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썰] '예스 키즈존' 사장님의 세상보기 "보편적 선의를 믿습니다"

신진 기자 2024. 5. 23. 05:00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서울시 '키즈 오케이존' 업주들 만나보니
혜택 적고 책임 크지만 "사람 사는 곳에 아이 있는 건 당연"
부모, 업주 서로 예의 지키는 '기본적 배려' 필요
〈사진=JTBC 보도 캡처〉

서울 서대문구 홍은동엔 한 신혼부부가 운영하는 식당이 있습니다. 오리탕, 오리 주물럭 등을 요리합니다. 인근 홍제천에서 산책을 하거나 백련산에서 등산을 하고 내려온 어르신들의 발길이 자주 닿습니다. 평일엔 근처 구청 직원들이 단골입니다. 그런데 주말엔 풍경이 확 달라집니다. 어린아이를 동반한 가족들이 많이 옵니다.

왜 그런가 봤더니 꼬마 손님을 다루는 솜씨가 예사롭지 않습니다. 오리 모양의 헝겊 냅킨을 무릎에 올려주는 것은 기본. 칭얼대는 아이에겐 노란 포장지에 담긴 오리 모양 젤리를 건넵니다. 식당을 운영하는 장경민ㆍ정연수 부부는 “아이들이 선물 받은 것처럼 좋아하면 저희도 마음이 덩달아 좋다”라고 말했습니다.

이 식당은 지난해 서울시 '키즈 오케이존'에 선정됐습니다. 어린이를 손님으로 받지 않는 '노 키즈존'과 정확히 반대되는 개념입니다. 아이를 동반한 가족을 환영하고, 편안한 환경을 제공하는 곳을 뜻합니다. 구청 직원이 주인 부부의 노하우를 눈여겨보고 있다가 제안했고, 부부는 “아이를 환영하는 일은 원래 해오던 것이”이라며 수락했다고 합니다.

〈사진=JTBC 보도 캡처〉

'서울 키즈 오케이존'에 지정돼도 별다른 혜택은 없습니다. 서울시에서 선정 직후 30만 원 정도의 지원금을 주지만 아기의자나 식기구를 소량 사들일 정도의 보탬이 될 뿐입니다. 서울시는 현재 600여 개인 '서울 키즈 오케이존'을 앞으로 2년 동안 1000개 까지 늘릴 예정인데, 일회성이 아닌 꾸준한 지원은 아직 구체적으로 계획되어 있지 않습니다.

어떻게 보면 혜택보다 책임이 더 큰 겁니다. 아이를 동반한 손님은 일반 손님보다 몇 배 더 신경을 써야 하기 때문입니다. 오케이존 선정 매장들은 “그동안 선의로 서비스를 제공했다 하더라도, 가게 문에 공식적으로 노란 '오케이존' 스티커를 붙이고부터는 꽤나 책임감이 묵직해진다”라고 털어놨습니다.

특히 안전사고에 대한 위험 때문에 긴장도가 높습니다. 장경민씨도 “불판이 있다보니 화상을 입을 수 있고, 아이가 넘어질 수도 있어 안전 사고에 대한 부담이 항시 있는 것은 사실”이라고 했습니다.

〈사진=JTBC 보도 캡처〉

하지만 장씨 부부는 아이가 가게 문을 열고 들어오면 반갑고 행복하다고 했습니다. 이유를 물으니 이렇게 말했습니다.

" 사람 사는 곳에 아이가 없을 수 없잖아요. 아이를 환영하면 함께 오시는 부모님, 할머니와 할아버지도 웃으셔요. 따뜻한 분위기가 자연스럽게 형성됩니다. 아이가 있으면 아무래도 한번 더 웃게 되니까요. 그렇게 서로 즐겁게 밥 먹는 식당이 되는 것이 좋습니다. "

주말엔 유치원 교사인 장씨의 어머니도 식당 운영을 돕습니다. 아이를 워낙 좋아하는 장씨의 어머니는 손님이 편히 식사를 할 수 있도록 갓난 아이를 대신 안고 달랜 적도 있다고 합니다. 아이 보느라 밥 한 끼 사람답게 먹기 어려운 어린 부모들의 처지를 이해하지 못했다면, 진심어린 마음을 담지 않았다면 하기 어려운 일입니다.

〈사진=JTBC 보도 캡처〉

서울 망원동에서 프랜차이즈 카페를 하고 있는 한 사장님도 비슷한 얘기를 했습니다. 역시 '서울 키즈 오케이존'에 지정된 곳입니다. '대단한 일을 하는 게 아니다'라며 대면 인터뷰를 극구 거부한 이 여성은 기자와의 전화 통화에서 “애들이 사고 좀 치고 시끄럽다고 갈 데가 없다는 게 너무 안타깝다”라며 한숨을 쉬었습니다. 그러면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 엄마들이 솔직히 집에 갇혀 있다가 잠깐 나와서 커피 한 잔 하는 게 '꿀'이잖아요. 저도 주부라서 알거든요. 제가 카페에 상주하며 관리하고, 엄마들도 상식을 지키며 케어 하면 옆 손님에게 불편 주지 않습니다. 안전사고 예방을 위해 컵과 그릇은 깨지지 않는 소재로 바꾸었어요. "

천방지축 어린 아이를 둔 부모들도 한 번쯤은 분위기 좋은 카페에 가고 싶고, 가끔은 이글거리는 불판에 고기를 구워 먹고 싶습니다. 하지만 자칫 '민폐 부모' '맘충'으로 손가락질당하지 않을까. 세간의 시선이 두려워 외출할 마음조차 쉽게 먹기 힘든 날 선 사회입니다. 그래서 이런 사장님들의 마음은 부모의 마음을 녹입니다. 가게 문에 붙은 노란 스티커는 그 자체로 위안이 됩니다.

다만 사장님들의 말 속엔 뼈가 있다는 점도 짚고 넘어가야 합니다. 전제가 되어야 할 것은, 아주 기본적인 서로 간의 배려라는 것 말입니다. 아이를 동반한 가족은 좀 더 세심히 주의를 기울이고, 사장님들도 아이들을 덮어놓고 불청객으로만 바라보지 않는 것. 당연하지만 쉽지 않은 예의와 배려를 다시 한번 생각하게 합니다.

홍은동 장경민씨가 강조한 부분도 똑같았습니다. 그가 했던 말이 기억에 오래 남습니다.

" 서로가 조금씩만 배려하고 양해를 구하면 사고는 미연에 방지할 수 있다고 봐요. 저는 그런 '보편적 선의'를 믿습니다. "

※관련 기사
'노 키즈존' 없도록…업주 부담 덜어주는 보험 나온다
https://mnews.jtbc.co.kr/News/Article.aspx?news_id=NB12197230&prog_id=PR10000403&strdate=

Copyright © JTBC.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