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읽기] 지옥에서 국가명승으로

송영신 변호사·법무법인 다빈치 2024. 5. 23. 03: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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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영신 변호사·법무법인 다빈치

지난 칼럼(온천 찬가)에서 ‘가까운 온천을 찾아 몸과 마음의 힐링과 재충전을 궁리해본다’고 마무리했던 필자는 내친김에 온천의 나라 일본으로 향했다. 50여년 앞만 보고 달려온 나 스스로에게 쉼표를 찍고, 지난 삶의 성찰과 앞으로 삶의 희망을 품고자 보름간 온천을 찾아 규슈(九州)를 일주했다.

가장 먼저 찾은 곳은 일본에서 온천의 원천수와 용출량 모두 1위를 차지하고 있는 오이타현이었다. 그 중에서 단연 으뜸인 벳푸(別府)였다. 인천에서 오이타로 가는 비행기에서 우연히 만나 친구가 된 환한 미소의 Serom 씨는 벳푸에 대해 꽤 많이 알고 있었고, 감사하게도 반나절 필자에게 흔쾌히 가이드를 해주었다.

그녀가 안내한 곳은 벳푸8탕(벳푸·하마와키·간카이지·호리타·묘반·간나와·시바세키·카메가와 온천) 중 간나와 온천에 있는 ‘지옥 순례(지고쿠 메구리, 地獄めぐり)’였다. 총 7개의 지옥이 있는 이곳은 일본 최초의 지방 지리서인 ‘풍토기(風土記·713년)’ 중 ‘분고(豊後) 지방 풍토기’에 뜨거운 수증기와 열탕 등이 분출되고 있었음이 기록되어 있을 정도로, 사람이 도저히 접근할 수 없는 불길한 토지로 인식되어 왔다. 이러한 이유로 ‘지옥’이라고 불리게 되었다고 한다. ‘풍토기(風土記)’라는 이름을 살펴보면, ‘사물을 양육해 공(功)을 세우는 것’을 풍(風)이라 하고, ‘앉아서 만물을 탄생시키는 것’을 토(土)라 하여 명명되었다고 한다. 너무 낭만적이지 않은가.

아무튼, 첫발을 디딘 지옥은 ‘혈지 지옥(치노이케 지고쿠, 血の池 地獄)’였다. 약 78도의 선홍빛의 온천인데, 흡사 피를 보는 듯했다. 그 붉은 빛이 어찌나 선명한지 섬뜩할 정도였고 과연 지옥을 연상케 했다. 다음은 ‘용권 지옥(타츠마키 지고쿠, 龍卷 地獄)’이었다. 토네이도 지옥이라고도 불리는데, 일정한 시간 간격으로 지하에서 약 150도의 온천수가 한 곳에 모였다가 압력에 의해 약 100도의 온천수가 분출된다. 미국 등지에서도 간헐온천은 있지만, 여기 용권 지옥은 온천수를 뿜어내는 시간이 길고 그 간격이 짧아 더욱 유명하다. 그 다음 머물렀던 곳은 ‘바다 지옥(우미 지고쿠, 海 地獄)’인데, 코발트색의 바다 같아 보였다. 영롱한 색이 너무 아름다고 신비롭워 지옥이 아니라 천당이라고 불러야 하지 않을까 싶었다. 끝으로 간 곳은 ‘승려 지옥(보즈 지고쿠, 坊主 地獄)’였다. 이곳은 1498년 탄생했다. 원래 절이 있던 곳이었는데, 갑자기 폭발이 일어나 절은 온데간데없고 많은 스님이 목숨을 잃었다고 한다. 당시 폭발 장소는 작은 분화구처럼 승려 지옥의 가장 안쪽에 위치해있다. 그런데 폭발 이후 약 90도 넘는 진흙이 땅 속에서 끓어오르는데 그 모습이 마치 삭발한 스님들의 머리처럼 보여 절터이기도 한 이곳을 승려 지옥이라고 부르기 시작했다고 한다.

폭발 당시를 머릿속으로 그려보았다. 너무나 참혹했을 터! 이뿐이랴. 승려 지옥뿐만 아니라 다른 지옥들 역시 사람들이 농사짓다가 갑자기 뜨거운 열탕이 분출되고 땅이 울렁울렁 꿈틀대고 뜨거운 수증기가 뿜어져 나와서 그들 삶의 터전을 잃고 접근할 수 없는 불길한 곳으로 전락한, 말 그대로 ‘지옥’이었다. 그런데 지금 그곳은 ‘사람의 노력으로’ 일본의 국가명승 또는 오이타현 천연기념물로 지정을 받고 급기야 세계 각국의 사람들이 찾아오는 온천 명소가 되었다.

노자의 ‘도덕경’ 제5장에는 ‘천지불인(天地不仁)’이라는 말이 있다. 하늘과 땅은 인자하지 않다는 뜻이다. 지옥 온천 그 자체는 결코 인자하지 않았다. 하지만, 접근조차 꺼려하던 그 불길한 곳을 세계 사람들이 찾아오도록 만든 것은 바로 ‘사람’이다. ‘불행에는 반드시 그와 동등한 가치가 감추어져 있다’는 말이 있다. 불행을 대면하는 처연한 자세, 그 불행을 성장과 성숙의 디딤돌로 삼은 신념, 이를 통해 삶의 무게를 견디고 우뚝 선 기특한 인간의 모습에 찬사를 보낸다.


1956년 ‘긴 님(お吟さま)’으로 나오키 상을 수상한 곤 도코(今東光)는 여기 지옥을 이렇게 찬송했다. ‘인간은 세상을 살아가면서 한 번은 지옥을 경험하게 되면서 자기 자신을 반성하고 삶에 대해 생각하기에 벳푸의 지옥을 눈으로 직접 볼 것을 권한다. 지옥을 빠져나와 되살아난 인간이야말로 진짜 인간이기 때문이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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