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밤중 '강아지'가 잡아끈 곳에…사람이 쓰러져 있었다[아·시·발]
일본 '멍멍순찰대'에서 영감 얻어, 처음 의견 내니 "장난하는 거냐" 반응도
반려견에게 순찰대 옷 입히고 자긍심 높이고, 커뮤니티로 참여 이끌어
"오래 살았지만, 우리 동네에 이리 애착 생긴 건 처음이에요"
[편집자주] 기발한 아이디어를 처음 낸 사람들을 만나러 갑니다. 아이디어의 시작과 발명, 이른바 '아시발'입니다. 시발(始發)은 비속어가 아니라 '처음으로 일어남'이란 뜻입니다. 세상을 선하게 만드는 아이디어가 더 널리 퍼지길 바랍니다.
그때였다. 은송 대원이 무언가 발견했다. 초등학생 친구들이 신호등 없는 횡단보도를 건너려 했다. 작은 친구들이 주춤주춤, 하는데 차가 자꾸만 쌩쌩 지나갔다. 학생들은 당황해 건너지 못하고 있었다. 은송 대원은 어린이들에게 다가갔다. 안전하게 다 건널 때까지, 멋지게, 곁에서 호위해주었다.
한 번은 버스정류장과 차도 사이에서 위태롭게 휘청이던 취객도 발견했다. 몸을 못 가누며 도로로 향했다가, 다시 올라오는 걸 반복했다. 은송 대원과 보호자 민서 대원은 112에 신고했다. 경찰이 부축해 챙기는 걸 본 뒤 다시 순찰에 나섰다.
한솜이 대원은 노원구 반려견 순찰대다. 하얗게 사방으로 뻗친 동그란 머리가 매력 포인트. 평소 용맹함과는 거리가 멀어, 시험도 '쫄보'라 합격했단다. 순찰복을 입고 나가니 "저리 쪼그만 게 무슨 순찰을 한다고"라며 웅성거렸다. 그러나 순찰 첫날, 한솜이 대원은 금연 구역에서 담배를 피우던 아저씨와 눈이 마주쳤다. 아저씨는 황급히 담배를 숨겼다고.
여기에 '순찰'을 더하니 엄청난 시너지가 났다. 정해진 시간, 정해진 구역을 돌아보는 경찰과 달리, 반려견 보호자들은 시시때때로 어디든 다니니까. 경찰력의 한계를 넘어 모세혈관처럼 촘촘한 감시망이 생겼다. 2022년 5월 64팀으로 시작해, 지난해 1011팀으로 확 늘었다. 올해 반려견 순찰대 목표는 2000팀이다.
'이거 누가 아이디어를 냈는지 상 줘야 합니다.'(반려견 순찰대 기사 댓글)
국내에서 처음 아이디어를 내고 발전시킨 사람은 강민준 서울 자치경찰위원회 경위다. 2021년에 대학원을 다닌 게 시작이었다. 당시 '자치 경찰(지역 주민을 위해 활동하는 경찰)' 관련 석사 논문을 쓰다, 흥미로운 사례를 발견했다.
"주민 주도로 참여한 해외 사례들을 보는데, 일본에 '멍멍순찰대'란 게 있더라고요. 치매 노인을 찾는 활동 등을 하고요. 작은 마을 단위로 운영되는 듯했습니다."
당시는 코로나19가 심할 때였고, 반려견을 키우는 가구가 늘었단 뉴스가 쏟아졌었다. 매일 산책하는 반려견, 그 생각에 이거다 싶었다. 문장으로 정리하면 이런 거였다. '(반려견을 좋아하는) 취향을 모아 치안을 만든다.' 1500만 반려 인구라는 촘촘함, 게다가 이들끼리 뭉치고 소통하게 하기에 수월한 힘도 지니고 있었다.
논문을 준비하며 우연히 본 해외 사례. 그냥 '이런 게 있구나' 스쳤을 수도 있는데, 그럴 가능성이 높은데 그걸 추진하는 거였다. 평소 실행력이 있는 편인지 물었다. 일단 해보는 편이란다.
"뭐가 됐든 해보고 싶은 건 해봐야 하는 성격이긴 합니다(웃음). 생각만 품고 있는 것보단요."
생각하는 사람과, 생각이 뚫고 나와 행동하는 사람의 차이. 예전에 LH 직원이 내부 정보를 악용해, 불법 투기를 했던 사건이 터졌을 땐, 서약서를 썼던 2000명이 넘는 이들의 거래 내역을 다 확인했단다. 한 달 넘게 걸렸다고. 그래도 이런 일이 또 있으면 안 된다고 생각해 추진한 거였다.
반려견 순찰대 얘길 꺼냈을 때, 국내에선 아예 생소한 개념이라 내부적으론 의견이 갈렸다.
"약간, 강아지 데리고 뭐 하는 거냐, 장난하는 것도 아니고, 그런 의견도 있었고요. 경찰을 비하하는 표현이 떠오른단 이야기도 있었어요. 위축되더라고요."
