국 경제에 대해서도 “반등이 어려울 것”으로 전망했다. 경착륙까지는 아니겠지만 목표치인 5%대 성장률 달성에 어려움을 겪으며 ‘울퉁불퉁한’ 성장 경로를 보일 것으로 예상했다. 중국을 제치고 세계 1위 인구 대국으로 떠오른 인도에 대해서는 “세계 경제, 글로벌 공급망과의 통합도가 낮은 편이어서 중국의 자리를 대체하기는 어려울 것”이라고 말했다.

루비니 교수는 시장 초미의 관심사인 미국 연준의 올해 금리 인하 전망에 대해서는 “오는 9월에 한 번, 11월이나 12월에 한 번 총 2회 금리를 내릴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그래픽=조선디자인랩 김영재

◇”저출생 문제, AI로 극복 가능”

루비니 교수는 심각한 저출생 문제를 겪고 있는 한국에 “인구 감소 문제에 대한 ‘시각의 전환’이 필요하다”는 차별화된 조언을 내놨다. 그는 “고령화로 인구가 줄어드는 나라는 성장 잠재력이 떨어지고, 인구가 늘어나는 나라는 잠재력이 올라가는 것이 상식이지만 인공지능(AI) 등 첨단 기술 발달로 이러한 상식이 더는 통하지 않을 수 있다”고 말했다. AI가 고도화할수록 지금보다 적은 인력으로도 생산성을 크게 높일 수 있기 때문에 인구 문제가 생각보다 심각하지 않을 수 있다는 것이다. 루비니 교수는 “AI는 부가가치를 적게 만들어내는 사무직·현장직 일자리를 크게 감소시킬 것”이라며 “인구가 줄어드는 것은 일자리가 부족해지는 시대에 오히려 장점이 될 수도 있다”고 말했다.

2024년 5월 22일 서울 신라호텔에서 열린 아시안리더십콘퍼런스에서 닥터둠 이라는 별명으로 널리 알려진 누리엘 루비니 뉴욕대 스턴 경영대학원 명예교수가 세계 경제 전망에 대해 말하고 있다. /박상훈 기자

공식 세션 이후 진행된 본지 인터뷰에서 루비니 교수는 세계 경제에 대한 전망과 달리 한국 경제를 밝게 내다봤다. 그는 반도체 수출 의존도가 너무 크다는 지적을 받는 한국 경제에 대해 “반도체 안에서도 고급 반도체 등 여러 분야가 있고, 한국은 이에 잘 대응하고 있다”며 “반도체 외에도 자동차 등 다양한 첨단 제조업을 보유하고 있고, 이는 향후 전기차·자율주행차 등의 혁명을 이끌 수 있다”고 말했다. 다만 한국이 중국의 글로벌 공급망 체계의 일부로 편입돼 있다는 점, 미·중 갈등 속 경제적 피해를 볼 수 있다는 점을 한국 경제의 주된 위협 요인으로 꼽았다.

그는 윤석열 정부가 추진하는 주식시장 ‘밸류업 정책’에 대해서는 “주주 가치를 극대화하고 수익성과 주가를 높이는 것 외에도 기업이 해야 할 일에 대한 보다 포괄적 시각이 필요하다”는 의견을 밝혔다. 또한 한국 정부가 작년 11월부터 불법 무차입 공매도를 문제 삼아 공매도를 전면 금지하고 있는 것에 대해 “공매도를 금지하는 것에는 원칙적으로 반대하는 입장”이라면서도 “다만 아무 규제 없이 공매도를 허용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고, 시장 왜곡을 일으키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Copyright © 조선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