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국사 앞 수학여행 성지도 폐허 전락"…경주에 무슨 일이? [더 머니이스트-심형석의 부동산정석]

2024. 5. 23. 06: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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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경닷컴 더 머니이스트
관광단지 개발, 이대로 좋은가?
현행과 같으면…골프장 위한 관광단지만 조성될 수도
‘평창·용평’ 관광단지, 성공 사례에서 해법 찾아야
악용 막되, 관광 특성 맞게 새로운 기준 만들어야
경주 황리단길 일대. / 사진=게티이미지뱅크


국내 관광단지 현황은 어떤 상황일까요. 2023년 6월 기준 문화체육관광부가 고지한 자료에 따르면 전국에 지정된 관광단지는 49개소, 관광지는 224개소입니다.

과거에는 각 지방자치단체의 관광개발공사가 주도해서 개발했습니다. 지방자치단체가 개발한 관광단지의 경우 토지확보, 자금확보, 인허가 등 본격적인 시설 개발 전까지의 속도나 안정성은 민간개발보다 뛰어났습니다. 하지만 자체적으로 운영할 수 있는 관광시설이 거의 없어 조성계획이 승인됐더라도 장기간 빈 땅으로 남아있거나 노후화에 대응하지 못하는 경우가 빈번합니다. 관광시설의 경우에도 지역에 맞게 차별화된 것이 아니라 전국 어디서나 볼 수 있는 관광시설들만 가득합니다.

실제 1997년 조성계획이 수립된 감포해양관광단지는 관광도시 경주에 위치하고 있음에도 장기간 민자유치가 되지 않아 방치됐습니다. 그러다가 최근 관광과 무관한 원자력연구단지로 변경돼 새로 조성 중입니다. 1975년 4월 지정된 국내 대표 관광단지인 보문관광단지의 경우 한때 신혼여행, 수학여행의 성지로 불리웠습니다. 최근 방문해보면 수학여행 성지였던 불국사 앞 숙박업소들은 모두 폐허처럼 방치됐고, 보문호수 인근에서도 어렵지 않게 폐업한 호텔들을 찾을 수 있습니다.

경주보문단지 일대 전경. / 사진=게티이미지뱅크


경주에서 가장 관광객들이 북적거리는 공간은 보문관광단지가 아니라 황리단길처럼 새로 조성된 상업지역입니다. 젊은 관광객들의 경우 숙박 역시도 노후한 관광단지 내 호텔이 아니라 한옥스테이, 풀빌라 등 다양하고 특색 있는 장소를 선호합니다. 이처럼 관광산업은 개발주체의 관점이 아니라 소비자의 관점에서 만들고, 소비자의 변화에 빠르게 대응할 수 있어야 하는 겁니다. 그런에도 우리나라의 관광단지는 아직까지 예전의 법적 잣대만을 들이대고 있어 아쉬울 따름입니다.

최근에 인허가를 추진 중인 다수의 엔지니어링 회사에 따르면 관광단지 지정이 거의 불가능하도록 심의를 매우 까다롭게 한다고 합니다. 문화체육관광부에서 내부 인허가 지침을 수립하고 골프장 면적이 관광단지 전체 면적의 30%를 초과하는 경우는 더욱 그렇다고 합니다.

많은 민간개발업체가 종합관광단지 개발계획을 세워 인허가를 취득한 후 골프장만 운영하고 있습니다. 관련기관에서는 이를 규제할 방안이 없는 것이 사실입니다. 체육시설로 골프장을 개발하는 경우에는 토지를 100% 확보해야 인허가 요건 자체가 성립됩니다. 반면 관광단지는 토지수용 등 개발에 용이한 요소가 많아 골프장을 건설하기 위해 관광단지를 활용할 수 있습니다. 그렇다보니 관광단지에서 골프장만 운영하는 민간개발업체를 규제하기 위한 방안으로 생각됩니다.

하지만 민간개발업체 입장에서 보면 불가피한 선택입니다. 관광시설 등을 개발하는데 많은 비용이 들어가지만 수익을 환수하는데 너무 오랜 시간이 필요합니다. 분양수익 등이 미리 확보되거나 골프장 등 안정적인 수입원이 있어야만 계속 투자가 가능합니다. 민간개발업체에게 공익성만을 강요하고 이익을 창출하는 행위를 특혜로 규정하고 죄악시하는 인식이 남아있는 탓입니다.

평창군의 리조트 전경. / 사진=게티이미지뱅크


평창올림픽이 열리기도 한 ‘평창·용평’ 관광단지는 ㈜용평리조트가 운영하는 민자관광단지입니다. 국내 관광단지 중 최대 규모입니다. 이런 대규모 관광단지도 십 수차례 넘게 변경계획을 수립하며 계속 변화를 주고 있습니다. 주목할만한 것은 변화의 방향입니다. 분양 수익을 창출할 수 있는 다양한 콘도가 계속 개발되며 발생된 분양수익으로 관광시설에 대한 재투자가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분양수익과 신규 관광시설 개발투자를 이어온 ㈜용평리조트는 어려운 경제상황 속에서도 지난해 최대의 실적을 만들었습니다.

덕분에 지역경제도 활황입니다. 횡계지역 주민들은 ‘평창 용평’ 관광단지를 찾는 관광객을 대상으로 관광수입을 창출하거나 ‘평창 용평’에 근무합니다. 최근에는 지역 특산품인 수국차, 황태, 배추 등을 활용해 김치, 김, 베이커리 등 다양한 PB(Private Brand) 상품을 만들고 판매하며 지역주민들과 새로운 상생모델을 만들어가고 있습니다.

물론 문화체육관광부의 정책대로 골프장을 건설하기 위해 관광단지를 이용하는 나쁜 목적을 가진 개발업체의 시장 진입은 막아야 합니다. 그렇다고 지금의 관광단지 관련 법령이나 인허가 방식이 최적화된 것인지는 돌아볼 필요가 있습니다. 과연 관광객을 최대한 유입해 지역을 활성화하고, 고용을 창출하고, 지속가능한 관광단지가 될 것인지 말입니다.

관광단지는 숙박시설지구, 관광휴양지구, 상업시설지구 등 도시계획의 관점에서 조성계획을 승인합니다. 전국 명산이나 온천지구 앞 호텔, 리조트가 폐허가 돼 흉물로 남아있습니다. 관광객의 관점이 아닌 인허가 관점에서 관광단지를 바라보고 있습니다.

경주의 사례처럼 관광객들은 높은 가격을 지불하더라도 개인의 취향에 맞는 특별한 숙박시설에서 최고의 경험을 갖고자 합니다. 이처럼 변화하는 관광 트랜드를 주시할 필요가 있습니다.관광서비스를 제공하는 사업자는 이에 맞춰 계속 변화해야 하고, 이를 위해서는 자본과 정책적 지원이 필요합니다. AI(인공지능)의 시대에는 일자리가 대폭 줄어들 것이라고 합니다. 관광은 국민의 여가시간을 풍요롭게 만드는 중요한 산업이며, 일자리의 보고입니다. 우리나라의 관광정책을 총괄하는 주무부처와 인허가 기관은 과연 이에 맞는 정책을 펼치고 있는지, 현재의 법령이 너무 시대에 뒤떨어진 것은 아닌지 돌아보았으면 합니다.

<한경닷컴 The Moneyist> 심형석 우대빵연구소 소장·美IAU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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