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기술력+필리핀 인력… 고기능성 등산가방, 세계 점유율 50%
30년전 한국형 공장, 필리핀에 이식… 기술력 바탕 글로벌 가방시장 공략
脫중국 美유명 브랜드 주문 몰려… 작년 매출 2161억, 3년새 2배로
이들이 만드는 제품은 미국 아웃도어 브랜드 그레고리가 2026년 출시할 고(高)기능성 등산 가방이다. 직원들은 10여 명이 하나의 네모꼴 작업 단위인 ‘셀(Cell)’을 이뤄 작업하고 있었다. 한 셀의 직원이 재봉틀로 가방 형태를 찍어내면 그 옆에서 가방끈, 또 다른 곳에서 가방 밑판을 만들어 공급했다. 그런 셀들이 수십 줄씩 공장을 채웠다. 박기정 동인기연 부사장은 “공장이라고 하면 흔히 컨베이어 벨트를 떠올리지만 수많은 종류의 가방을 생산하는 우리에겐 셀 방식이 적합했다”며 “30년 전 한국형 공장을 필리핀에 이식한 뒤 여기에 맞는 방법을 찾아낸 것”이라고 말했다.
● 필리핀서 부활한 한국 봉제
필리핀, 인도, 태국, 인도네시아 등 중국을 제외한 ‘아시아 뉴7’에 제조 공장을 만드는 것은 대기업들의 전유물이 아니다. 오히려 한국에서 성장 한계에 부딪힌 중견 중소기업들이 적극 아시아 뉴7 진출에 나서고 있다. 대표적인 경우가 동인기연이다.
초기엔 시행착오가 적지 않았다. 가방을 만드는 봉제업 이해도가 높지 않았기 때문이다. 박 부사장은 “공장을 키울 때마다 한국에서 관리 직원을 필리핀에 보내 작업 방식을 체계화했다”고 전했다. 지금도 한국 직원 34명이 필리핀에 상주한다. 한국식 공장 운영과 필리핀 근로자의 결합이 시너지를 내고 있다. 동인기연은 2003년 미군에 가방을 공급하면서 시장 신뢰를 얻었다. 이후 캐나다 아크테릭스, 미국 블랙다이아몬드 등 글로벌 아웃도어 브랜드에 제품을 공급하기 시작했다.
동인기연은 기자가 찾은 선버드 공장에서만 연간 3500만 달러(약 476억 원)어치의 고기능성 등산 가방을 만들어 공급한다. 동인기연 필리핀 공장 전체 생산 능력은 연간 1억8300만 달러(약 2489억 원)에 달한다. 아웃도어 업계에서는 동인기연의 고기능성 등산가방 세계시장 점유율을 40~50%로 추산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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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원 10명씩 ‘셀’ 단위로 작업 필리핀 마리벨레스의 동인기연 공장에서 현지 근로자들이 등산 가방을 만들고 있다. 동인기연은 현지 직원을 1만 명 넘게 고용하는 등 필리핀 정착에 성공한 대표적인 한국 기업으로 꼽힌다. 동인기연 제공 |
최근 동인기연의 사업 확장 배경에 미중 무역 갈등이 깔려 있다. 중국에 일감을 맡기던 미국 기업들은 새로운 생산기지를 찾고 있다. 동인기연은 최근 등산가방 외에 골프가방, 여행용 가방 등 생산을 늘리는 중이다. 모두 미국 시장에서 중국산 제품의 점유율이 높은 품목들이다. 김수현 DS투자증권 리서치센터장은 “동인기연의 최대 강점은 제조업의 탈중국화가 심화되는 상황에서 필리핀에 미리 생산 기지를 구축한 것”이라고 분석했다.
● ‘아이언맨 작업복’ 만드는 기술력
동인기연 매출은 2020년 1151억 원에서 지난해 2161억 원으로 3년 만에 2배 가까이로 늘었다. 그 이유가 인건비가 싼 필리핀에 빨리 진출했다는 것 때문일까. 동인기연 측은 “절반만 맞는 얘기”라고 답한다. 다른 절반의 이유로는 ‘기술 개발’을 꼽는다.
델디아 프로젝트는 다른 가방을 만들고 남은 원단을 여러 개 덧대 세상에서 하나뿐인 가방을 만드는 사업이다. 동인기연이 먼저 구상해 코토팍시에 제안했다. 독창적이고 친환경적인 제품이라 미국에서 매출이 빠르게 늘고 있다. 동인기연 관계자는 “벽에 걸린 제품은 코토팍시 디자이너가 와서 ‘이런 가방을 만들어 달라’고 요청할 때마다 만든 샘플”이라며 “새로운 샘플을 반나절 만에 만들 수 있어 글로벌 브랜드들이 우리를 찾는다”고 말했다.
마리벨레스=박재명 기자 jmpark@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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