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순욱의 술기행](116) 우리나라 소주의 원조인 메밀소주를 생산하는 두루양조장

박순욱 선임기자 2024. 5. 23. 11: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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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홍천의 농업회사법인 두루양조 김경찬 대표, 2016년 메밀소주 출시
메밀소주(목맥소주)는 산가요록에 기록된 우리나라 최초의 소주
마가목 열매가 들어간 소주 ‘용24′는 2024년 대한민국주류대상 대상 거머줘
귀농교육만 10년, 부부가 나란히 양조 석사 취득, “후배들 양조장 창업 돕고 싶어”
두루양조장 김경찬-구은경 부부가 제품을 앞에 두고 웃고 있다. 전통주 교육기관, 양조대학원도 나란히 다닌 전통주 업계 잉꼬부부다. /박순욱 기자

강원도 홍천의 농업회사법인 두루주식회사(두루양조장)가 ‘2024 대한민국 주류대상’에서 증류주 부문 대상을 받은 제품은 증류주 ‘용24′다. 갑진년인 올해 청룡의 해를 맞아 한정판으로 내놓은 술인데,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주류품평회에서 떡하니 대상을 받는 영예를 안았다.

용24는 양조장이 있는 홍천의 맑은 물과 지역에서 수확한 쌀과 밀, 그리고 인근에서 어렵게 구한 부재료 마가목열매, 거기에다 김경찬 대표-구은경 이사 부부가 10년 이상 귀농교육을 받아 터득한 노하우와 정성으로 빚는다.

술 이름을 ‘용’이라 한 건 양조장 설립 초기에 낮잠을 자다 용꿈을 꾸었기 때문이라고 한다. 양조장이 있는 동네 이름(용포)에도 ‘용’자가 들어가 있다. 두루양조장 김경찬 대표는 “갑진년 푸른 용의 해에 모두에게 행운을 가져다 주는 술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을 용24에 담았다”고 했다.

강원도 홍천의 두루양조장 김경찬 대표-구은경 이사 부부가 소주 시음을 하고 있다. 두루양조장의 용24 소주는 올해 대한민국주류대상 대상을 받았다. /박순욱 기자

간판도 없어, 겨우 찾아간 양조장은 천혜의 조건을 갖고 있었다. 양조장 뒤의 봉황산, 앞의 백우산, 그리고 양조장 옆으로는 홍천강의 원류인 내촌천이 흐르고 있어, ‘양조장으로 더 이상 좋을 수 없는 입지’라는 생각이 저절로 들었다. 수질이 좋은데다, 수량도 많아 수질 검사를 하러 온 관계자가 “양조장이 아니라, 생수공장을 차려도 잘되겠다”고 청하지 않은 덕담까지 하고 돌아갔다니, 말 다한 것 아닌가.

용24 소주의 특징은 마가목열매다. 용24 종이박스 패키지에는 ‘당신에게 건네는 한잔의 길몽’이란 제목의 글이 적혀져 있다. 한약재로 쓰이는 마가목이 용소주에 들어간 배경, 그리고 용소주의 증류 특징을 소개하고 있어, 그대로 소개해본다.

두루양조장 용24 소주는 2024년 대한민국주류대상(증류주부문)에서 대상을 수상했다. 청룡의 해를 맞아 내놓은 한정판 제품이다. /박순욱 기자

‘향기를 뿜는 용과 마가목이 만나 새해의 좋은 기운을 한 병에 담았습니다. 전통적으로 다양한 질환이나 증상에 쓰여온 약재 마가목은 작지만 빨갛고 달콤하며 진한 장미향을 지녔습니다. 귀농 전 심마니를 따라 산을 다니며 심산유곡에 숨어 크는 마가목을 구해 (술을) 담가 마신 후 그 맛을 잊지 못해 연구하길 12년, 수백번의 실패와 연구 끝에 완성된 마가목 에디션입니다. 두번의 담금을 통해 증류된 용소주는 부드러운 맛을 위해 1차 감압증류, 강렬한 풍미를 위해 2차 상압증류를 했습니다.’

우선 마가목 얘기부터 해야겠다. 마가목은 산지에서 자생하는 장미과 나무에서 열리는 열매로, 동의보감 등에서 약재로 사용하는 재료로 기록하고 있다. 비타민과 항산화 물질, 미네랄이 다량 들어있어 면역력을 높이고 피로 해소, 뼈 건강에 좋다고 알려져 있다. 그러나, 술은 술일뿐, 술은 그 향과 풍미로 평가받아야지, 술 재료가 갖는 의료적 효능을 술맛보다 앞세울 수는 없다.

