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정부실패'를 유발하는 양곡법·농안법 개정안

김성훈 충남대학교 농업경제학과 교수 2024. 5. 23. 09: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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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훈 충남대 농업경제학과 교수

작년 4월 대통령의 법률안 거부권 행사로 일단락되었던 양곡법(양곡관리법) 개정에 대한 논란이 다시 수면 위로 떠올랐다. 이번에는 기존 양곡법과 함께 농안법(농수산물 유통 및 가격 안정에 관한 법률)의 개정안까지 국회 상임위를 통과해 본회의에 상정될 예정으로, 가격 지지를 위해 관리할 농산물의 종류와 예산의 규모가 더 늘어났다.

이번에 국회 상임위를 통과한 양곡법 개정안은 작년 개정안과 크게 달라진 것이 없는데, 이는 쌀 가격의 폭락이 발생하거나 우려되는 경우 초과 생산량을 매입하는 대책을 시행하도록 하여 쌀 의무매입제가 사실상 유지되기 때문이다. 한편, 농안법 개정안은 별도로 정하는 농산물의 시장가격이 기준가격 미만으로 하락하는 경우 생산자에 그 차액의 전부 또는 일부를 지급하는 제도를 의무화하는 것으로 양곡법 개정안의 대상 품목이 쌀에서 채소와 과일로 확대된 것인데, 작년 양곡법 개정안 때 발생했던 쌀 외의 농산물 생산자의 불만을 일부 잠재우기 위한 것으로 보인다.

농민을 포함한 우리 국민에게 주는 쌀의 중요성과 식량안보의 필요성을 누구보다 잘 알고 이를 학생에게 매년 가르치는 필자이지만, 이번 양곡법 개정안과 농안법 개정안에 동의할 수 없는 것이 사실이다. 이는 이번 개정안이 농민에 별 실익이 없이 국민의 세금만 낭비하고 농업 경쟁력을 저하하는 대표적인 정부실패(government failure) 사례가 될 것으로 생각되기 때문이다.

먼저 양곡법 개정안의 경우, 우리나라 쌀 소비량이 인구감소와 고령화, 식습관 변화 등으로 지속적으로 감소하고 급기야 2022년 1인당 고기 소비량(59.8kg)이 쌀 소비량(56.7kg)을 앞지른 상황에서, '밑 빠진 독에 물 넣기'를 하려는 법안으로밖에 보이지 않는다.

쌀의 공급량이 수요량을 초과해 가격이 하락하는데, 매년 막대한 세금을 투입해 쌀 가격이 내려가지 않도록 하면 쌀의 초과 생산 문제는 더 심각해질 것이 당연하지 않은가? 앞으로 벌어질 시장 상황을 외면한 채 매년 그때그때의 쌀 가격만 쳐다보는 것은 국민의 혈세로 마련되는 국가 예산을 화수분(河水盆)으로 보는 듯하다.

농안법 개정안은 더욱 심각한데, 논에서 생산하는 쌀과 달리 작목전환이 쉬워 시장가격에 따라 매년 품목별 재배면적의 증감을 보이는 채소 등에 가격하락을 막는 시장개입 정책이 도입될 경우, 가격이 유지되는 품목은 생산이 집중되어 공급량 급증으로 인한 가격하락 압력이 더 심해지고 다른 품목은 생산 감소로 인한 공급량 급락으로 가격 상승이 발생하는 등 혼란이 가중될 것이 뻔하다. 그렇지 않아도 기상재해 등으로 수급 변동이 큰 농산물에 인위적인 정책적 혼란 요인을 더할 필요가 있을까?

쌀을 포함한 농산물 가격에 정부가 직접 개입하는 것은 매우 조심스럽고 다양한 변수를 사전에 고려하여야 한다. 단순히 지금의 가격하락만 막아서 농가 소득을 보존하겠다는 생각은 자칫 시장의 수급기능을 망치는 결과로 이어질 수 있다. 차라리 그 돈을 그냥 농가에 나눠주는 것이 훨씬 낫다는 말이 괜히 나오는 것이 아니다.

채소가격안정제를 도입한 일본은 지정된 채소에 대한 계획생산 및 공급을 기본 전제로 하고 생산조정을 위한 자금을 농가가 일부 부담하도록 하는 등 정부실패를 최소화하는 다양한 노력을 함에도 정책 효과에 대한 논란이 끊이지 않고 있다. 우리 정부도 농안법 개정안이 나오기 수년 전부터 일정 재배면적과 산지 조직을 갖춘 주산지를 대상으로 채소가격 안정제를 시행하고 있는데, 이번에 농안법이 개정되면 그동안 구축된 산지 생산 시스템이 일시에 망가질 수 있다.

시장이 작동하는 기본원리인 수요와 공급을 무시하고, 수요와 공급의 결과로 결정되는 시장가격을 정부가 막대한 세금을 매년 투입해 억지로 개입하도록 강제하는 양곡법 및 농안법 개정안은 시행 직후부터 여러 문제를 일으킬 뿐만 아니라, 앞으로도 큰 짐을 지우는 대표적인 농업의 정부실패 사례로 남을 수 있다.

김성훈 충남대학교 농업경제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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