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D ‘평가 지표’ 바꿔야 한다[시평]

2024. 5. 23. 11: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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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혁재 서울대 전기정보공학부 교수
정부 R&D 기술적 성공률 99%
사업화 기준 적용 땐 38% 불과
성과 판단 기준·시점 개선할 때
3~5년 뒤 사업 수익률이 중요
선행기술 경우 논문 인용지수
기반기술은 활용 횟수 따져야

우리나라의 연구·개발(R&D) 투자 규모는 3년 전인 2021년을 기준으로 100조 원을 넘어섰으며, 국내총생산(GDP)과 비교하면 4.93%로 세계 2위에 해당한다. 하지만 우리나라 R&D 투자의 생산성이 높지 않다는 비판이 꾸준히 제기되고 있다. 특히, 정부에서 지원하는 24조 원 규모 R&D 과제의 기술적 성공률은 지난 2020년 기준으로 99.7%로서, 대부분의 과제가 목표 달성에 성공한 것으로 평가됐다. 그런데도 사업화 성공률이 38.5%에 불과하다는 것은 낮은 R&D 생산성을 말해준다.

R&D 생산성을 높이기 위해서는 과제 수행 결과를 평가한 후 성공적인 연구자 또는 연구기관에 한해 후속 과제를 수행할 수 있도록 하는 선별 작업이 필요하다. 그러나 과제 성공률이 99.7%라는 것은 이러한 선별 작업이 거의 이뤄지지 않고 있음을 의미한다. 즉, 과제 성과에 대한 평가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은 상황에서 또 다른 과제를 다시 수행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따라서 과제 성과의 우수성을 판단할 수 있는 평가 방법의 개선이 시급함을 알 수 있다.

현행 평가 방법에서는 과제 계획을 수립할 때 성능이나 기능 등의 기술적 목표를 세우고, 과제 종료 시점에 이러한 목표를 달성했는지 여부를 판단한다. 대개 과제 목표를 달성하지 못하면 지원받은 과제비를 반납해야 하기 때문에, 목표를 수립할 때 달성 가능한 수준으로 정하게 된다. 하지만 과제 수행 결과로 목표한 기술 개발을 달성하더라도, 사업화를 위해서는 완성도를 높이거나 기술 실증 과정 등 추가적인 단계를 거쳐야 한다. 그러니 사업화에 성공하지 못하는 경우가 종종 발생하는 것이다.

현행 제도에서 기술적 성능 및 기능 위주로 평가를 하는 것은 과제 종료 시점에 맞춰 평가를 진행하기 때문이다. 그 반면, 과제의 실질적인 성과인 사업화는 과제 종료 이후 몇 년이 지난 시점에 이뤄지는 경우가 많기에 과제 종료 시점에 바로 평가하기가 어렵다. 따라서 과제의 실질적인 성공 여부를 평가하기 위해서는 과제 종료 시점 대신 3∼5년 정도 지난 뒤에 평가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즉, 이 시점에 정부 지원 과제비 대비 수익률(ROI)로 판단한다면, 과제 성공 수준의 평가가 어렵지 않다.

정부가 지원하는 과제 중에는 당장 사업화가 어렵지만, 미래에 필요한 선행 기술 개발을 목표로 하는 과제도 있다. 이러한 선행 연구는 주로 대학이나 연구소 내에서도 선행 기술 담당 부서에서 이뤄진다. 이러한 과제들도 역시 종료 시점에 기술 수준 달성 여부로 평가돼 대부분 성공 판정을 받는다. 선행 연구의 성과는 학술지에 게재한 논문의 질과 양으로 평가하는 게 더 정확할 것이다. 특히, 논문의 질적 우수성은 피인용지수로 판단할 수 있는데, 이 또한 논문 발표 이후 3∼5년이 지나서 평가 가능하다.

R&D 과제 중에는 논문으로 발표하기도 어렵고, 사업화도 힘들지만 여러 대학이나 민간 기업에서 공동으로 활용할 수 있는 기반 기술을 개발하는 경우도 종종 있다. 이러한 기반 기술들의 연구 성과는 얼마나 많은 대학과 기업에서 활용하느냐가 될 수 있을 것이다. 따라서 과제 성공 여부는 해당 기술의 활용 횟수로 파악할 수 있고, 이를 평가하기 위해서도 과제를 마무리한 뒤에 어느 정도 기간이 필요하다.

기술적 성능·기능 지표 대신 사업 매출, 논문 성과나 활용 횟수 등과 같은 지표로 평가하면 연구자에게 과제 수행에 자율성을 부여하는 장점도 있다. 시장 상황의 변화에 맞게 기술적 지표를 수정할 수 있고, 또한 연구자의 판단에 따라서 도전적인 지표를 목표로 설정할 수도 있다.

특정 연구자는 대개 20년 이상 연구 활동을 지속하는데, 그 기간에 그는 다수의 과제를 수행한다. 따라서 과제 종료 시점에 평가하지 않고 3년에서 5년이 지난 뒤에 평가하더라도 늦지 않다. 즉, 그 연구자의 활동 기간에 연구 역량을 평가해 후속 과제를 지원할지 여부를 판단할 기회가 생긴다. 과제 종료 시점 대신 종료 이후 적절한 기간이 지난 시점에 과제 성격에 부합하는 평가지표를 사용해서 연구 역량을 제대로 평가하고, 부족한 역량의 연구자들을 후속 과제에서 배제하는 시스템을 정착시킴으로써 R&D 생산성이 향상될 수 있기를 기대한다.

이혁재 서울대 전기정보공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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