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23일!] "저 들에 푸르른 솔잎을 보라"… 노랗게 물든 시청광장

최문혁 기자 2024. 5. 23. 07:16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역사 속 오늘]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
노무현 전 대통령의 장례는 국민장으로 치러졌다. 사진은 2009년 5월29일 서울 종로구 세종로 일대 노 전 대통령 추모행렬. /사진=머니투데이
2009년 5월23일. 노무현 전 대통령이 서거했다.

전직 대통령이 스스로 생을 마감한 것은 한국 역사상 유례없는 비극이었다. '인권 변호사'로 시작해 '서민 대통령'으로 불린 그의 죽음은 대통령으로서의 공과를 떠나 한국 근현대사에서 가장 쓸쓸한 마침표로 남았다.



"누구도 원망하지 마라"… 스스로 생을 마감한 대통령


노무현 전 대통령은 뇌물 수수 혐의로 조사를 받던 중 세상을 떠났다. 사진은 2009년 5월1일 새벽 서울 서초구 대검찰청을 나서는 노 전 대통령. /사진=머니투데이
'부엉이바위'라고 불리는 경남 김해시 진영읍 봉산리 봉화산 한 바위 절벽에서 한 남성이 투신했다. 불과 1년여 전 그는 한국의 대통령이었다. 노 전 대통령은 한국의 제16대 대통령으로 2003년 취임해 2008년 2월24일 임기를 마쳤다.

노 전 대통령은 2008년 2월25일 후임자인 이명박 전 대통령 취임식에 참석한 뒤 서울역에서 KTX 특별열차를 타고 고향 경남 김해시로 이동했다. 대통령이라는 무거운 책무를 마치고 한 명의 시민으로 돌아가는 귀향길이었다. 노 전 대통령은 김해시 진영읍 봉산리 봉하마을 사저에서 부인 권양숙 여사와 함께 여생을 시작했다.

그러나 그 평안한 시간은 그리 오래 가지 않았다. 박연차 전 태광실업 회장이 정치계에 로비를 벌였다는 혐의가 드러나면서 검찰은 노 전 대통령의 친형인 노건평씨를 비롯한 측근에 대한 대대적인 수사를 진행했다. 특히 검찰이 권 여사가 정상문 당시 대통령비서실 총무비서관을 통해 뇌물을 수수했다는 혐의를 수사하기 시작하면서 노 전 대통령을 향한 비난 여론이 들끓기 시작했다.

결국 검찰의 수사 방향은 노 전 대통령을 향했다. 검찰 소환조사에 응한 노 전 대통령은 2009년 4월30일 서울 서초구 서초동 대검찰청 포토라인에 섰다. 노 전 대통령은 다음날 새벽이 돼서야 조사를 마치고 나왔다. 이로써 그는 헌정사상 검찰 수사를 받은 세 번째 전직 대통령에 이름을 올렸다.

'박연차 게이트'는 노 전 대통령의 죽음에 큰 영향을 끼친 것으로 보인다. 수사가 진행 중이던 2009년 5월23일 이른 오전 노 전 대통령은 자택 인근 봉화산을 올랐다. 부엉이바위에 도착한 그는 절벽 아래로 투신했다. 함께 있던 경호원이 빠르게 김해시 세영병원으로 옮겨 응급조치를 행했다. 이후 노 전 대통령은 치료를 위해 경남 양산시 부산대학교병원으로 옮겨졌으나 오전 9시30분쯤 끝내 숨을 거뒀다.

그는 자택 컴퓨터에 미안함을 전하는 짧은 유서를 남겼다. 유서는 "너무 많은 사람들에게 신세를 졌다"는 말로 시작된다. 노 전 대통령은 "나로 말미암아 여러 사람이 받은 고통이 너무 크다"며 "여생도 남에게 짐이 될 일밖에 없다"고 어려움을 호소했다. 그러면서 "삶과 죽음 모두 자연의 한 조각 아니겠는가"라며 자신의 선택을 암시하기도 했다. 남은 이들을 향해서는 "슬퍼하지 마라", "미안해하지 마라", "누구도 원망하지 마라"는 말을 남겼다.

박 전 회장 등 박연차 게이트 관련자 일부는 유죄를 확정받았으나 노 전 대통령 서거 직후 검찰은 공소권 없음으로 노 전 대통령에 대한 수사를 종결했다.



"국민이 참여하는 정부"… 노랗게 물든 '참여정부' 대통령의 마지막


노무현 전 대통령의 유언에 따라 묘소는 고향에 마련됐다. 사진은 지난 2019년 5월23일 경남 김해시 봉하마을 노 전 대통령 묘역에서 열린 노 전 대통령 서거 10주기 추도식. /사진=뉴스1
노 전 대통령의 장례는 국민장으로 치러졌다. 2009년 5월29일 치러진 영결식에는 많은 국민이 모여 서울 종로구 세종로 일대를 노 전 대통령을 상징하는 노란 물결로 채웠다. 생전 노 전 대통령이 즐겨 불렀던 '상록수'가 울려퍼지고 수많은 국민의 배웅을 받으며 노 전 대통령은 먼길을 떠났다.

당시 장의위원회에 따르면 전국적으로 500만명가량의 조문객이 조문한 것으로 파악됐다. 고인의 뜻에 따라 노 전 대통령의 묘역은 고향인 봉하마을에 마련됐다.

노 전 대통령은 경남 김해시에서 태어나 비교적 늦은 나이로 1975년 사법시험에 합격해 법조인의 길을 걸었다. 그는 5개월가량 대전지방법원 판사로 재직한 뒤 부산에서 변호사로 활동했다.

노 전 대통령은 당시 통일민주당 총재였던 김영삼 전 대통령과의 인연으로 1988년 제13대 국회에서 부산 동구 국회의원으로 당선되며 정계에 입문했다. 그는 제5공화국 청문회에서 침착하면서도 강단 있는 모습으로 대중의 관심을 받았다. 2000년에는 김대중 정부 해양수산부 장관을 지내기도 했다. 이후 2002년 12월19일 제16대 대선에 출마해 당시 한나라당 소속 이회창 후보를 상대로 승리하며 대통령에 당선됐다.

최문혁 기자 moonhk@mt.co.kr

Copyright © 머니S & moneys.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