그런 시각에서 보더라도 용24는 아주 매력적인 술이다. 용24에서는 곡물에서 우러나는 단향, 그리고 은은한 꽃향이 느껴진다. 하지만, 마가목 열매향이 난다고 느끼기는 쉽지 않다. 마가목 열매향이 우리에게 익숙하지 않은 낯선 향이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딱히 뭐라고 하긴 어렵지만, 흔한 쌀소주에서는 느낄 수 없는 고급진 풍미가 애주가의 미소를 불러온다. 소주치고는 도수가 높지 않아 부드럽다고 여겼는데, 용50(알코올 50%) 역시 높은 도수에 비해 목넘김이 아주 부드럽다. 특히, 용50은 3번의 증류 후에 거의 물을 타지 않아 쌀의 단맛이 높은 알코올 도수를 잘 가려준다. 김경찬 대표는 용24에는 은은한 장미꽃 향기가 난다고 말했다. 김 대표는 “용24는 ‘향기 뿜는 용’이란 콘셉트로 태어나 장미꽃 향기가 매력적인 술”이라며 “기분 좋을 정도의 은은한 향기를 갖고 있다”고 말했다. 부재료로 들어가는 마가목 열매는 생과 상태로 덧술 단계에 넣어 술과 함께 발효시킨다.

재료가 같은 용24, 용50의 두번째 특징은 독특한 증류방식이다. 1차 감압증류, 2차 상압증류를 거쳐 만든다. 용50은 상압증류를 한번 더 거친다(3차 증류). 증류식소주의 왕좌’ 화요가 유행을 불러온 감압증류방식은 일반 기압보다 낮은 온도에서 증류해, 알코올을 추출해내는 방식이다. 보통 대기압(이를 상압이라 한다)에서 알코올은 섭씨 78도 안팎에서 끓기 시작하는데, 의도적으로 압력을 낮추면 40도 전후에서도 알코올이 기화돼 물과 분리가 가능하다. 해서, 감압증류는 낮은 온도에서 증류원액을 뽑아내기 때문에 탄내(푸르푸랄 성분)가 없어 술맛이 깔끔한 반면, 다양한 향은 부족하다는 특징이 있다. 반대로, 높은 온도에서 알코올을 추출하는 상압증류는 향은 풍부하지만, 탄내가 나는 단점을 가지고 있다.

두루양조장 김경찬 대표가 병입라인에서 오미자 증류주 엠을 소개하고 있다. 엠은 하이볼, 언더락으로 마시기 좋은 술이다. /박순욱 기자

감압과 상압의 증류방식 차이를 잘 아는 김경찬 대표는 ‘1차 감압, 2차 상압’ 증류해서 용소주를 내린다. 김 대표의 설명이다. “감압의 장점은 낮은 온도에서 알코올 추출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1차 감압에서 완전한 알코올을 포집하고(증류효율 92%), 2차 상압에서 향을 농축하는 증류방식을 택했다. 특히 감압증류는 증류과정에서 술덧을 태우지 않을 수 있기 때문에 주된 술향기를 모으기가 상압증류보다 더 적합하다. 1차 증류에서 상압으로 100도 이상으로 증류하면 술 원액이 타기 때문에 푸르푸랄(열취, 탄내)이 발생, 술의 향기와 알코올 회수율에 악영향을 준다.”

두루양조 김경찬 대표는 좋은 증류주의 특징을 두 가지로 본다. 향과 목넘김이 그것이다. 소주를 입 안에 머금었을 때, 좋은 향을 느낄 수 있어야 하며, 목넘김이 부드러워야 좋은 소주(증류주)라는 것이다. 그래서 김 대표에게는 상압의 단점인 탄내는 최대한 제거해야 할 요소다. 그는 말한다. “증류식 소주라면 마땅히 탄내가 좀 나야 제대로 증류한 술이라고 생각하는 양조장 대표나 소비자들이 꽤 있다. 그리고 증류 후반부에 나오는 꼬리꼬리한 향이 강한 후류(증류과정에서 제일 마지막에 나오는 증류원액. 처음 나오는 원액을 초류, 중간 원액을 본류라고 한다)를 상압증류의 특징이라고 얘기하는 유투버들도 있다. 증류를 제대로 배운 사람이라면, 이런 후류는 따로 받아 버리거나 재증류를 거치는 경우가 일반적이며, 곧바로 제품화하지 않는다.”

