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권 바뀌니 5개월 만에 잘려”…김문수의 ‘물갈이 해고’와 싸웠다

장현은 기자 2024. 5. 23. 09: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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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보통의 사건
김문수 경제사회노동위원회 위원장이 지난 2022년 10월4일 서울 새문안로 경사노위 대회의실에서 열린 취임식 뒤 기자들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김정효 기자 hyopd@hani.co.kr

“새 정부가 출범하다 보니 조직쇄신이 필요하다. 이런 이야기도 있고…불가피하게 전원 신규채용하는 형태로 가야 할 것 같다.”

전북대학교에서 시간강사로 일하던 차유미씨는 지난 2022년 4월 경제사회노동위원회(경사노위) 전문위원(전문임기제공무원)에 합격했다. 차씨는 전문위원으로 선발된 뒤 계약 기간이 남아있던 시간강사직을 그만두고 17년만에 서울행을 택했다. 하지만 차씨는 5개월만에 위원회로부터 ‘계약 종료’라는 청천벽력같은 통보를 들어야 했다.

경사노위는 대통령 직속 사회적 대화기구로, 전문위원 16명과 파견공무원 11명, 공무직노동자 9명 등으로 구성된다. 차씨는 2022년 6월부터 전문임기제공무원 다급(‘의제조사 및 분석’ 전문위원)으로 위원회의 의제 검토, 위원회 업무에 관한 조사연구 등 업무를 맡았다.

차씨는 새 직장에 맞춰 위원회가 있는 서울에 거처를 마련하고 2년짜리 전세계약도 맺었다. 경사노위는 특별한 경우가 없는 한 관례적으로 전문위원의 임기를 5년의 범위에서 자동 연장해왔기 때문이다. ‘공무원임용령’에서는 임기제 공무원의 근무 기간을 5년이 넘지 않는 범위에서 공고 절차를 거치지 않고 근무기간을 연장할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다. 위원회 인사 기준에도 특별하게 업무실적이 떨어지는 경우를 제외한 나머지의 경우 기간 연장을 승인한다는 내용이 담겨 있다. 이에 따라 차씨보다 앞서 2018년과 2019년 입사한 전문위원은 기간 만료 후 추가 면접 없이 임기가 자동갱신됐고, 2017년에 입사한 전문위원 역시 5년 이상 근무했으며, 10년 이상 근속한 위원들도 있었다.

하지만 윤석열 정부가 들어선 뒤 2022년 10월 김문수 경사노위 위원장이 취임하자 상황이 달라졌다. 위원회 쪽은 돌연 2022년 11월7일 차씨를 포함한 전문위원 모두에게 기간연장이 불가하며, 퇴사 처리한 후 신규 인력을 채용하겠다고 구두 통보했다. 경사노위는 연말 행정안전부와 정원협의를 위해 계약 시점과 무관하게 전문위원의 임기를 11월30일로 일괄 조정해놨는데, ‘조직 쇄신’을 이유로 이 시기에 맞춰 모두와 계약을 종료하겠다는 통보를 한 것이다. ‘전원 물갈이’ 이후 입맛에 맞는 위원을 골라 채용하려는 것 아니냐는 논란이 일었지만 신규채용은 강행됐고, 기존 전문위원 중 차씨를 포함한 네 명은 탈락했다. 불과 5개월 전에 해당 분야 전문성을 인정받아 전문위원으로 임용됐지만, 위원회는 5개월만에 차씨를 탈락시켰다.

차씨는 ‘갱신기대권'을 인정해 5년 내에서 계약이 갱신·연장될 수 있도록 해달라며 경사노위와 정부를 상대로 당연퇴직 처분 취소의 소, 공무원 지위 확인의 소 등을 제기했다. 차씨는 “일정한 조건이 충족되면 계약이 연장될 수 있다는 합리적 기대가 형성돼 있던 점, 전문위원 임기가 5년간 보장되는 관례가 있던 점 등을 고려하면 갱신에 대한 정당한 기대권이 인정된다”며 “위원회가 임용 계약 갱신을 거절한 이 처분에는 합리적 이유가 없었으므로 재량권 일탈·남용행위이며 위법하다”고 주장했다. 또한 정부에 대해 “민간 계약직근로자에게 인정되는 갱신기대권을 공무원에게만 더 좁게 해석해야 할 이유가 없다”고 다퉜다.

재판부는 차씨의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지난달 5일 서울행정법원 행정3부(재판장 최수진)는 “국가공무원법에 따라 임기제 공무원은 임기가 만료된 경우 당연퇴직하는 게 당연하고, 차씨에게 갱신기대권 있다고 보기 어렵다”는 취지로 원고 패소 판결을 내렸다. 재판부는 “공무원은 국가와 ‘공법상 근로계약관계’가 아닌 ‘공법상 근무관계’를 맺는 것으로, 계약이 아니라 임명권자의 임명으로 공무원의 지위를 부여받는다”며 “공법상 근로계약관계를 전제로 하는 갱신 기대권 법리를 적용하기 어렵다”고 설명했다.

차씨는 “똑같은 임금 노동자였는데, 공무원이라는 이유로 갱신기대권을 존중받지 못하는 게 맞는지” 묻는다. 차씨는 계약 종료 이후 안정적이던 이전의 삶으로 돌아가지 못하고 서울에서 새로운 직장을 구해야만 했다. 차씨는 1심 판단에 불복해 항소장을 제출한 상황이다. 차씨는 “특히나 정권 변화의 맥락에서 이뤄진 일련의 논란에 대해서 법원에 자료를 제출했지만, 1심 법원이 이에 대해 판단하지 않은 점이 아쉽다”며 “이런 방식이라면 집행부의 입맛에 맞게 임기제 공무원은 마음대로 잘라도 되는지, 객관성과 중립성이 중요하게 요구되는 경사노위 운영에 맞는 것인지 궁금하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경사노위쪽은 반박자료를 내어 “당시 채용시험은 전원 외부위원들을 심사위원으로 위촉해 진행했으며, 이전에 근무했던 13명 중 9명이 재임용됐다. 정부 입맛에 맞는 임기제공무원을 골라 채용하였다는 주장은 전혀 사실과 다르다”며 “임기제 공무원의 임기는 행정안전부 정원협의 승인 결과와 성과 평가 결과에 따라 결정되는 것이지 관례적으로 자동연장 되는 것이 아니다”라고 밝혔다. 또 “해당 임기제 공무원 채용 공고 시 및 이후 임용 약정서 체결 시에도 임기를 명시해 임용했다. 해당 공무원의 퇴직은 ‘계약종료’가 아니라 ‘임기만료’”라고 설명했다.

장현은 기자 mix@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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