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정대 ‘소통·정책 조율’ 강화… 수직관계 재정립이 관건 [고위당정협의회 정례화]

박지원 2024. 5. 23. 06:02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정책협의회 신설 배경·전망
집권 3년차 尹정부 총선 참패 이후
공직사회에 대한 장악력 상실 분석
‘오락가락 정책’에 국민 불신 고조
여당의 ‘리더십 공백’ 사태도 영향
이재명 “덜컥 정책… 尹, 남탓 심각”
잇단 정책 혼선 사례
비난 여론에 ‘고령자→고위험군’ 말바꿔
R&D예산 삭감·수능 킬러문항도 역풍
주요 정책을 사전 조율하는 고위당정정책협의회가 매주 정례화된 것은 이번 ‘해외 직구 규제’ 발표에서 비롯된 논란이 결정적 계기로 작용했다. 기존에도 한덕수 국무총리 주재로 대통령 비서실장과 여당 지도부가 참여하는 고위당정회의가 열려 왔다. 하지만 설익은 정책 발표에 따른 혼란이 반복되면서 대통령실이 주관하는 정책 라인 중심 별도 협의체가 마련된 것이다.
성태윤 정책실장. 뉴시스
성태윤 대통령실 정책실장은 22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에서 진행한 브리핑에서 “고위당정협의회에서는 당정 간 정책뿐 아니라 국정 전반에 대한 큰 틀의 논의가 이뤄진다면 고위당정정책협의회는 정책적인 측면에서 한층 구체적인 논의가 이뤄지는 당정 간 협의체”라고 차이점을 설명했다.

추경호 원내대표는 이날 국회에서 기자들과 만나 “당정회의는 여러 형태로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실제로 추 원내대표는 이날 국회에서 강정애 국가보훈부 장관과 천대엽 법원행정처장, 한화진 환경부 장관, 안덕근 산업통상자원부 장관 등으로부터 잇따라 현안 보고를 받았다. 지난 9일 여당 원내사령탑으로 선출된 추 원내대표와 장관들의 상견례이자, 당정대 정책협의회와 마찬가지로 정책 조율 기능을 강화하려는 차원이기도 하다. 안 장관은 보고를 마친 뒤 기자들과 만나 최근 ‘직구 논란’과 관련해 “의사소통에 문제가 좀 있었던 것 아닌가 싶다”며 “재발하지 않도록 정책 입안과 추진에 있어 당정 소통 및 협력 강화를 위해 최대한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정치권과 정부 안팎에서는 해외 직구 규제 논란과 같은 정책 혼선이 빚어진 원인으로 집권 3년 차를 맞은 윤석열정권이 4·10 총선에서 참패하며 공직사회에 대한 장악력을 잃은 것 아니냐는 분석을 내놓기도 한다.

최근 공직사회는 어수선하다. 대통령실이 여당의 총선 참패 원인 중 하나로 ‘정책 소통 부족’을 꼽은 것에 대한 반발심리도 나오고 있다. 대통령실은 최근 각 부처에 ‘장관급이 한 달에 한 번 언론과 소통할 것’을 주문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따라 부처 장관들은 최근 각종 간담회 준비에 열을 올리고 있는 상황이다. 일정이 나오지 않는 부·처장 중엔 국장급 간담회에 모습을 보이는 ‘꼼수 소통’ 사례도 있다.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 9일 용산 대통령실 청사 브리핑룸에서 열린 취임 2주년 기자회견에서 취재진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뉴스1
개각 인사가 늦어지면서 정책 추진 동력도 약해졌다. 지난 9일 윤석열 대통령이 개각에 대해 “조급하게 할 생각 없다”고 말한 후 눈치보기는 더욱 심해졌다. 경제부처 한 공무원은 “언제 어떤 장관이 바뀔지 모르니 실무에서는 새로운 정책이나 아이디어 등을 내놓기 어렵다”며 “게다가 여소야대 국면이어서 정책과 법안들이 국회에서 막힐 것이란 우려도 있다”고 말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공무원들이 움직이지 않는다는 지적이 내부에서도 나오고 있다. 한 정부 관계자는 “각 부처가 자신들이 갖고 있는 권한을 그대로 유지하려는 경향이 아직도 이어지고 있다. 변화가 부담스러운 것 아니겠느냐”고 말했다.
윤 대통령이 4·10 총선 바로 다음 주인 16일 국무회의에 참석한 이후 5주 연속 국무회의에 불참한 것도 이런 느슨한 분위기를 가속화시키고 있다는 지적이다. 여당 총선 패배로 공직 기강이 느슨해지기 쉬운 시기에 대통령이 공직 기강을 다잡는 자리이기도 한 국무회의에 장기간 참석하지 않은 것이 장악력 저하로 이어졌고, 이로 인해 정책 혼선이 빚어졌을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추경호 국민의힘 원내대표가 22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중진의원 간담회를 주재하고 있다. 뉴스1
‘설익은 정책’ 논란은 여당의 리더십 공백 상태와도 무관하지 않다는 평가도 나온다. 국민의힘 중진 윤상현 의원은 이날 KBS 라디오에서 “당정협의를 통해 현장에서 느끼는 것을 한번 미리 짚어보고 정책을 결정하는 게 좋은데 절차를 생략한 것이다. 그래서 당정협의가 더욱더 필요하다”면서 “지도부 공백 상태도 있고 추 원내대표가 자리를 잡았지만, 아직 정착이 안 된 상태이고 하니 (당정협의가) 제도화가 안 돼 있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수직적 당정관계 개선이라는 근본적인 변화 없이는 비슷한 정책 혼선이 반복될 수 있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국민의힘은 지난해 3월 ‘김기현 체제’ 출범 당시에도 정책 혼선을 최소화하겠다며 △정책조정위원회 활성화 △정부 주요 정책 발표 전 사실상 당정협의 의무화 △비공개 실무 당정협의회 수시 개최 등에 나선 바 있다. 하지만 이후에도 수능 킬러 문항 폐지, 연구개발(R&D) 예산 축소, 의대 정원 2000명 증원 등에서 당과 사전 소통이 제대로 되지 않은 점이 실책으로 이어졌다는 지적이 제기됐다. 추 원내대표가 최근 “당정협의 없이 설익은 정책이 발표돼 국민 우려와 혼선이 커질 경우, 당도 주저 없이 정부에 대해 강한 비판의 목소리를 낼 것”이라고 강하게 경고한 것 역시 이런 점을 의식한 것으로 관측된다.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가 22일 서울 국회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에서 발언을 하고 있다. 이재문 기자
야당은 이날도 윤석열정부 정책 혼란에 대해 비판을 쏟아냈다.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는 당 최고위원회의에서 바둑 용어인 ‘덜컥수’(깊이 생각하지 않고 결정을 내린 수)에 빗대 “윤석열정권의 정책 집행을 보면 ‘덜컥 정책’이라고밖에 할 수 없는 일이 너무 많다”며 “정권이 국민의 문제, 국가의 문제에 해결을 하는 게 아니라 오히려 문제를 키우고 있다”고 지적했다.

