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의 한국인] '백남준'의 비디오 아트 - '새미 리'의 AI 미디어 아트

박준식 머니투데이 뉴욕 특파원 2024. 5. 23. 07: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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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 미디어 아트 작가 '새미 리'
[편집자주] [뉴욕의 한국인] 세계의 중심이라고 불리는 뉴욕에서 전 세계를 상대로 활약하는 한국인과 한국계 코스모폴리탄들의 분투기를 찾아 고국에 전하겠습니다.

캐나다 밴쿠버에서 태어나 스위스에서 자란 한국계 3세 새미 리는 2019년 K팝의 대중적 흡입력을 연구하던 M.J 하딩을 만나 개인의 작업과 감성 사이에서 치고받으며 긴장감 있게 살고 있다.
성공한 한국계 이민자 아버지는 딸이 건축가가 되길 바랐다. 할아버지가 1960년대 미국계 회사에서 근무하면서 가족들에게 새로운 세상을 전했고 이를 바탕으로 아버지는 캐나다로 유학, 사업을 일궈냈다.

금지옥엽 둘째 딸에겐 돈에 구애받지 않고 일가에 없던 새로운 전문 영역을 만들어 볼 것을 권한 것이었을 게다. 그 때문인지 캐나다 밴쿠버에서 태어나 스위스에서 자란 한국계 3세 새미 리(35)는 훌륭한 학문적 밑바탕 아래 직업 예술가가 됐다.

한국계 가정에서 태어나 오빠는 금융 영역을 공부해 전형적인 엘리트가 됐지만 둘째에겐 그 부담이 간접적으로도 전혀 없는 자유로운 분위기가 주어진 셈이다. 건축을 공부하기 위해 영국 런던 AA(Architectural Association School of Architecture)로 훌쩍 떠나올 수 있던 것도 이런 지원 덕분이다.

그런데 막상 전공 분야에선 실용 건축보다는 전시 제작에서 월등한 창작력과 열의가 쏟아졌다. 이런 맥락 때문인지 어렵게 진학한 RCA(Royal College of Art) 대학원은 1년 만에 그만뒀다. 짜진 교육체계가 어떤 특정 직업을 정해두고 일꾼들을 양성하는 학원처럼 몰아가서다. 자라온 환경이 자유로웠기에 자신의 세계와 자아를 구축한 이후에도 어떤 정형적인 틀에 갇히는 것이 가장 답답한 일이었다.

새미 리의 주특기는 컴퓨터 미디어와 조명 기술이다. 스크린과 프로젝터, LED 라이트로, 미디어아트로 불리는 전시물을 가장 독창적으로 만들어내고 있다. 대학원을 그만둔 그는 곧바로 사업을 시작했다.

공감각적 이미지와 특정한 소리의 융합으로 비주얼 아트를 제작해 주는 '유니버 어셈블리 유닛'(Universal Assembly Unit)이란 회사를 세웠다. 이 회사를 통해 런던 현대 오케스트라의 실황 공연과 오디오와 비디오(AV) 지원을 도맡았던 게 창조적 도약의 밑거름이 됐다.

새미 리는 M.J 하딩과 함께 고대 극장의 장치들과 공연 기법을 가상현실을 통해 글로벌 네트워크로 연결하려고 시도하고 있다.
새미 리는 UAU에서 인공지능(AI)의 딥 러닝 기술 가운데 하나인 GANs(Generative Adversarial Networks, 생성적 적대 신경망)를 활용하기도 했다. 경쟁하는 두 개의 신경망을 이용하는 모델이다.

첫 번째 생성자는 무작위 노이즈와 이미지 값을 출력하고 두 번째 감별자는 실제 데이터와 생성 값을 구별하는 역할이다. 이 둘이 경쟁하면서 성능이 향상되는 원리다. GANs로는 이미지와 음악, 문장을 만들 수 있는데 새미 리의 프로젝트는 당연히 AV에 집중됐다.

이를테면 자연 세계의 많은 데이터를 모아 새로운 결과를 만들고 라이브 시각적 자료를 생성하는 콘서트를 개발한 것이다. 음악에 컬러가 있다면 어떤 색깔일까. 꿈이 만들어 내는 소리와 색깔은 대체 어떻게 구현될 수 있을까. 이런 주제가 GANs 기술로 만들어지도록 시도한 것이다.

2019년은 그에게 또 하나의 전환점이 됐다. BTS(방탄소년단)가 그해 영국 웸블리 스타디움을 가득 채우자 K팝의 영향력에 상당히 놀란 것이다. 런던을 가득 채운 뮤지션은 비틀스나 록그룹 퀸 등 손에 꼽을 정도였는데 한국에서 온 보이그룹이 그 반열에 오른 것은 주목할 만한 사건이었다.

