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업률 32%·부정부패… 만델라의 黨, 30년 단독집권 막내릴 위기[Global Focus]

박상훈 기자 2024. 5. 23. 09: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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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Global Focus - 남아공 29일 총선… 집권당 ANC에 실망한 민심
ANC 지지율 43.4%에 그쳐
과반 실패시 연립정부 불가피
만델라 후임 대통령 잇단 부패
흑인 대부분 여전히 하위 계층
교육정책 실패 등 청년층 불만
72% “일자리 주면 투표권 포기”
분열된 정치에 민주주의 회의론
지난 1일 시릴 라마포사 남아프리카공화국 대통령이 케이프타운 인근에서 개최된 남아프리카노동조합의회의 집회에 참석해 참석자들과 인사를 나누며 걸어가고 있다. AFP 로이터 연합뉴스

오는 29일(현지시간) 치러지는 남아프리카공화국 총선에서 1994년 인종차별정책인 ‘아파르트헤이트’ 철폐 후 30년간 제1당으로 집권해오던 아프리카민족회의(ANC)가 과반을 얻지 못할 위기에 봉착했다. 넬슨 만델라 전 남아공 대통령이 몸담았던 상징적인 정당임에도 최근 높은 실업률과 전력난, 부패, 빈부 격차 등으로 ANC가 정권을 유지하려면 연정 수립이 불가피하다는 평가다. 아파르트헤이트 이후에 태어난 신세대 남아공 흑인들을 중심으로 민주주의에 대한 회의론까지 퍼지고, 포퓰리즘과 민족주의적 수사가 난무하는 상황까지 겹쳐 남아공 총선 결과에 시선이 쏠린다.

◇‘단독정부’ 불투명한 넬슨 만델라의 ANC=1994년 남아공 역사상 처음으로 흑인이 투표권을 획득한 총선에서 압승한 ANC의 넬슨 만델라 의장이 첫 흑인 대통령으로 취임하며 아파르트헤이트는 막을 내렸다. 이후 ANC는 30년간 남아공에서 단독정부를 구성하며 4명의 흑인 대통령을 더 배출했다. 하지만 최근 ANC의 아성이 무너질 조짐을 보이고 있다. 남아공 eNCA 방송과 여론조사 기관 마크데이터가 3000명의 남아공 응답자를 대상으로 조사해 20일 발표한 여론조사 결과에 따르면, ANC는 단독정부 구성 요건에 미치지 못하는 43.4%의 지지율을 얻는 데 그쳤다. 이는 지난 2월 41.4%까지 떨어졌던 지지율에 비해서는 소폭 상승한 수치지만, 지난 2019년 총선에서 ANC가 57.5%의 득표율을 기록한 것과는 큰 차이를 보인다.

중도성향의 제1야당인 민주동맹(DA)은 18.6%의 지지율을 기록했다. DA는 민영화 확대 등 경제 자유화를 주요 공약으로 내세우고 있다. 제2야당인 경제자유전사(EFF)는 11.4%의 지지율을 보였다. EFF는 ANC가 인종 간 빈부 격차를 충분히 해소하지 못했다면서 토지 재분배와 광산·은행 등 핵심 사업의 공영화와 같이 급진적 정책을 내세우고 있다. 제이컵 주마 전 남아공 대통령이 ANC에서 탈당해 창당한 ‘움콘토 위시즈웨’(MK)는 14.1%의 지지율을 기록 중이다. 여론조사 결과대로 ANC가 29일 예정된 선거에서 과반을 얻지 못하면 일부 야당과의 연립정부 구성이 불가피하다.