그때 적극 응원해주는 사람도 있었다. 김성섭 서울 자치경찰위원회 사무국장이었다. 김 사무국장이 이렇게 말했단다. 평소 열린 마인드의 소유자였다고.
"구더기 무서워서 장 못 담그는 거 아니니까, 그거 한 번 해보자."
아이디어를 익게 하는 '디테일'이 필요했다. 반려견 순찰대원들이 입는, 순찰대원복이 그중 하나였다. 형광 초록색 옷에, 등엔 '반려견 순찰대'라고 늠름하게 표기돼 있다. 내부에서 추진할 땐 "계급장도 붙이지 그러느냐"는 핀잔도 들었단다. 그럼에도 추진했다. 강 경위가 말했다.
"우리 아이가 뭔가 하면 사실 자랑스럽고 그렇잖아요. 보이스카우트처럼요. 그런 자부심을 주고 싶었던 거지요. 부모 마음이 그렇잖아요. 가족이고 자식처럼 사랑하니까 그런 효과를 내보잔 취지에서 만들었지요."
여기에 시범 운영 때부터 64개팀의 밴드 커뮤니티를 만들었다. 순찰하면 항상 사진을 올려 소통하게 했고, 거기에 강 경위가 하나하나 다 답글을 다는 진정성을 보여줬다. 그러면서 구글폼을 활용해 일지를 기록해 '성과'를 가시화했다. 두 달 활동하며 112 경찰 신고가 8건, 일반 신고가 120건에 달했다.
이어 2022년 8월부터 12월까지 총 284개 팀으로 확대했고, 이 기간엔 범죄 예방 신고 214건, 생활 위험 120 신고가 1만1620건으로 늘었다. 지난해엔 서울 25개 자치구 전역에 도입했는데(1011팀), 112 신고가 317건, 생활 위험 신고가 2187건에 달했다. 놀라운 성과였다.
"30년 동안 강동구에 살면서, 우리 동네에 이리 애착과 관심이 생긴 건 처음이라고 하시는 거예요. 이웃에 대해, 공원에 앉아 계신 어르신에 대해, 길을 걷는 어린이에 대해서요."
스토킹 피해자인 여성을 돕기도 했다. 피해자는 반려견 순찰대에게 "연락드릴 때 함께 귀가해주실 수 있느냐"고 했다. '복실이' 대원이 보호자와 출동했다. 안심 귀가 서비스도 있지만, 매일 사람이 바뀔 수도 있고, 뭣보다 복실이가 있었기에 대화도 더 부드러워졌다고. 그리 큰 존재이고, 역할을 하는 거였다.
서울 금천구에선 학생 여럿이 한 학생을 둘러싸고 시비를 거는 광경이 목격됐다. 반려견 순찰대가 다니던 길이었다. 피해자가 발달장애아로 의심돼, 제지 후 112 신고 조치를 했단다. 학생은 실종 신고가 되어 있던 상황이었다. 신속한 순찰로 아이를 찾고, 집단 폭력을 막을 수 있었다.
반려견 스스로 발견해 활약한 사례도 많다. 인간 동물에 비해 청각과 후각이 뛰어나서다. 심야 시간에, 반려견 순찰대원 '쿠로'가 줄을 끌어당겼다. 보호자 대원이 함께 향한 곳엔 발달장애인이 길가에 쓰러져 있었다. 심지어 반려견 순찰대가 되기 전, 화단에서 마약을 발견한 멋진 대원도 있단다.
반려견 순찰대란 아이디어를 멋지게 정착시킨 사람. 아이디어 내길 좋아하는 강 경위의 노하우는 뭘까. 그는 생태학자 최재천 이화여대 석좌교수의 '통섭' 이야길 했다.
"책을 1년에 30권 정도는 보는데, 필요한 것만 발췌독을 하는 편이에요. 최재천 교수님의 '통섭(서로 다른 것을 한데 묶어 새로운 것을 잡는 일)'이라고 할까요. 다양한 분야의 무언가를 쌓다 보면 어느 한 곳에 꼭짓점으로 모이더라고요."
경찰이지만 도시 건축도, 디자인에도 관심이 많은 건, 이와 관련해 범죄 예방을 할 수 있단 걸 알고 있기 때문이라고. 그러다 갑자기 아이디어가 생각나서 실행해보고픈 마음이 든다고 했다.
끝으로 이제 막 꿈틀대는 신선한 생각을 품은 이들에게 해주고픈 말이 있다고 했다.
"상황이 이러니까 하지 말자, 그리 생각하기 쉽잖아요. 그런데 그 안에서라도 해보면요. 인과에 따라 반드시 어떤 결과가 나오게 됩니다. 다만 좀 더 나은 결과를 위해 노력하고, 문제점을 예상하고, 귀찮지만 대응하면서요. 그런 것들이 모이면 작은 걸로 큰 결과를 낼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남형도 기자 human@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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