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아하는 아빠 과학자]④ "육아휴직 불이익 우려…경쟁 과열이 저출산 원인"

이병구 기자 2024. 5. 23. 1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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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준영 한국화학연구원 연구원
최준영 한국화학연구원 정보융합신약연구센터 연구원. 한국화학연구원 제공

<편집자 주> 육아휴직을 쓰는 아빠가 늘고 있다고 합니다. 과학기술계에서도 느는 추세지만 현장 경험과 연구 지속성이 과학자에게 중요한 만큼 자녀를 위해 연구를 멈추는 건 쉽지 않습니다. 연구의 꽃을 피워야 하는 시기인 30, 40대 아빠 과학자에게 육아휴직은 어려운 결정입니다. 하지만 과학기술계도 예외여서는 안됩니다. 장기적으로 일과 가정이 양립해야 인재가 지속적으로 유입되기 때문입니다. 5월 가정의 달을 맞아 동아사이언스는 한국여성과학기술인육성재단(WISET)과 함께 육아휴직, 단축근무 등 육아지원 제도를 활용하는 과학자들을 직접 만났습니다. 남성 과학자가 겪는 현실 육아, 필요한 육아지원 제도, 아빠가 되면서 달라진 삶과 일에 대한 태도 등을 릴레이 인터뷰를 통해 생생히 들여다 봅니다. 과학자를 꿈꾸는 이들에게 '육아'가 걸림돌이 되지 않는 합리적, 현실적인 방안을 함께 고민해 보기를 기대합니다. 

"육아휴직을 망설이는 이유는 불이익에 대한 우려 때문입니다. 경쟁이 과열된 사회 분위기가 육아와도 연결되어 있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운이 좋아서 육아휴직을 쓸 수 있었지만 사회적으로 편하게 쓸 수 있는 분위기가 형성되는 것이 중요합니다."

지난해 3개월간 육아휴직을 사용한 최준영 한국화학연구원 정보융합신약연구센터 연구원을 17일 대전 한국화학연구원에서 만났다. 그는 자신이 육아휴직을 쓸 수 있었던 이유가 "운이 좋아서"라고 말했다. 여건이나 분위기가 좋지 않아 육아휴직을 쓰지 못하는 사람이 훨씬 많다는 것이다. 

최 연구원은 지난해 화학연에서 육아휴직을 사용한 단 두 명의 남성 연구원 중 한 명이다. 화학과를 졸업하자마자 화학연에서 일해 온 정통 '화학자'이기도 하다. 그는 "아는 지인 중에서 육아휴직을 쓴 남자는 공무원 1명을 빼고는 저밖에 없다"며 "친구들이 모인 6명 그룹에 디스플레이, 식음료, 건축 등 다양한 분야 종사자가 있지만 다들 육아휴직을 쓸 생각조차 못 한다"고 했다.

육아휴직을 망설이는 마음의 밑바탕에는 '불이익에 대한 우려'가 있다고 말했다. 육아휴직을 고민하는 시점과 승진 등 커리어의 중요시기가 겹칠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는 설명이다. 최 연구원은 "화학연은 괜찮지만 건너서 들어 보니 육아휴직 사용자에게 불이익을 주는 사례가 있었다"며 "불이익을 떠나서 경쟁에서도 뒤처진다는 생각이 들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육아휴직이 불이익이 아니라 오히려 혜택이 될 수 있는 사회적 분위기가 형성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처음 아이가 생겼을 때부터 각오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고 회상했다. 어머니는 일을 하고 계셨고, 장모님도 건강이 안 좋으시다 보니 도움받기가 어려운 상황이었다. 혹시 불이익이 있지 않을까 고민했지만 아이를 돌볼 수 있는 사람이 없어 육아휴직을 할 수밖에 없다고 했다. 아내도 육아휴직을 강력하게 원했다.

최 연구원은 "제가 한 연구실에 오래 있었기 때문에 짬(경력)이 있어 부담이 덜했다"며 "암묵적인 우선순위가 높았던 덕분"이라고 말했다. 또 "아무도 안 쓰면 계속 아무도 안 쓴다"며 "저 같은 사람처럼 누군가 써야 다음에 다른 사람이 쓸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육아휴직뿐 아니라 회사나 아파트의 어린이집 등 인프라도 육아에 큰 도움이 된다고 했다. 화학연에도 부설 어린이집이 있다. 어린이집 선택권이 많은 것도 중요하다고 했다. 최 연구원은 "아이를 1~2년 동안 맡겨야 하는데 만약 어린이집 선생님과 잘 맞지 않으면 다른 대안이 없다"며 일을 포기해야 하는 상황이 생길 수도 있다"고 말했다.