김경찬 대표는 이밖에도 술 증류에 대한 본인의 철학, 소신, 그리고 증류방법 등을 상세하게 열거했다. 지금껏 증류주를 생산하는 양조장 대표들을 수없이 만나봤지만, 증류 방식과 그에 따른 결과 등에 대해 김 대표만큼 해박한 지식을 갖고 있는 경우는 드물었다. 증류 공부를 꽤 많이 했나 보다 이런 생각이 들었다. 이같은 궁금증은 인터뷰를 더 진행하면서 자연스럽게 해소됐다. 김 대표 부부는 양조장 창업 이전에 무려 10년간의 귀농교육을 받았고, 그 과정에서 다양한 전통주 교육기관 이수는 물론 서울벤처대학원에서 석사를 마치고 지금은 박사과정 수료를 코앞에 둔 ‘양조학 석사 부부’였다. 머지 않아 ‘양조학 박사 부부’로도 등극할 것이다. 양조장을 운영하는 부부가 나란히 양조학 박사학위를 받는 건 이들 부부가 아마 처음이 아닌가 싶다. 가정에서는 물론 사업에서도 동반자 관계인 부부는 그래서 외부행사에 늘 꼭 같이 다닌다. 전통주 업계의 대표적인 ‘잉꼬부부’다.

두루양조장의 주요 제품 라인. 왼쪽부터 막걸리 술헤는 밤, 엠(메밀증류주), 홀리엠(오미자 하이볼), 용24, 용25, 용41, 용50. /박순욱 기자

이쯤 되면 이들 부부를 탐구할 시점이다. 김경찬-구은경 부부는 KT 입사 동기로 만나 결혼까지 이른 사내부부다. 신입사원 연수 도중 같은 팀원으로 3개월 가량 같이 일하면서 서로 호감을 느낀 덕분에 결혼까지 골인했다. 그런데 누구나 부러워하는 그 좋은 직장은 왜 그만뒀을까? 하는 궁금증은 남는다.

“도시에 살면서 아이들이 아토피가 심해, 수도권으로 거주지를 옮겼다. 그러다, 자연스레 시골살이에 대한 공감이 생겨, 아내가 먼저 ‘시골로 내려가 살면 어떻겠나’고 얘기를 꺼냈다. 당시 입사 10년차쯤 된 시기라 앞으로 10년 동안 더 회사를 다니면서 귀농 준비를 차근히 하자고 의견을 모았다. KT는 입사 20년이 지나면 명예퇴직 기회가 주어지기 때문이었다. 그러다, 19년차인 2014년에 1년 앞당긴 명예퇴직 기회가 주어져, 곧바로 둘다 퇴직했다. 둘 중 한 사람은 회사에 남는 방안도 생각하지 않은 건 아니었지만, 양조장이라는 새 사업을 혼자 할 수는 없었다.”

그렇다고 이들 부부가 귀농을 결심하면서 처음부터 양조장 창업을 생각한 것은 아니었다. 귀농이 무슨 뜻인가? 시골로 내려가 농사를 짓는다는 의미 아니겠나? 이들 부부 역시 처음엔 농사를 염두에 두고 귀농교육을 여러곳에서 받았다. 그러던 중 충북 제천에서 주말(1박2일) 6개월 과정으로 산약초대학 과정을 듣던 중 교육 마지막 날 30분짜리 막걸리 빚기 체험을 하게 됐다. 당시만 해도 ‘술은 대기업에서나 만들 수 있는 제품’인 줄 알았는데, 의외로 쉽게 술을 만들 수도 있다는 사실에 놀랐다고 한다.

2011년 제천산약초대학 수료를 계기로 이들 부부는 양조장 창업을 목표로, 본격적으로 술 배우기에 들어갔다. 한국가양주연구소를 비롯해 다양한 전통주교육기관을 섭렵한 것만으로도 아쉬워, 서울벤처대학원에서 양조 석사과정까지 마친 뒤에야 비로소 2015년 홍천에 두루양조장을 차린다. 그러나, 10년 동안이나 귀농교육을 받았건만, 양조장 설립은 첫삽부터 쉽지 않았다. 진입도로 문제로, 귀농 첫해에는 건축허가가 제때 나오지 못해, 결국 크지 않는 양조장 짓는데만 2년이 걸렸다.

