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일논단] 당신에 대한 지지를 철회합니다. 캔슬 컬처와 인정이론

마정미 한남대 정치언론학과 교수 2024. 5. 23. 0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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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정미 한남대 정치언론학과 교수

"당신에 대한 그동안의 지지를 철회합니다"라는 의미의 '캔슬컬처'라는 용어가 있다. 캔슬컬처는 자신이 지지하던 누군가에게 실망하여 SNS상에서 팔로우를 취소(cancel)한다는 뜻이다. 그가 자신이 생각하는 올바름의 기준에 어긋나는 발언을 했을 때, 논란이 될 만한 행동을 했을 때, 혹은 인종문제나 젠더문제 등 소수자를 차별하거나 혐오하는 발언을 했을 때 You are canceled라는 메시지와 함께 해시태그를 다는 행위에서 시작됐다.

소셜미디어에서는 다른 사람과 관계를 맺고 끊는 것이 한 번의 클릭으로 쉽게 가능하기 때문에, 자신과 의견이 다른 사람과 관계를 지속하거나 논리적으로 설득하려고 시도하기 보다는 빠르게 절교하는 방식을 선택하는 것이다. 우리식으로 말하면 손절이라 할 수 있을까? 사실 손절이라는 단어도 근원을 따지면 적절한 용법으로 쓰이고 있지 않지만 어쨌든 우리는 이런 상황을 손절이라 일컫는다.

사실 우리가 살아가면서 모든 사람을 만족시키고 모든 사람들에게 인정받고 사랑받을 수는 없다. 역으로 모든 사람을 인정하고 사랑할 수도 없다. 이익사회의 너무 많은 관계들, 팬덤처럼 이미지만으로 만들어진 관계, 복잡한 인간관계를 떨치고 오롯하고 고요한 삶을 살고 싶을 때도 있다. 불필요한 관계도 그렇지만, 용납할 수 없는 가치관과 행동을 보이는 사람은 그야말로 캔슬하고 싶기도 하다. 그런데 문제는 이러한 캔슬컬처가 사회적 물의를 일으킨 대상을 단순히 비판하는 것을 넘어 학교나 직장, 공동체에서 활동하지 못하게 하는 적극적인 배척, 강력한 제재가 되기도 한다는 것이다.

캔슬컬처의 긍정적인 면은 잘못된 행동에 대해 책임을 묻는다는 점에 있다. 연예인이나 운동선수에 대한 지지 철회가 대표적이다. 학폭 논란으로 연예계를 떠나거나 아이돌 그룹을 탈퇴하는 사례도 있거니와 외국인 출연자나 운동선수도 예외가 아니다. 쌍둥이 자매 배구선수의 학폭 논란은 그들이 더 이상 선수생활을 할 수 없도록 만들었다. 어렸을 때 잘 모르고 한 일로 창창한 앞길을 막아야 하느냐는 의견도 있지만 용서만 빌면 끝이라는 인식이 우리 사회에 잘못 형성된다면 학교폭력같은 심각한 범죄를 사회적으로 용인해주는 결과가 될 것이다. 캔슬컬처는 학교 폭력뿐만 아니라 음주운전, 표절, 성 희롱 등 윤리적 도덕성을 사회적 기준으로 형성하고 유사한 사례가 발생하지 않도록 예방하는 효과가 있다.

그러나 캔슬컬처는 한편으로는 폭력이 될 수도 있다. 혐오라는 사회적 현상을 더욱 확산시키고 일종의 사이버 괴롭힘으로 변질되기도 했다. 이에 2019년 오바마(Barack Obama) 전 대통령은 "누군가에게 돌을 던지는 건 쉽다"고 하며 "누군가를 잘못됐다고 판단하는 것은 시민운동이 아니다"라고 지적하면서 캔슬 컬처를 비판하기도 했다.

악셀 호네트라는 학자는 '인정투쟁(Kampf um Anerkennung)'이라는 책을 통해 사회적 인정을 논의했다. 헤겔의 인정이론과 미드(G.H. Mead)의 사회심리학을 경유하여 현대 사회의 사랑, 권리, 사회적 가치부여라는 세 가지 형태의 사회적 인정과 이에 대응하는 세 가지 형태의 무시(폭력, 권리부정, 가치부정), 그리고 무시의 경험으로부터 발생하는 인정투쟁을 통한 사회의 변혁에 관해 설명한 책이다.

인간은 자신의 삶에 대한 최고의 주권자로서 스스로의 삶을 주관하려는 적극적 태도를 가져야 한다. 그러나 긍정적 자기관계인 자신감, 자존감, 자부심은 근본적으로 타인의 인정과 연관돼 있다. 즉 개인은 자신의 자연적 욕구를 충족시켜주려는 정서적 배려를 체험하면서 불안감 없이 행동할 수 있는 자신감을 갖게 되며, 자신에게 다른 사람과 동등한 권리가 부여될 때 자신 역시 다른 사람과 동등한 존재라는 자존감을, 그리고 사회적 연대를 체험하면서 자신의 개성이 공동체로부터 가치를 부여받고 있다는 자부심을 갖게 된다는 것이다.

즉 개인은 타인과의 상호작용 속에서 지속적으로 인정을 경험할 때 자신 역시 스스로를 인정하는 긍정적 자기관계를 갖게 되며, 주권적 태도는 바로 이러한 긍정적 자기관계 속에서 형성된다는 것이다. 우리는 여전히 타인과 분리돼 살 수 없다. 기분에 따라 손절하거나 타인을 혐오해서는 안 되는 것이다. 마정미 한남대 정치언론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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