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세계 143개국이 인정해도, 실효(實效)는 별로 없는 ‘팔레스타인 국가’

이철민 기자 2024. 5. 23. 13: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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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20에서 한국ㆍ미ㆍ독ㆍ영ㆍ프 등 9개국, ‘국가’로 인정 안 해
유엔 회원국 193개 국 중 74%가 인정
’팔’ 영토가 될 요르단강 서안의 60%는 이스라엘 단독 관할

22일 노르웨이ㆍ아일랜드ㆍ스페인 등 유럽연합(EU)에 속한 3개국이 새로이 팔레스타인을 ‘국가(state)’로 인정한다고 발표했다. 이에 따라, ‘팔레스타인 국가’를 인정하는 나라 수는 유엔 회원국 193개국 중에서 143개국으로 늘어났다. 특히 노르웨이는 조만간 요르단강 서안(West Bank)에 위치한 자국 대표부를 대사관으로 승격하겠다고 발표했다.

1월 20일 스페인 바르셀로나에서 열린 가자 지구의 즉각적인 휴전을 요구하는 집회에서 한 어린 아이가 팔레스타인 국기를 흔들고 있다. /AP 연합뉴스

그러나 주요 서방 국가들은 이스라엘과의 협의를 거친 팔레스타인 국가 설립을 원한다. 또 G20 국가 중에서도, 한국과 미국ㆍ호주ㆍ캐나다ㆍ프랑스ㆍ독일ㆍ이탈리아ㆍ일본ㆍ영국 등 9개국이 팔레스타인을 국가로 인정하지 않는다.

이스라엘은 EU 3개국 대사들을 소환해 팔레스타인 국가 인정은 “왜곡된 조치이며, (하마스가 저지른) 테러가 보상 받았다”고 비난했다.

◇국가로 인정하는 관행은

한 나라가 다른 나라를 인정하는 절차는 일반적으로 1933년 12월 우루과이의 수도 몬테비데오에서 발표된 협약을 따른다. 당시 아메리카 대륙에서 어떤 나라가 ‘독립국’이라고 주장할 때 이를 어떻게 판단하고 대응할지에 대해, 미국을 비롯해 이 대륙의 20개국이 모여 서명한 협약이다.

몬데비데오 협약은 ①항구적인 인구 ②정부의 존재 ③뚜렷이 정의된 영토 ④타국(他國)과 외교 관계를 수립할 능력 등 네 가지의 기준을 적용한다. 그러나 리비아는 현재 2개의 정부가 존재해, 리비아를 국가로 인정하는 나라는 이 중 하나를 ‘합법 정부’로 승인해야 한다.

한 지역이 ‘국가’로 인정받는다는 것은 이런 국제법 하에서 국가로서의 조건을 충족했다는 뜻이다. 따라서 국가로 인정한 다른 나라는 외교 관계를 수립하고 대사관을 설치한다.

노르웨이의 에스펜 바르트 에이데 외교장관은 기자회견에서 “1999년 요르단강 서안에 개설한 대표부를 대사관으로 격상하며, 팔레스타인 이슈는 노르웨이에선 ‘국가’로서의 법적인 효력을 갖게 된다”고 말했다.

노르웨이는 수십년간 ‘이스라엘의 친구’를 자처했다. 그러나 이스라엘의 가자 전쟁이 10개월을 넘기면서, 이스라엘에 대한 비난 강도를 높였다. 또 작년 10월7일 하마스의 기습테러 때 10여 명의 직원이 가담한 유엔팔레스타인난민구호기구(UNRWA)에 대한 지원도 계속하고 있다.

한편, 아일랜드ㆍ스페인은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2개 국가 해법(two-state solution)’의 중요성만 강조하고, 국가 인정에 따른 즉각적인 변화는 언급하지 않았다.

사실 유럽 3개국의 선언은 수많은 민간인 살상을 초래하는 이스라엘의 가자(Gaza) 전쟁 수행 방식을 비판하고, 즉각적인 휴전을 지지하기 위한 상징성을 지닌다는 해석이 우세하다. 그러나 EU 3개국의 ‘팔레스타인 국가 인정’ 선언을 비난하는 측은 “하마스를 테러집단으로 규정하지도 않더니, 작년 10월 7일 이스라엘 기습테러를 저지른 살인ㆍ강간 범죄자들을 ‘국가 승인’으로 보상했다”고 비판한다.