자기 뿌리인 한국과 그곳의 대중문화가 전 세계로 확산하는 것을 보면서 1990년대 K팝의 기원과 아이돌그룹의 역사를 파고들었다. 대형 라이브 공연을 새로운 형태로 한층 진화하게 할 미디어 쇼도 고민하기 시작했다.

그 기점에서 평생의 우군을 얻었다. K팝의 대중적 흡입력을 연구하던 M.J 하딩을 만난 것이다. 그는 이제 '마이키'(Mikey)란 애칭의 반려가 됐다. 런던 골드스미스 칼리지에서 음악과 인류학을 전공한 하딩은 음성 멜로디와 드라마, 음악을 결합한 음향 극작법을 발전시키고 있는 음악가다. 오페라 가수였던 부모의 영향을 받아 예민한 청력으로 새로운 소리와 그 기원을 추적하는데 특별한 능력이 있다.

이 예술가 부부는 제주도에서 섬의 무속 타악기 소리를 녹음하면서 서로에게 영감을 얻었다. 하딩은 시간을 왜곡하는 폴리리듬과 트랜스를 유도하는 음악에 깊은 관심을 가졌고 두 파트너는 시청각 기술이 경험을 형성하고 의식 상태를 변화시킬 수 있는 방식을 정확하게 설명하는 데 집중할 수 있었다.

새미 리와 M.J 하딩은 고대 극장의 장치들과 공연 기법을 가상현실을 통해 글로벌 네트워크로 연결하려는 시도를 하고 있다. 성공한 K팝 콘서트에서 출발한 아이디어는 라이브 공연의 새 지평을 열게 될 프로젝트로 발전하는 중이다.

부부로서 두 사람은 개인의 작업과 감성 사이에서 치고받으면서 긴장감 있게 살고 있다. 부부로서도 차이를 좁히려 하기보다는 오히려 흥미로운 에너지로 분출하는 걸 즐기고 있다.

새미 리는 프로 전시예술가로 활동한 지 10년 만에 지난 5일 맨해튼 소호에서 뉴욕 데뷔 전시를 가졌다. 트라이베카 스테파니김 갤러리에서 '코로누코피아'(Cornucopia)라는 이름으로 개인전을 열었다.

전시는 몰입형 멀티채널 미디어 프로젝션과 16점의 새 예술 작품으로 꾸며졌다. '코덱스 코누코피아'로 명명된 대형 미디어아트는 책을 상징하는 '코덱스'와 보물이 넘쳐나던 상상의 물건 '풍요의 뿔'이 합쳐져 구성됐다.

코덱스는 유네스코가 지정한 기록유산을 디지털 이미지로 보여준다. 선사 유물과 중세 논문, 작가의 스캔 이미지가 몽환적으로 나타난다. 작가는 한국에서 유네스코 전시회와 다양한 박물관 행사를 진행하면서 16가지 이미지를 찾아냈다. 이 때문에 작품 속에는 '직지'와 '이산가족찾기', '동의보감' 등 한국인이 친숙한 이미지가 나타난다.

새미 리는 프로 전시예술가로 활동한 지 10년 만에 맨해튼 트라이베카 스테파니김 갤러리에서 개인전을 열었다.
전시의 사운드트랙은 하딩이 맡았다. 인류가 처음으로 자신의 목소리를 녹음한 오 클래어 데 라 룬(Au Claire de la Lune) 샘플을 리듬에 녹였고 한국적 정서의 북 연주는 주기적인 파동으로 썼다.

예술가 부부가 만들어 낸 이 전시는 과거 비디오 아트라는 생소한 예술을 선구자적으로 개척한 고 백남준 작가의 21세기 버전이라고 불러도 무방할 정도로 독특하고 전위적이란 평을 얻는다.

새미 리는 "캐나다에서 태어나 스위스에서 학생으로 성장했고 성인이 돼 런던에 정착했지만 서른 살이 되어서야 가족사에 대해 더 자세히 알아보고 그 뿌리인 한국인의 유산을 탐구하기 시작했다"며 "저를 지지해 주신 부모님 덕분에 제 삶을 독특한 방식으로 형성할 수 있는 축복을 받았다"고 했다.

이어 "가족의 뿌리는 저를 있게 한 자양분이 됐고 마지막 한 가지 불자셨던 할머니는 제가 예술을 영적인 길로 따르도록 영감을 주셨다"고 설명했다.

박준식 머니투데이 뉴욕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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