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지 후보 없음’ 바이든에게 성난 미국 친민주 유권자들

워싱턴∙정재민 편집위원 2024. 5. 23. 06: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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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이든의 친이스라엘 정책에 반대하며 ‘지지하지 않겠다’라는 항의를 표시한 유권자가 전국적으로 53만명을 넘어섰다. 백악관과 민주당 지도부는 긴장하는 기색이 역력하다.
5월2일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백악관에서 최근의 학생 시위와 관련해 연설하고 있다. ⓒAFP PHOTO

11월 대선에서 재선을 노리는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이스라엘 때문에 정치적 고민이 이만저만 아니다. 이스라엘이 지난해 10월 기습 테러 공격을 자행한 팔레스타인 무장 정파 하마스와 전쟁을 벌이면서 인도주의적 위기가 가중되고 있지만, 미국이 오히려 이스라엘을 감싸고 돌면서 바이든의 재선 전략에 악영향을 끼치고 있다. 특히 전통적으로 대선 성패를 가늠할 수 있는 경합주에서 바이든의 친이스라엘 일변도 정책에 대한 노골적인 반발 표심이 확산되면서 바이든의 재선 가도에 경고등이 켜진 상태다.

역대 미국 대통령 선거에서 외교 문제가 유권자의 뜨거운 관심사로 떠오른 적은 거의 없다. 현재 미국의 가장 뜨거운 외교 이슈인 중동 전쟁도 마찬가지다. 이스라엘이 팔레스타인 가자지구를 폭격해 민간인 희생자가 3만4000명을 넘어서고, 이스라엘이 국제 구호단체들의 활동마저 방해해 벌어지는 인도주의 위기가 연일 미국의 주요 언론을 통해 전해지고 있지만, 대다수 유권자의 주된 관심은 다른 데 있다. 갤럽의 최근 여론조사에 따르면, 물가와 실업률 문제가 약 30%로 유권자들의 가장 큰 관심사였고, 연방정부 재정적자, 임금, 세금 문제 등이 뒤를 이었다. 외교 문제는 1% 미만으로 나왔다.

그렇다고 바이든이 안심할 처지는 전혀 아니다. 대선 성패를 판가름하는 7개 경합주에서 바이든의 친이스라엘 일변도 정책에 대한 반발 민심이 심상치 않다. 최근 민주당 대선후보를 뽑는 프라이머리(예비경선)에서 미시간을 비롯해 위스콘신, 펜실베이니아 등 대표적 경합주에서 바이든에게 항의하는 표시로 많은 유권자가 ‘지지 후보 없음(Uncommitted)’을 선택한 것으로 나타났다. 예를 들어 아랍계 유권자가 많은 미시간주에서는 전체 유권자의 13%에 해당하는 10만명 이상의 유권자들이 이런 식으로 바이든에게 항의를 표시했다. 2020년 대선 때 바이든이 미시간주에서 트럼프를 15만4000표 차이로 이겼음을 감안할 때, 이들이 다가올 대선에서도 같은 선택을 하면 바이든이 패할 가능성은 100%다.

다른 경합주인 위스콘신의 예비경선에서도 4만8000명에 달하는 유권자가 ‘지지 후보 없음’을 선택했다. 2020년 대선 때 바이든이 위스콘신에서 0.7%포인트(약 2만 표) 차이로 겨우 이겼음을 감안하면 이들을 달래지 못할 경우 올 대선에서 바이든은 패한 것이나 다름없다.

바이든이 대선 승리를 위해 반드시 이겨야 하는 핵심 경합주 펜실베이니아에도 상황은 비슷하다. 4월26일 치러진 예비경선에서 유권자 6만명 이상이 ‘지지 후보 없음’을 선택해 바이든을 거부했다. 바이든은 지난 대선 때 펜실베이니아에서 8만 표 차로 트럼프를 이겼다. 바이든의 친이스라엘 정책에 항의하기 위해 결성된 유권자 연합체인 ‘언커미티드 PA(Uncommitted PA)’는 성명을 통해 “이번 선거 결과는 바이든이 핵심 경합지인 펜실베이니아에서 승리하려면 가자지구에 대한 기존 정책을 근본적으로 바꿔야 한다는 분명한 메시지를 보낸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 같은 표심은 이들 경합주 외에도 하와이·매사추세츠·콜로라도·미네소타·워싱턴·코네티컷·로드아일랜드 등 다른 주에서 벌어진 예비경선에서도 확인됐다. 시사 월간지 〈더네이션〉의 최신 집계에 따르면 항의를 표시한 유권자가 전국적으로 53만명을 넘어섰고, 이들을 대표해 오는 8월 시카고에서 열리는 민주당 전당대회에 참가하는 대의원도 25명에 달했다. 전체 대의원 3934명에 비하면 미미한 숫자이지만, 전당대회 기간 중 바이든의 친이스라엘 정책을 반대하는 소수의 목소리를 낼 수 있다는 점에서 벌써부터 큰 주목을 받는다.

물론 ‘지지 후보 없음’을 택한 유권자 모두가 올해 대선에서 기권표를 던지거나 투표장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으리라는 보장은 없다. 그 경우 바이든보다는 트럼프의 승리를 보장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들의 선택은 경고 차원의 ‘상징적’ 행위라는 관측도 있다. 니컬러스 뷰챔프 교수(노스이스턴 대학 정치학과)는 최근 언론 인터뷰에서 “이들이 대선에서 실제 행동으로 보여줄 수 있을지는 확실치 않아 현 단계에서 상징적”이라면서도 “흑인과 히스패닉을 비롯한 상당수 젊은 유권자들은 바이든을 찍지 않거나 제3후보를 선택할 가능성이 있다”라고 전망했다.

