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불’ 안 가리는 전주 고기 맛, 개미지네!

박미향 기자 2024. 5. 23. 1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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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미향 기자의 미향취향 전주 미식 여행 ②
‘동창갈비 본점’의 돼지갈비. 박미향 기자
미향취향은?

음식문화와 여행 콘텐츠를 생산하는 기자의 ‘지구인 취향 탐구 생활 백서’입니다. 먹고 마시고(음식문화), 다니고(여행), 머물고(공간), 노는 흥 넘치는 현장을 발 빠르게 취재해 미식과 여행의 진정한 의미와 정보를 전달할 예정입니다.

전주는 국내 대표 미식 여행지다. 전주만큼 ‘개미(게미)진’(‘먹으면 먹을수록 맛나고 그리워진다’는 뜻의 전라도 방언) 먹거리가 많은 도시도 없다. 이름도 생소한 ‘물짜장’의 탄생지이자 외국인도 환호작약하는 비빔밥 명가가 수두룩하다. 그런데, 물짜장과 비빔밥만 있을까. 짜지도, 달지도, 맵지도 않은 ‘양념 고기’는 전주의 또 다른 얼굴이다.

“처음 문 열었던 38년 전, 그때 맛 그대로입니다.” 지난달 찾은 ‘동창갈비 본점’(전주시 덕진구 송천중앙로 201) 주인 김두홍(62)씨의 아내가 말했다. 그는 ‘동창갈비’ 창업주 김태준씨의 며느리다. 그가 말문을 열었다. “아버님이 10여년 전 갑자기 돌아가셨어요. 당시 동창갈비는 완산구에 있었지요. 지금 이 자리(덕진구)에서도 막 가게를 열 참이었는데, 갑작스러운 일이 생긴 거죠.” 그때의 황망함과 슬픔이 얼굴을 스쳐 갔다. 김두홍씨 부부는 고민 끝에 완산구에 있는 동창갈비(전주시 완산구 고사동 377-1)는 다른 이에게 넘겼다. “아버님이 계시면 모를까, 우리 두 사람이 가게 두 개를 감당하기는 어려웠죠. 하지만 그 집(완산구 동창갈비) 분들 잘 아는 이들이고, 고기 부위가 다를 순 있어도 맛은 거의 같아요.” 식당 위치도, 주인도 다른데, 어떻게 맛이 같다는 얘기일까. “고기를 재우는 양념이 같아요. 아버님이 개발하신 양념이죠.”

‘동창갈비 본점’의 돼지갈비. 박미향 기자
완산구에 있는 ‘동창갈비’의 돼지갈비. 박미향 기자
완산구에 있는 ‘동창갈비’의 돼지갈비. 박미향 기자
완산구에 있는 ‘동창갈비’. 박미향 기자

고기 음식 맛을 결정하는 요소는 여러 가지지만, 그중에서 양념이야말로 화룡점정이다. 요리사의 음식 철학을 구현하고 실력을 드러내는 데 가장 중요한 ‘마지막 한점’이 양념이다. 이 두집은 30여년이 훌쩍 넘는 근사한 양념의 역사를 공유한다.

양념이 밴 고기 맛은 어떨까. 짜지도, 달지도, 맵지도 않다. 씹을수록 감칠맛이 입안을 점령한다. 재료와 배합 비율이 궁금해진다. “말씀 못 드려요. 이건 남편도 모르고 저만 알아요.” 그가 활짝 웃으며 말했다. 며느리로 이어지는 집안 가보가 양념 레시피다.

이 두 집은 양념 맛은 같지만, 다른 점이 있다. 여행 목적과 상황에 따라 선택하면 좋다. 덕진구 동창갈비는 세련된 ‘요즘 식당’이다. 식탁간 거리는 넓고 의자들은 잘 정돈되어 있다. ‘무한리필’되는 반찬은 정갈하다. 패밀리 레스토랑 같다. 연근 샐러드는 아삭하고, 잡채는 보드랍고 고소하다. 반면, 완산구 동창갈비는 고풍스럽다. 창업 때 가게 풍경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다. 작은 인공 정원도 있다. 정원에 있는 어설픈 연못은 70년대 고깃집을 연상하게 한다. 정겹다. 덕진구 동창갈비에 견줘 양념의 농도가 옅다. 언뜻 보면 양념에 재운 고기가 아니라 구이용 생고기처럼 보일 정도다. 덕진구 동창갈비가 어린아이를 동반한 가족이 가기 좋다면 완산구 동창갈비는 전주의 정취를 즐기며 식사하고 싶은 이들에게 권할 만한 곳이다.