남아공의 한 노숙자가 지난 21일 신호 대기 중인 운전자들에게 구걸하고 있는 모습. AFP 로이터 연합뉴스

◇아파르트헤이트 종식 30년…남은 것은 부패와 가난=남아공이 자유민주주의 국가로 성장할 수 있는 발판을 마련했음에도 ANC가 최근 주춤하는 이유로는 만델라 전 대통령의 뒤를 이은 후계자들의 부패와 실정으로 인한 경제난과 사회 불안이 꼽힌다. 2008년 20%이던 남아공의 실업률은 올해 32%까지 올랐으며, 살인율은 지난해 10만 명당 45명으로 20년 만에 최고치를 기록했다. 남아공 흑인들이 1994년 아파르트헤이트 종식과 함께 ‘정치적 자유’를 얻었던 것과 달리 ‘경제적 자유’를 얻지는 못했다는 평가가 나오는 이유다. 남아공 국민을 수입에 따라 ‘만성적 가난’ ‘일시적 가난’ ‘취약’ ‘중산층’ ‘엘리트’ 등 5개 계층으로 나눴을 때 남아공 인구 중 81%를 차지하는 흑인 대부분이 하위 3개 계층에 속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반면 남아공 인구의 7%에 불과한 백인은 ‘중산층’의 20% 이상과 ‘엘리트’의 3분의 2 이상을 차지하고 있다. 세계은행(WB)은 인구의 10%가 국가 전체 자산의 71%를 보유한 남아공을 세계에서 가장 불평등한 국가로 지목했다. 시릴 라마포사 현 남아공 대통령도 지난달 28일 열린 아파르트헤이트 종식 기념식에서 지난 30년간 정치적 자유는 얻었지만 빈곤과 불평등을 해결하지는 못했다며 “차질이 있었다”고 인정했다.

특히 ANC에 대한 불만은 아파르트헤이트 종식 이후에 태어난 젊은 흑인들을 중심으로 확산하고 있다. 상하수도 설치, 주택 공급, 전기 공급 등 실질적인 흑인들의 생활환경 개선은 대부분 1990년대와 2000년대에 이뤄졌기 때문이다. 이에 판단 기준을 아파르트헤이트 종식 이전으로 삼는 기성세대 흑인들과 달리 젊은 세대 흑인들은 자신들의 삶의 질이 과거에 비해 크게 개선되지 않았다고 느끼고 있다. 또 만델라 전 대통령의 뒤를 이은 정치인들의 실정과 부패, 교육정책 실패 등으로 남아공 청년층(15~34세) 실업률이 44%까지 치솟는 등 청년 세대가 겪는 고초는 갈수록 커지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데이비드 에버렛 남아공 비트바테르스란트대 교수는 “30년 전과 비교했을 때보다 (오늘날) 더 많은 수의 청년들이 어려움에 처해 있다”고 설명했다.

◇포퓰리즘·민족주의 난무하는 남아공 정치권…민주주의 회의론도=남아공 정치가 인종, 민족, 계층 간 제로섬 게임으로 전락했다는 평가도 나온다. 영국 일간지 이코노미스트는 이로 인해 포퓰리즘과 민족주의적 수사가 최근 남아공 정치권에서 난무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민주주의 자체에 대한 회의도 커지고 있다. 아프리카 여론조사기관인 아프로바로미터가 지난해 6월 발표한 설문조사 결과에 따르면 남아공 응답자 1582명 중 72%는 선출되지 않은 정부가 일자리·안전·주택을 제공해줄 수 있다면 투표권까지 포기할 의향이 있다고 밝혔다. 이코노미스트는 최근 30세 이하 남아공 청년들의 역대 투표율을 분석해 이번 총선에서 35세 이하 청년 4명 중 1명만이 투표권을 행사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다만 이코노미스트는 ANC가 과반을 얻지 못하는 경우에도 극단적 성격을 띠는 EFF나 MK보다는 중도 성향의 DA와 연정을 구성하길 원하는 남아공 국민의 목소리가 높다고 전했다. 남아공의 정치 분석가인 프랜스 크론제는 “카리스마 있는 독재자에 대한 기대만큼 카리스마 있고 설득력 있는 민주적 지도자에 대한 기대도 크다”고 밝혔다.

박상훈 기자 andrew@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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