◇팔레스타인, 지난 달 안보리에서도 ‘회원국’ 거부돼

지난 달 유엔총회는 팔레스타인에 대한 정식 회원 자격을 결의했다. 그러나 이를 승인할 권한이 있는 안보리에서 4월 18일 상임이사국인 미국은 거부권을 행사했다. 미국은 “하마스가 일정 지역[가자]을 차지해, 팔레스타인자치정부(PA)가 자기들 국가라고 하는 지역도 완전히 통제하지도 못한다”며 거부했다. 안보리 15개국 중에서 러시아ㆍ중국 등 12개국이 찬성했고, 영국ㆍ스위스는 “즉각적인 휴전과 인질 석방이 우선”이라며 기권했다.

이스라엘은 1949년에 유엔 회원국이 됐다. 그러나 팔레스타인은 2012년에, 교황청과 동급인 비(非)회원 옵서버 자격을 부여받았다.

◇현실적으로 매우 요원한 2개 국가 설립 전망

서방 국가의 대부분은 팔레스타인의 일방적인 독립국 선언이 아니라, 미국을 비롯한 주요 파트너들의 참여와 지지 속에 이스라엘과 협의를 마친 ‘팔레스타인 독립국’을 원한다.

그러나 문제는 현재의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와 그를 지지하는 강경파 정당들은 ‘이스라엘ㆍ팔레스타인 2개 국가안’ 자체를 배격한다는 점이다.

그간 국제사회에서 논의된 ‘2개 국가안’에서 팔레스타인 국가의 ‘영토’로 할당된 곳은 요르단강 서안과 동(東)예루살렘, 가자 지구다.

그런데 지난 수십 년 동안 요르단강 서안과 동예루살렘에는 144개의 유대인 정착촌이 들어섰다. 동예루살렘에는 22개의 정착촌에 유대계 인구 22만 명이 산다.

그래픽=조선디자인랩 한유진

또 서안 C 구역(Area C)에는 122개 정착촌에 51만 명의 유대계 인구가 산다. C 구역은 전체 서안 면적의 61%를 차지하며, 이스라엘이 단독으로 치안ㆍ행정권을 행사하는 지역이다. 1950년 요르단 정부는 서안 지역을 점령하면서 이곳에 살던 유대인 1만7000명을 모조리 쫓아냈는데, 70여 년 뒤 그 수가 51만 명이 된 것이다.

예루살렘 동쪽 7km에 위치한 요르단강 서안의 마알레 아두밈 유대인 정착촌. 1967년 6일 전쟁에서 이스라엘은 서안을 요르단으로부터 빼앗았다. /로이터 연합뉴스

22일 EU 3개국이 팔레스타인을 국가로 인정하자, 요아브 갈란트 이스라엘 국방장관은 아예 지난 19년 간 유지해 오던 요르단강 서안 예닌 지역에 대한 유대인 접근 조치를 전면 해제했다. 그렇게 되면, 이 지역에도 또 유대인 정착촌이 들어서게 되고, 한번 들어선 정착촌은 철수하기가 매우 힘들다. 이밖에 이스라엘군이 전쟁을 치르는 가자 지구는 PA의 정적(政敵)인 하마스 수중 하에 있었다.

◇팔레스타인, 1947년 이스라엘 독립 때 ‘2개국 안’ 반대했다가

요르단강 서안의 라말라에 ‘수도’를 둔 팔레스타인자치정부(PA)로선 ‘2개국 설립안’에 기초해 주장할 영토 자체가 갈갈이 찢기고 빼앗긴 셈이다.

1947년 유엔이 아랍국가[팔레스타인인 국가]와 유대국가[이스라엘]의 2개 독립국 설립을 승인했을 때, 팔레스타인인들과 주변 아랍국가들은 이를 거부했다. 그리고 1948년 5월14일 이스라엘이 독립을 선언한 날, 바로 이집트ㆍ시리아ㆍ요르단ㆍ이라크군과 팔레스타인 거주 아랍인들은 팔레스타인을 진격했다. 10개월 뒤 전쟁은 이스라엘의 승리로 끝났다.

이 전쟁으로, 이스라엘은 유엔이 유대국가로 구분한 영토 외에도, 팔레스타인 국가 영토로 할양한 곳의 60%도 차지했다.

이어, 1967년 4월의 6일 전쟁(3차 중동전쟁)에서 이스라엘은 요르단강 서안과 동예루살렘을 모두 장악했다.

결국 1988년, PA의 전신(前身)인 팔레스타인해방기구(PLO)의 야세르 아라파트 의장은 이 6일 전쟁 발발 직전까지 아랍국가들이 장악했던 땅에 기초한 ‘팔레스타인 국가’를 일방적으로 선포했다.

이후 1993년 노르웨이 오슬로에서 2개 국가 설립에 대한 구체적인 협상이 진행됐지만, 번번이 좌초됐다. 이스라엘은 기회가 있을 때마다 요르단강 서안에서 유대인 정착촌과 전초기지들을 확대해 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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