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품처럼 쓰고 버려지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스프]
지난 9일 오전, 경남 고성의 한 조선소에서 하청 노동자 2명이 123톤 선박 블록 구조물에 깔려 숨졌습니다. 그중 1명은 캄보디아 출신 30대 이주노동자였습니다. 그로부터 나흘 뒤 부산의 조선소에서도 용접 작업 중 화재에 휘말린 베트남 국적의 30대 이주노동자가 숨졌습니다. 호황을 맞은 조선업의 부족한 일손을 채우기 위해 한국을 찾았던 외국인들이 연달아 목숨을 잃은 겁니다.
드러나지도 못하고 은폐되는 이주노동자 산재는 이보다 훨씬 많습니다. 한국 정부가 이주노동자 도입 규모를 확대하면서도 열악한 노동 현실을 외면하고 있다는 지적이 줄을 잇지만, 정부는 아직까지 적극적으로 해결할 의지가 없어 보입니다. 숙소와 노동 환경 등 기본적인 처우도 내국인에 비해 열등하지만, 이주노동자들이 산재를 겪고 이를 해결하는 과정도 고통이었습니다. 오늘 <더 스피커>에서는 '산재공화국' 대한민국에서 위험의 최전선에 내몰린 이주노동자의 목소리를 담습니다.
12년 전 방글라데시에서 입국한 아지트 씨는 경기도의 한 금속 부품 공장에서 일한 지 8개월 만에 몸에 이상을 느꼈습니다. 금속 표면 깎는 일을 했는데, 날리는 쇳가루와 먼지가 눈에 보일 정도였습니다. 보통 11시간 작업 중 6시간을 그라인딩을 했고, 3시간은 사포로 금속 부품을 닦았습니다. 그럼에도 회사에서는 방진 마스크가 아닌 얇은 면 마스크만 지급했습니다.
입사 전 건강검진에서도 문제가 없던 아지트 씨가 얻은 병명은 '간질성 폐질환'. 광부들이 많이 걸리는 병인데 난치성인 데다 암으로도 악화할 수 있는 병입니다.
2년 만에 다시 만난 아지트 씨는 여전히 일을 하지 못하는 상태였습니다. 그동안 폐 수술을 한 차례 했고, 후유증으로 일은 전혀 하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폐 기능의 40% 정도를 잃은 상황. 병원비와 생계는 주변 이주노동자들의 십시일반 도움과 지원 단체에 기댔습니다. 유일한 희망은 산업재해로 인정받는 것이었지만, 2년 3개월 만의 심사 끝에 '불승인'됐습니다.
근로복지공단은 적절한 보호장구 제공 없이 유해물질이 많았던 작업 환경에 노출된 점 등을 종합해 업무와 상병 간 상당 인과관계를 인정하면서도 역학조사 결과 "누적된 금속 분진 노출량이 적고 본국에서 먼지로 인하여 원래 기침을 많이 했고 흡연력이 확인되는 점 등을 종합 고려해" 산재 불승인 판정 결정을 내렸습니다.
"산재 심사 위한 '작업 현장 조사'부터 편향적"
해당 사건을 담당했던 권동희 노무사는 이렇게 지적합니다.
"'간질성 폐질환' 자체가 입증하기 어려운 사건인 것은 맞아요. 그래서 근로복지공단 직업환경연구원의 업무상 질병 심의위원회에서도 세 차례 심의를 했는데, 위험 환경 요인은 모두 저평가됐죠.
하루 근무의 약 80% 이상을 금속 작업을 했다는 노동자 주장은 배척되고, 5% 미만이었다는 사측의 주장만 받아들였죠. 게다가 역학조사가 이뤄진 공장은 심지어 아지트 씨가 일했던 곳이 아니라 전혀 다른 환경의 옆 공장이거든요. 굉장히 업무량과 환경을 단순화해서 판단한 거죠.
산재 불승인 이후 '해고 통보'…한국은 일하고 싶은 나라일까
아지트 씨는 현재 해고 통보를 받은 상태입니다. 사실상 일을 할 수 없어 빈털터리가 됐고, 가빠진 호흡과 병을 얻은 몸으로 본국에 돌아가기 막막해 한숨을 자주 내쉬었습니다.
아지트 씨를 돕고 있는 김달성 포천이주노동자센터 대표는 이주노동자들의 산재에 대해 이렇게 말합니다.
전체 산재 사망 사고 10건 중 1건은 외국인
여기에 더해 철저히 갑을 관계인 고용허가제 하에서는 외국인 노동자가 위험을 거부하기도 어렵고, 낯선 법 체계와 서툰 언어로는 산재 손해배상 제도를 활용하기도 쉽지가 않습니다. 고용노동부가 외국인 산재 발굴과 구제에 더 적극적일 필요가 있다는 이야기입니다.
(남은 이야기는 스프에서)
제희원 기자 jessy@s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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