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명묵의 90년대생 시선] 거대 기획사 중심 ‘아이돌 세계’의 균열

임명묵 대학원생·'K를 생각한다' 저자 2024. 5. 23. 05:00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인터넷 방송 출신의 비주류 걸밴드 QWER의 멜론 3위 돌풍
가상 인간 아이돌 플레이브·24인조 블록체인 그룹도 활약
막대한 자본으로 정형화된 K팝, 하위 문화의 새 자극 주목
그래픽=이철원

대중음악 팬들 사이에서 5월은 쏠쏠한 재미를 주는 시기다. 중간고사가 끝나고 날씨가 본격적으로 더워지기 전인 이 기간에 전국 대학가가 축제 시즌에 돌입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올해 여러 대학가 축제 라인업을 보면 흥미로운 이름이 눈에 띈다. 유명 유튜버 김계란이 설립한 타마고 프로덕션 소속의 걸밴드 QWER이다. 트위치 스트리머인 쵸단과 마젠타, 틱톡에서 활동한 히나, 일본 아이돌 출신인 시연으로 구성된 4인조 걸밴드이다. QWER은 4월 24일 남서울대 공연을 시작으로 5월에는 본격적으로 대학가 축제 무대에 오르고 있다.

인기 밴드의 대학가 축제 등장이 딱히 주목할 이유가 있는 사건은 아닐 수도 있다. 하지만 QWER의 역사를 아는 이들이라면 이것이 인상적인 성공 신화임에 동의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QWER이 4월에 발표한 노래 고민중독은 한국 주요 음원 차트인 멜론 TOP100에서 3위까지 차지하면서 그야말로 돌풍을 일으켰다. 여러 대학에서 아직 자체 인지도가 그리 높은 편은 아닌 QWER을 초청하기 시작한 것도 대중적인 음원 인기에 기반한 바가 크다. 설령 QWER이 누구인지 몰라도, 매장의 배경음악으로라도 들으며 ‘아, 이 노래!’라고 떠올릴 수 있는 위상은 획득했다는 의미이기 때문이다.

사실 한국 음원 차트의 고착화는 이미 상당했다. 멜론 TOP100 상위권은 ‘4대 기획사’라고 불리는 대형 기획사가 막대한 자본을 투입한 아이돌 그룹이나, 중년 이상 세대의 막강한 팬덤을 지닌 인기 트로트 가수로 줄세우기가 끝난 것이나 다름없었다. 인지도가 낮은 인터넷 방송인 위주의 소규모 기획 걸밴드가 이 강력한 요새를 돌파한 일은 그 때문에 꽤 이례적인 일이다.

하지만 분명히 단서는 있었다. ‘인터넷 방송’과 ‘걸밴드’라는 요소다. 2년간의 코로나 팬데믹으로 인해 수많은 사람이 인터넷 세계에 더 밀착하게 되었다. 그 결과 안 그래도 하락세이던 지상파 방송국의 주도권이 더욱 약화되고, 다종다양한 수요에 맞춘 인터넷 방송과 OTT 플랫폼의 세력이 확장되었다. 그 결과 정말로 ‘소수’에 지나지 않았던 특정 인터넷 방송인의 팬들 규모가 커졌고, 그들은 대세에 영향을 끼칠 수도 있는 ‘무시할 수 없는 소수’로 성장했다. 같은 흐름으로 일본 문화의 저변도 훨씬 넓어졌다. 넷플릭스 등의 OTT는 애니메이션 시청에 대한 접근성을 크게 개선했고, ‘NO 재팬’의 반발 작용인지는 몰라도 Z세대 사이에서 한일 양국 간 문화교류는 오히려 더욱 커지면서 요아소비, 이마세 등으로 대표되는 J팝 한국 시장 진출도 본격화되었다. 이런 역사가 누적된 이후, 인기 인터넷 방송인이 주축이 되어 일본풍 소프트록 음악을 들고나오자 누구도 예상치 못한 수준으로 폭발적인 반응이 나타난 것이다.

아이돌 문화의 시선에서 보자면 QWER의 성공에는 역설적인 성격도 있다. K팝이 세계 시장을 상대로 하는 자본력 경쟁이 되면서 아이돌 문화가 지나치게 경직되고 정형화되었다는 여론도 많다. 그렇기에 연습생이 아닌 인터넷 방송인 출신에, 댄스가 아니라 밴드를 내건 QWER이 신선하게 다가온 것이다. 하지만 동시에 QWER도 광범위한 아이돌 문화의 문법을 따르고 있고, 실제 아이돌들과 챌린지를 같이 진행하며 그들과 같은 생태계에 있음을 보이기도 했다.

QWER의 성공은 모든 문화는 새로운 하위문화라는 프런티어에서 활력을 공급받아 작동한다는 생리를 보여준 것일지도 모른다. K팝 문화는 본래 하위문화였지만 세력을 키우고 자본을 끌어오며 주류 문화로 올라섰다. 그러나 K팝이 정형화되자 이제는 새로운 하위문화에서 신선한 자극이 등장하며 업계의 흐름에 영향을 끼치고 있다. ‘가상 인간’으로 구성된 아이돌 그룹 플레이브가 MBC 음악중심에서 1위를 차지한 사실, 아이돌 그룹 운영에 블록체인을 결합한, 무려 ‘24인조 그룹’으로 신선한 실험을 하고 있는 트리플S가 최근 받은 높은 평가를 보아도 이곳저곳에서 다양한 신호들이 관찰된다. 향후 트렌드를 알기 위해서는 K팝 너머의 K팝과 아이돌 너머의 아이돌이 등장할, 예상치 못한 프런티어에 주목해야 하는 이유다.

임명묵 대학원생·'K를 생각한다' 저자

Copyright © 조선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