‘남도갈비본점’의 ‘남노갈비’. 박미향 기자
‘남도갈비본점’의 ‘남노갈비’. 박미향 기자
‘남도갈비본점’의 ‘남노갈비’ 국물에 비빈 밥. 박미향 기자

양념이 마술을 부리는 고깃집은 여기만이 아니다. 완산구에 있는 ‘남노갈비본점’(완산구 풍남동2가 29-5) 양념도 매콤한 듯하면 달고, 단듯하면 매콤하다. 도무지 맛의 핵심을 알 수가 없다. 돼지갈비에 요술을 부려 ‘남노물갈비’의 맛을 극대화했다. 메뉴 이름에 있는 ‘물갈비’는 찌개나 탕처럼 국물에 돼지고기 등 갖은 재료를 넣어 끓여 먹는 전골식 음식을 말한다. 양념에 잘 버무린 돼지갈비가 콩나물 등 갖은 채소와 국물을 만나 실력 발휘한다. 찌개나 탕과 다른 점이다.

태백의 향토음식 ‘물닭갈비’와 비슷한 형태다. 먹거리가 부족했던 시절 허기를 채우기 위해 태어난 음식이 물닭갈비다. 물갈비에도 이런 사연이 있을까. “처음 (이 맛을) 만든 할머니는 돌아가셨고, 지금은 아들이 양념을 만들어 파는데, 아들만 양념 만드는 법 알고, 아무도 모른다고 하네요. 할머니도 처음에 고생 많이 하셨더라고 하더라고요.” 종업원 말에 고개가 끄덕여졌다. 이 가게가 처음 생긴 해는 1972년이다. 온 나라가 ‘가난 탈출’에 힘을 쏟을 때다. 전주라고 다르지 않았을 터. 그래서인지 ‘남도물갈비’는 푸짐하다. 수북하게 올라간 당면이 시선을 사로잡는다. 콩나물 등 갖은 채소도 넉넉하다. 돼지갈비는 말할 것도 없다. 이 모든 것이 자작자작 깔린 국물에 담겨 나온다. 보글보글 끓는 소리가 커질수록 매콤한 향이 퍼진다. 종업원의 참견이 그저 즐겁기만 하다. “당면 사리 헤집지 말고 그대로 두고 8~10분 익혀요. 꼭이요! 꼭 뒤집는 사람들 있더라.(웃음) 적당히 보글보글하면 뒤집어. 콩나물 아래 깔린 고기, 가위로 자르고, 그다음에 당면 사리 먼저 먹고! 그다음에 고기 쌈 사 먹어요! 꼭!(웃음) 나중에 국물에 밥 비벼 먹으면 되고잉!” ‘남노’는 이 식당을 처음 연 동네가 남노송동이라서 붙여진 이름이다.

‘효자문 식당’의 ‘불갈비’. 박미향 기자
‘효자문 식당’의 갈비탕. 박미향 기자

동창갈비와 남노갈비본점이 양념 돼지길비 맛을 자랑하는 곳이라면, ‘효자문 식당’(완산구 고사동 378-5)은 한우가 주인공이다. 창업자는 문석춘(2022년 작고)·김복자(75)씨 부부다. 이 집 대표 메뉴는 ‘불갈비’와 갈비탕이다. 불갈비는 언뜻 보면 떡갈비 같은데, 아니다. 밀도가 떡갈비보다는 헐겁다. 이런 이유로 떡갈비보다 부드러우면서 쫄깃하다. 문씨 부부가 개발한 양념으로 재운 한우를 다져 만든다. 왜 ‘불갈비’일까. “불에 구워서 나온다고 해서 ‘불갈비’에요.” 문씨 부부의 손맛을 잇고 있는 차녀 문선희씨가 말했다. 불갈비는 갈비찜 인기가 출발점이라고 한다. “부모님이 한우 갈비찜으로 한상차림을 냈는데, 좋아하시는 분이 많았어요. 가격도 저렴하게 하셨어요. 부모님이 손맛이 소문이 나면서 ‘불갈비’도 탄생했어요.” 손질 작업만도 3시간이 훌쩍 넘는다고 한다. 맛의 비결을 남편 오기영씨에게 물었다. “고기에 칼집을 내는데, 거기에 맛깔스러운 양념이 배니까 맛날 수밖에요. 양념 맛이 좋습니다.” 이 집도 맛의 비밀은 ‘양념’에 있었다. “간장이 기본인 양념이죠?”라고 물었더니 선희씨가 말했다. “간장은 맞고요, 자세한 건 가르쳐드릴 수 없어요! 부모님이 제게만 알려주셨고요, 오래 같이 일한 참모님들도 몰라요.”(웃음) 이 집도 양념 조리법이 가보다.

불갈비는 달지도, 짜지도, 맵지도 않다. 은근한 단맛이 혀를 감싼다. 불갈비 위에 올라가는 익힌 마늘과 잣, 깨는 고소하다. 1987년 문 연 노포 효자문 식당의 인기 메뉴에는 갈비탕도 있다. 이 집 ‘비밀 양념’으로 재운 한우 갈비를 넣어 끓인 갈비탕이다. 보양식이다.

노포들이 대를 잇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양념이 한 셈이다. 양념에 숙성된 돼지갈비나 한우는 달곰삼삼하고, 김치 등 갖은 반찬은 달곰새금하다. ‘물불’을 안 가리는 전주의 고기 맛에는 긴 시간 익히고 다듬은 인내가 있다.

전주/글·사진 박미향 기자 mh@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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