北 ‘3대 초상화정성사업’… 김정은 우상화 가속

김예진 2024. 5. 23. 06:03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2024년 초 軍에 사업 계획 하달
본지, 北 내부문건 단독 입수
김일성·김정일과 함께 위인화
당 중앙간부학교에 초상화 걸어
교육기관 의미 등 따라 낙점한 듯
김주애 지위 상승·역할 커질 수도
당국 “위상 과시… 동향 계속 주시”
올해 초 일선 군부대로 하달된 북한 내부 문건에 ‘3대 위인 초상화정성사업’이란 문구가 있었던 것으로 확인됐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을 김일성-김정일과 함께 3대 위인으로 지칭해 우상화 작업에 박차를 가하는 것으로 추정된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 평양 조선중앙통신·연합뉴스
세계일보가 22일 대북소식통을 통해 입수한 북한 내부 문건을 보면 ‘3대 위인 초상화정성사업 연구실모심사업’이란 문구가 등장한다. ‘2024년 1월 사업계획서’라는 제목의 문건으로, 북한 당국이 올 1월 추진하는 사업 계획을 일선 군부대에 내려보낸 것으로 관측된다.

과거 북한에서 ‘3대 위인’이라고 하면 ‘백두혈통 3대 위인’인 김일성과 김정일, 김일성의 아내이자 1세대 여성 항일혁명 투사인 김정숙을 가리켰다. 김정숙은 북한 내에서 초상화까지 제작돼 걸지는 않았다. 따라서 ‘3대 위인 초상화정성사업’이란 말에서 ‘3대 위인’은 김일성-김정일-김정은을 새롭게 의미하는 것으로 보인다.

‘정성사업’, ‘연구실모심사업’ 등도 3대 위인이 김정은을 포함한 역대 최고 지도자를 의미하는 것으로 볼 수 있는 용어다. 통일부의 북한용어 사전에 따르면, ‘정성작업’, ‘정성함’ 등의 별도 용어가 존재한다. 정성작업이란 ‘온갖 정성을 다하여 존귀한 물건이나 대상을 손질하고 가꾸는 일’, 정성함은 ‘정성작업을 하는 데 필요한 도구를 넣어 두는 함’이라고 정의하고 있다. 김일성-김정일 초상화에 김정은 초상화를 추가해 ‘3대 위인 초상화’로 묶어 하나의 관리 체계를 세우고 있다는 방증이다.
2024년 1월 사업관련 내용이 담긴 북한군 내부 문건 중 일부
이런 가운데 조선중앙통신과 노동신문은 이날 새로 지은 당 중앙간부학교 건물 외부와 실내에 김일성-김정일과 함께 김정은까지 3대 초상화가 나란히 걸린 모습을 공개했다. 김정은 초상화는 치아를 드러내며 활짝 웃고 있는 김일성-김정은 초상화와 달리 입을 다물고 근엄한 표정이 특징이다. 북한 권력층 내부에서 갑산파, 연안파 등 경쟁 세력이 제거되고 김일성 개인숭배가 자리 잡기 시작한 1970년, 김일성 초상화가 처음 나왔을 때와 유사한 표정이다.

김일성 초상은 처음엔 검은 머리에 입을 다문 진지한 표정의 젊은 지도자 모습이었다가 1980년대 김정일 초상화가 나와 초상휘장(배지)에 이른바 ‘쌍상’(김일성-김정일 초상)이 들어가면서 노년의 흰 머리에 활짝 웃는 표정으로 바뀌었다.