2월27일 미시간주 예비선거 투표소 앞에서 한 유권자가 ‘지지 후보 없음’이라고 적힌 종이를 들고 있다. ⓒAP Photo

최근 컬럼비아 대학을 시작으로 이스라엘의 비인도적 처사에 항의하는 시위가 미국 전역의 대학 캠퍼스에 확산되면서 가뜩이나 바이든에게 실망한 젊은 유권자들이 더욱 등을 돌렸다는 관측이 지배적이다. CNN이 4월 하순 실시한 여론조사에서도 바이든은 젊은 유권자들(18~34세) 사이에서 트럼프보다 11% 뒤진 것으로 나타났다.

뷰챔프 교수의 지적대로 경합주 유권자의 성난 표심이 현 단계에선 상징적이긴 해도 백악관과 민주당 지도부는 긴장하는 기색이 역력하다. 최근 여론조사를 보면 경합주에서 바이든은 사법 리스크로 재판 중인 트럼프에게 밀리고 있다. 지난 대선 때 바이든이 이긴 결정적 이유도 7개 경합주 가운데 6개주에서 승리했기 때문인데, 지금은 모두 불리하다. 4월 하순 의회 전문지 〈더힐〉이 에머슨 대학과 공동으로 실시한 여론조사에 따르면 바이든은 애리조나·조지아·미시간·네바다·노스캐롤라이나·펜실베이니아·위스콘신 등 대표적 7개 경합주에서 1~5%포인트 차로 뒤진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친민주 유권자들이 ‘지지 후보 없음’으로 바이든에게 항의 표심을 전달한 펜실베이니아와 위스콘신에서는 불과 2%포인트, 미시간에서는 1%포인트 차이로 바이든이 트럼프에게 뒤졌다. 이런 상황에서 이들 가운데 일부라도 바이든에 대한 반감으로 올 대선에서 기권표를 던지거나 투표장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으면 표차는 더욱 벌어질 가능성이 크다. 로드아일랜드주 하원의원을 지낸 애런 리건버그 씨는 〈더네이션〉에 “나는 바이든을 위해 뛰고 있지만 주변의 아랍계 유권자, 젊은 유권자들은 바이든이 친이스라엘 정책을 바꾸지 않으면 찍지 않겠다고 한다”라고 말했다.

가장 큰 걸림돌은 네타냐후?

상황이 심상치 않자 민주당 의원들도 성난 민심, 특히 지난 대선 때 바이든을 지지했다가 배신당했다고 느끼는 아랍계 유권자들 달래기에 나섰다. 크리스 쿤스 민주당 상원의원을 비롯한 일부 의원들은 이스라엘에 대한 군사 지원을 가자지구 최남단 라파 지역에 대한 이스라엘의 군사작전 중단과 연계하자는 입장이다. 또 크리스 밴 홀런 의원을 비롯한 민주당 하원의원들은 이스라엘에 공급되는 미제 무기가 팔레스타인 난민 살상에 이용된다는 비난이 거세지자 지난 2월 바이든에게 시정조치를 요구했다. 바이든도 이들의 요구를 받아들여 미제 무기를 지원받는 우방은 국제법 또는 미국 국내법을 준수해야 한다는 지침을 담은 ‘국가안보 메모 20호’를 발표했지만 이스라엘이 이 지침을 따랐다고 보는 사람은 많지 않다. 민주당 의원 88명은 이스라엘이 이 지침을 위반했다고 볼 만한 충분한 증거가 있다며 시정을 요구하는 서한을 최근 바이든에게 보내기도 했다.

그렇다고 바이든이 이스라엘을 세게 압박할 수도 없다. 그가 이스라엘에 대한 지지를 조금이라도 철회하는 듯한 인상을 줄 경우 대선을 코앞에 두고 주류 유권자들의 반발을 사는 것은 물론 공화당과 트럼프로부터 ‘반이스라엘 행정부’란 치명적인 프레임에 휘말릴 수 있기 때문이다. 바이든이 가장 바라는 건 이스라엘이 하마스와 하루빨리 휴전안에 합의하는 것이다. 이를 통해 라파 지구에 밀집한 약 140만 팔레스타인 난민에 대한 추가 피해를 막고, 인도주의적 위기를 해소해 성난 민심을 달랠 수 있을 것으로 본다.

하지만 상황이 바이든이 원하는 대로 흘러갈지는 속단할 수 없다.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가 기존 휴전안을 두고 ‘하마스 4개 대대가 은거한 것으로 알려진 라파 지역에 대한 군사작전을 방해하려는 것’이라며 거부 의사를 밝혔기 때문이다. 네타냐후가 끝내 휴전안을 거부한 채 라파 지역에 대한 대규모 지상전 작전을 감행해 또다시 민간인 피해가 급증하면, 경합주의 성난 유권자들은 물론 중도파 유권자들까지 자극할 수 있다. 바이든의 재선 꿈은 그만큼 멀어질 수밖에 없다는 게 워싱턴 정가의 대체적인 관측이다.

워싱턴∙정재민 편집위원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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