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 “면세점보다 올리브영, 한복 입고 시내 관광” 유커 가고 싼커 온 제주

제주=최효정 기자 2024. 5. 23.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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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라진 中 관광객… 개별여행이 대세
대중교통 타고 올리브영·편의점 찾는 中 MZ
올리브영 1분기 제주 매출 전년 比 2300% 증가
신라면세점 제주는 ‘에루샤’ 모두 철수

지난 18일 제주 시내에 위치한 올리브영 제주제원점이 MZ(1980년대~2000년대 출생) 중국인 관광객들로 북적였다. 다들 바구니에 한가득 케이(K)-뷰티 제품을 담고 매장을 누볐고, 일부는 직원들에게 SNS(사회관계망서비스)에서 보고 온 제품이 어딨는지 찾아달라고 요청하기도 했다.

매장 안은 일반 올리브영과는 다르게 제주 한정판 화장품과 간식 묶음 등 중국인 관광객을 타깃으로 한 제품들이 곳곳에 진열돼 있었다. 올리브영 관계자는 “엔데믹 이후 중국 관광객들 방문이 폭발적으로 증가하고 있다”면서 “올해 제주 지점들의 1분기 매출이 전년 동기 대비 2300%나 늘었다”고 했다.

제주를 찾는 중국인 관광객의 관광·소비 행태가 달라지고 있다. 업체를 끼고 대규모로 정해진 코스로 관광하는 유커(중국인 단체관광객)보다 개별여행객인 싼커가 대다수다. 이들은 SNS를 통해 한국인들이 가는 ‘핫플레이스’를 찾고, 면세점이 아닌 올리브영이나 편의점에서 쇼핑한다. 한국인이 실제로 향유하는 삶의 방식을 체험하고 싶어 하는 것이다.

지난 19일 올리브영 제주제원점을 찾은 중국인 관광객들이 쇼핑 중이다. /최효정 기자

◇한복 입고 사진 찍고 대중교통 타는 싼커들

같은 날 제주 도심 안에 위치한 관덕정 안에는 한복을 빌려 입은 중국인 관광객들이 삼삼오오 정원을 누비며 서로 사진을 찍어주고 있었다. 관덕정은 제주에 현존하는 건물 중 가장 오래된 건물로, 세종 때인 1448년 제주 목사 신숙청이 사졸들을 훈련시키려 세운 곳이다. 바로 인근에는 제주목 관아가 있다.

중국 시먼에서 한국을 찾았다는 칭자오(22)씨는 “3박 4일 자유일정으로 제주에 왔다. 비자도 필요 없고 샤오홍수(중국 SNS)에 정보도 많아 선택했다”며 “한복을 입고 한국 사극에 나오는 것 같이 사진을 찍을 수 있다고 해서 중국인 사이에서 유명하다”고 말했다.

관덕정 인근에서 한복 대여점을 운영하는 김모(40)씨는 “매장을 찾는 손님의 70% 이상이 외국인 관광객”이라며 “한국 사극의 인기로 한복을 빌려 입고 사진을 찍는 것이 필수 코스가 됐다”고 말했다.

과거 중국인 관광객은 단체 중심의 유커와 보따리상(따이궁)이 주를 이뤘다. 하지만 코로나19 팬데믹을 거치며 중국인들의 관광 행태는 ‘소규모화’, ‘개별화’ 추세가 뚜렷해졌다.

문화체육관광부 발표에 따르면 방한 중국 관광객의 동반 인원은 2019년 5.1명에서 2023년 2.1명으로 절반 이상 줄었다. 대부분 단체이던 방문 패턴이 개별로 전환된 것이다. 연령대는 20~30대 젊은 층 비중이 57.9%로 증가한 반면, 50대 이상은 감소했다. 중국의 MZ세대가 국내 관광의 중심축이 된 것이다.

이들은 한류와 SNS에 익숙해 한국 문화를 적극적으로 경험하며 소비한다. 현지 맛집과 선호에 맞는 여행지를 자유롭게 찾아다닌다. 택시나 버스 등 대중교통 이용에도 적극적이다. 공항과 제주 시내에서 접근성이 좋은 용두암이나 제주목관아·관덕정 등의 관광지가 인기 장소로 떠오른 이유기도 하다.

지난 19일 제주 원도심에 위치한 문화유적 관덕정에 중국 관광객들이 한복을 입고 사진을 찍고 있다. /최효정 기자

◇소비 행태 변화에 유통업계 희비 갈려

중국 관광객의 소비 행태 변화로 유통업계도 희비가 갈렸다. 면세업계의 경우 중국인 관광객 수 증가에도 실적이 부진한 상황이다. BC카드 신금융연구소가 발표한 중국 은련카드 소비 데이터 분석 자료를 보면 지난해 1월부터 9월까지 중국인이 면세점에서 카드를 사용한 비중은 35.9%로 2019년 같은 기간 63.1%의 절반 수준으로 줄었다.

제주도 크루즈 관광객들의 면세점 소비 비중도 2019년에 비해 절반가량으로 떨어졌다. 중국 경제가 침체기에 접어들면서 관광객들의 씀씀이가 줄어든 데다 관광·소비 패턴 변화로 고가품을 파는 면세점이 찬 바람을 맞은 것이다. 신라면세점 제주 시내점에서 이른바 에·루·샤(에르메스, 루이비통, 샤넬)로 불리는 3대 명품 매장이 모두 철수했다. 루이비통과 샤넬이 철수한 데 이어 남아있던 에르메스마저 내달 운영을 종료한다.

반면 편의점이나 CJ올리브영 같은 헬스앤드뷰티(H&B) 스토어 매출은 눈에 띄게 늘었다. 올리브영의 지난해 제주도 매출은 전년 대비 130% 증가했다. 올해 1분기만 놓고 보면 전년 동기 대비 2300%나 늘었다. BGF리테일에 따르면 지난해 편의점 CU에서 알리페이·위쳇페이·은련카드 등 중국 카드 결제 금액은 전년 대비 100% 넘게 늘었다.

관광업계에서는 중국인 개별 관광객 증가에 맞춰 젊은 층을 겨냥한 전략 마련이 절실하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대중교통 편의성과 결제 시스템 개선 등이 필요하고, 맞춤 홍보도 필요하다는 것이다.

정민섭 제주관광공사 통합마케팅팀 과장은 “제주와 중국을 잇는 항공과 배편이 늘고 있고 향후에도 정례 운항은 증진될 예정”이라면서 “개별관광객 비중이 매우 높은 편이라 중국 MZ들이 적극 활용하는 샤오홍수에 제주 관광 콘텐츠를 맞춤형으로 송고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올리브영 제주제원점에 진열된 중국인 관광객용 상품들. /최효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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