당 중앙간부학교에 걸린 김정은 초상화는 지난달 공개된 김정은 찬양 선전가요 ‘친근한 어버이’ 뮤직비디오에서 가장 마지막에 등장하는 초상과도 일치한다. 1월 군에서 김정은 초상화 사업 진행→4월 선전가요를 만들어 북한 주민들에게 자연스럽게 초상화 노출→5월 당 중앙간부학교 준공과 함께 공식 사용의 단계를 거치면서 군에서 당으로 초상화 사업이 확산한 것으로 추정된다. 북한은 권력승계와 우상화를 점진적이고 단계적으로 추진하는 체제의 특성을 보이고 있다. 따라서 당 중앙간부학교는 교육기관이라는 점, 마르크스와 레닌 초상화까지 걸어둔 곳이라는 점을 감안할 때 당 관련 기관이나 장소 중 우선적으로 우상화를 시도할 만한 곳으로 낙점된 것으로 보인다.
나란히 걸린 3대 초상화 조선중앙통신은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21일 금수산지구 노동당 중앙간부학교 준공식에 참석해 기념연설을 했다고 22일 보도했다. 사진은 김 위원장(왼쪽)이 앉은 교실 앞쪽 칠판 위에 김일성-김정일-김정은 북한 3대 지도자의 초상화가 나란히 걸려 있는 모습. 조선중앙통신·연합뉴스
북한에선 김일성 시기 소련, 중국의 공산주의를 교조주의, 수정주의라고 비난하고 독자적인 주체사상을 내세웠기 때문에 마르크스, 레닌 초상화를 건 것도 파격으로 해석된다.

북한 매체들은 21일 당 중앙간부학교 준공식이 성대하게 거행됐으며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참석해 강령적 연설을 했다고 보도했다.

김 위원장은 연설에서 “당 중앙간부학교를 세계적인 학원으로 건설하는 것은 단순히 교육기관의 면모를 일신하는 사업이 아니라 김일성-김정일주의 당의 명맥과 향도력을 천추만대로 이어나가기 위한 최중대사”라며 “누구든 여기에 와보면 우리 당과 혁명의 명맥이 어떻게 이어지는가, 그 절대적인 집권력과 영도력이 어떻게 영구화되는가 하는 데 대한 명백한 대답을 찾을 수 있다”고 강조했다. 당 중앙간부학교에 공산주의 사상의 뿌리인 마르크스와 레닌 초상을 걸고, 이를 북한식으로 주체사상화한 김일성-김정일과 같이 자신을 동일선상에 올리며 또 한 명의 사상지도자로서 우상화하는 과정으로 분석된다.

정성장 세종연구소 통일전략실장은 “김정일로의 권력승계 시기에 김정일 초상화도 군에서 먼저 걸리기 시작했다”며 “1월 8일 김정은의 40번째 생일을 계기로 초상화를 걸기 시작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지난 21일 평양 금수산지구 노동당 중앙간부학교 준공식에 참석한 교내 혁명사적관 외벽에 김 위원장 초상화가 김일성 주석과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초상화와 나란히 걸린 모습이 처음으로 포착됐다. 평양 조선중앙통신=연합뉴스
김정은 우상화가 초상화 공개를 통해 본격적으로 수면 위로 부상하면서 북한에서는 향후 1월 8일 김정은 생일을 ‘태양절’, ‘광명성절’과 같이 국가기념일로 지정할 가능성도 있다. 또 ‘김정은주의’ 사상의 등장 가능성도 점쳐진다.

후계 세습설이 나오는 딸 김주애의 지위 상승이나 역할 강화도 이어질 수 있다. 쌍상인 초상휘장 디자인이 바뀌거나 김정은 단독 초상휘장이 등장할 수 있다. 북한에서 권력승계는 가장 중요한 업무로, 남북관계나 대외관계 방향에도 큰 영향을 미친다.

통일부 당국자는 당 중앙간부학교 준공식 김정은 초상화 게재와 관련해 “북한 보도에서 김씨 3대 사진이 나란히 게재된 것은 이례적인 것으로 보이며, 최초 사례인지는 추후 확인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또 “김정은과 선대 사진을 나란히 게재한 것은 최근 김정은 혁명사상 등 사상지도자로서의 위상 과시의 일환으로 보이며, 향후 김정은의 독자적 우상화 흐름에 유의해 동향을 주시해나가겠다”고 말했다.

김예진 기자 yejin@segye.com

Copyright © 세계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