전통주 시장에서 강원도 홍천의 작은 양조장인 두루양조장이 의미를 갖는 이유 중 하나는 메밀소주의 복원이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기록으로 남은) 소주가 바로 목맥소주, 곧 메밀소주다. 이같은 기록은 1450년대 우리나라 최초의 요리책인 ‘산가요록’에서 찾을 수 있다. 2016년에 메밀소주를 두루양조장이 내놓을 때만 해도 메밀소주는 전통주 시장에서 거의 찾을 수 없었다. 메밀은 수확은 물론 가공 과정이 까다로운데다, 가격도 워낙 비싸 술로 만들더라도 타산을 맞추기가 어려웠기 때문이다. 두루양조장의 메밀소주 역시 처음에는 직접 재배한 메밀로 만든 술로, 알코올도수 45도 한병 가격이 15만원에 책정됐다. 가격이 비싼 탓에 물론 잘 팔리지 않았다. 지금은 쌀을 주원료로 하고 메밀을 일부 넣은 제품으로 ‘메밀로25′와 ‘엠(24도)’ 두 제품을 생산하고 있다. 어느 제품을 고르든 화사한 메밀향을 즐길 수 있다.

두루양조장의 이름은 어떻게 정했을까? 전통발효 술로, 소비자들에게 두루두루 건강하고 행복함을 널리 알리겠다는 뜻으로 양조장 이름을 ‘두루’라 했다고 한다. 두루양조장에는 쌀소주, 메밀 소주, 오미자 하이볼(홀리엠) 외에 막걸리까지 제품이 두루두루 있다. 막걸리 ‘술 헤는 밤’은 고문헌에 나온 대로 쌀과 물의 비율을 ‘1대1′로 해서 빚은 무감미료 막걸리다. 가양주연구소 류인수 소장의 저서 ‘한국전통주 교과서’에 부제로 쓰인 ‘쌀 된 되로 물도 돼야(쌀 쓴 만큼 물 양도 같아야)’ 고문헌 글귀를 그대로 제품 제조에 활용한 것이다.

두루양조장은 앞 뒤로 산이 둘러싸고 옆으로 하천이 흐르는 천혜의 양조장 입지조건을 갖고 있다. /박순욱 기자

재료만 보면, 단맛이 별로 없을 것 같은데, 의외로 단맛이 느껴진다. 한편으론 드라이(달지 않음)하기도 하다. 신기하다. 은은한 단맛과 부드러움과 동시에 드라이함도 느껴지는 오묘한 맛이라니. 알코올 도수는 8도로 일반 막걸리 6도에 비해 약간 높은 편이지만, 도수 차이를 느끼기 어려울 정도로 부드럽다. 밀키(milky), 실키(silky)하다. 한마디로 꼭 집어 말하긴 어렵지만, 자꾸만 손과 입이 가는 매력적인 막걸리다. 소비자 가격은 6000원. 두루양조장 술은 모두 가격이 착하다.

‘두루’라는 이름에 걸맞는 것은 다양한 제품만이 아니다. 막걸리, 소주, 리큐르 외에도 과실주 제조 면허도 갖고 있어 크지 않은 이 양조장에서는 못만드는 우리 술이 없을 정도다. 김경찬 대표가 욕심이 많아 술 제조 면허를 죄다 받아둔 것일까?

“지역특산주 면허를 취득한 양조장은 인근 지역에서 생산한 농산물만 술 원료로 사용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지역별로 특산품은 따로 있어, 다양한 술을 만드는데는 이같은 한계가 제약이 되고 있는 실정입니다. 그래서 두루양조장을 창업 인큐베이터로 활용해, 이곳을 거치는 직원들은 자기 고향이든 다른 곳에 가서 자기 양조장을 차리게끔 할 참입니다. 그러러면, 우선 이곳에서 다양한 술을 빚을 수 있어야겠기에 가급적 많은 주류면허를 확보해둔 겁니다. 후배 양조인들의 창업을 돕겠다는 소박한 꿈을 키워나가는 공간이 바로 두루양조장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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