제도적인 보완책도 중요하지만 무엇보다 아이를 키우기 편한 세상이 되어야 한다는 게 그의 생각이다. 최 연구원은 "옛날에 비해 아이를 키우는 데 들어가는 비용도 많이 들고 경쟁도 심해졌다"며 "지금은 부담감이 좀 큰데 모든 요소가 출산율, 육아와 연결되어 있다"고 말했다.

다음은 최 연구원과의 일문일답.

Q. 경쟁하는 사회 분위기가 육아, 출산율과 어떻게 연결되어 있나.

"뭐를 언제까지 못 하면 '인생의 패배자다' 이런 분위기가 강하다. 그래서 아이에게도 뭘 언제까지 해 줘야 하고 그런 게 경쟁이다. 비싸고 시간도 많이 들지만 안 해주면 죄인처럼 된다. 월급 뻔한데 계산을 해 보니까 포기를 하게 된다. 우리 세대는 경쟁 시대를 겪었는데 이걸 그대로 아이에게 물려줘야 하는지에 대한 근본적인 걱정도 있다."

Q. 3개월의 육아휴직 경험에 대해 공유해 달라. 어떻게 보냈나.

"휴직 둘째 날에 요로결석이 터져서 입원했다. 아마 10년 넘게 근무하다가 갑자기 긴장이 풀려서 그런 것 같다(웃음). 초반에는 아이가 엄마를 더 따르기도 하고 익숙하지 않아 힘들었지만 1개월 반 정도 되니까 엄마보다 아빠 얘기를 먼저 꺼내서 뿌듯했다.

당시 날씨가 좋아서 제가 아기를 데리고 산책하러 나가면 그사이에 아내가 집안일을 조금 하는 등 시간표를 짰다. 앱을 사용해서 알람을 설정하고 공간도 나누어 아내와 역할과 스케줄을 잘 분배했다. 둘 다 이공계이기도 해서 더 그랬던 것 같다.

또 산모의 건강을 회복하는 게 관건이었다. 아내가 퇴근하고 운동하러 갈 시간을 확보했다. 쌍발엔진 비행기에 비유할 수 있다. 한쪽이 아프면 한쪽이 더 힘들어진다. 빨리 회복에 집중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Q. 육아휴직 기간이 아닌 지금은 어떻게 육아하나.

"지금은 부부 모두 유연근무제를 활용한다. 제가 7시에 출근하면 그 사이 공공기관에 다니는 아내가 어린이집에 아이를 맡기고 10시에 출근한다. 제가 4시에 퇴근해서 어린이집에서 아이를 픽업한다. 누구나 이렇게 할 수는 없다. 사기업은 한계가 있을 것이다."

Q. 둘째에 대한 고민도 해 봤는지.

"육아를 해 보니 의문이 들긴 한다. 게다가 아내의 나이가 연상이라 둘째가 부담되긴 할 것 같다. 사실 직종 특성이 아닐까 싶은데 연구직 같은 경우 학위 과정을 마치면 서른 초반이다. 사회에 진출해서 실제로 돈을 버는 기간이 상대적으로 짧다. 정년을 앞둔 다른 박사님들을 봐도 아이가 셋, 넷씩 있는 경우는 거의 없는 것으로 안다."

Q. 육아휴직으로 얻은 것이 있다면. 또 육아휴직을 망설이는 다른 사람들에게 한 마디 부탁한다.

"가장 큰 건 아기와 보낸 시간, 추억들이다. 또 아내가 몸을 많이 회복할 수 있는 기간이 됐다. 직접 해보기 전에는 절대 알 수가 없는 육아의 고충을 알 수 있게 된다. 아이를 보는 동안 시간이 너무 안 가서 마치 '정신과 시간의 방'에 있는 것 같았다. 육아에 대해 둘 다 알아야 대화를 통해 간극을 줄이고 좋은 결론이나 타협안이 나올 수 있다.

아이가 자라는 시간을 사진으로 본 것과 직접 본 것은 다르다고 생각한다. 사람마다 고민이 있겠지만 그래도 지금 아이와 추억을 쌓는 게 나중에 큰 도움이 되지 않을까."

[이병구 기자 2bottle9@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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