◆만5세 입학·주 69시간 근무제 ‘없던 일로’… ‘고령자 운전면허 제한’도 하루 만에 번복

국가통합인증마크(KC) 없는 해외 제품 직구(직접 구매) 금지 철회, 조건부 운전면허제 대상 ‘고령자’에서 ‘고위험자’로 수정, 금융감독원장의 ‘6월 중 공매도 재개 가능성’ 대통령실 일축….

윤석열정부의 ‘오락가락 정책’이 반복되고 있다.

대통령실 전경. 최상수 기자
22일 정치권에 따르면 윤석열정부는 출범 이후 설익은 정책을 발표했다가 반대 여론이 일자 철회하는 모습으로 비판받아 왔다.

출범 두 달여 만에 교육부가 내놨던 ‘만 5세 초등학교 입학’ 학제 개편안이 학부모와 교육·보육 관련 단체, 전문가의 거센 비판에 휩싸였던 것이 시작이다. 민생과 직결되는 주요 정책인데 충분한 논의나 여론 수렴 없이 발표되면서 역풍을 맞았다. 결국 교육부는 정책 발표 11일 만에 관련 정책을 백지화했고, 박순애 당시 교육부 장관은 취임 34일 만에 사퇴했다.

‘비동의 간음죄’도 부처 간 엇박자를 보여준 사례다. 여성가족부는 지난해 1월26일 법무부와 함께 형법상 강간 구성 요건을 ‘폭행과 협박’에서 ‘동의 여부’로 개정하는 방안을 검토하겠다고 밝혔다. 여가부 발표가 나오자 법무부는 “비동의 간음죄 개정 계획이 없다”며 반박했고, 여당에서도 비판의 목소리가 나왔다. 여가부는 브리핑 9시간 만에 개정 계획이 없다고 발표 내용을 뒤집었다.

지난해 3월에는 ‘주 69시간 근무제’ 논란이 벌어졌다. 고용노동부는 지난 6일 연장근로 관리 단위를 ‘주’에서 ‘월·분기·반기·연’으로 확대하면서 현행 노동시간을 주 69시간까지 늘리는 내용의 근로시간 개편안을 발표했다. 여론이 들끓자 정부와 여당은 ‘일이 많을 때는 주 69시간까지 몰아서 일하고, 적을 때는 충분한 휴식을 취하자’는 취지라고 해명했지만 논란은 계속 커졌다. 이후 윤 대통령이 전면 재검토 의지를 밝히며 사실상 또다시 정책이 철회됐다.

또 여론의 뭇매를 맞은 연구개발(R&D) 예산 삭감, 수능 킬러 문항 폐지 등도 거센 역풍을 불렀다. 이들 정책 모두 공통적으로 도입 과정에서 당정 간 사전 소통 부재와 여론 수렴 부족 등이 문제로 지적됐다. 그동안 뒷수습에 나섰던 여당이 ‘직구 논란’을 계기로 정부 정책에 공개적으로 비판의 목소리를 냈고, 고위당정정책협의회가 정례화되는 등 당정이 정책 협력 강화에 나서면서 향후 정책 혼선을 막을 수 있을지 주목된다.

박지원·유지혜·김승환 기자, 세종=이희경 기자

Copyright © 세계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