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영리에도 기업가정신이 필요합니다"

김시원 TheButter 기자 2024. 5. 23. 00: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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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대성 대한사회복지회장 인터뷰

명품 옷을 입은 열세 살 유관순 초상화가 대한사회복지회 회장실에 걸려 있다. 강대성(66) 회장은 “팝아티스트 ‘배드보스’에게 기부받은 작품”이라고 말했다.

“배드보스는 지난해 대한사회복지회 나눔대사로 위촉됐어요. 덕혜옹주, 도산 안창호 등 위인의 초상화를 명품 로고와 보석으로 장식하는 작가로 유명하죠. 작품 판매 수익금을 기부하기도 하고 발달장애인 작가들과 공동 작업을 하기도 합니다. 아, 요새 ‘뉴진스님’으로 핫한 개그맨 윤성호 씨도 저희 나눔대사예요(웃음).”

대한사회복지회의 분위기가 달라졌다. 강대성 회장은 “70주년을 맞은 유서 깊은 단체에 혁신을 한 스푼 더했다”며 웃었다. “사회복지가 올드하다는건 편견입니다. 높은 전문성을 바탕으로 사회문제를 발굴, 분석, 해결하는 사람들이 여기 있어요. 대한사회복지회는 지금 ‘기업가정신’을 가진 임팩트 조직으로 거듭나는 중입니다.”

지난달 서울 역삼동에 있는 대한사회복지회 회장실에서 만난 강대성 회장은 “사회복지와 비영리에도 ‘기업가정신’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이신영 영상미디어 기자

돈 버는 비영리

-’힙’한 그림들을 보고 나니 대한사회복지회가 더 궁금해집니다.

“작년 1월 16대 회장에 취임하고 명함을 만들어 지인들에게 돌렸더니 가장 많이 하는 질문이 두 가지였어요. 정부산하기관입니까? 사회복지사들에게 도움을 주는 곳입니까? 전혀 다르게 알고 있더군요(웃음). 대한사회복지회는 영아원부터 노인복지관까지 생애주기 전체를 커버하는 민간 사회복지법인이에요.”

-역사가 이렇게 오래된 줄 몰랐어요.

“1954년 정부가 전쟁고아들을 위해 설립한 입양기관으로 출발했어요. 홀트보다도 1년 앞섰죠. 지금은 입양 업무도 하지만 청소년, 자립준비청년, 저소득 한부모가정 등 다양한 이슈를 다루면서 27개의 산하시설을운영하고 있어요.”

-입양 사업이 내년에 정부로 넘어간다고 들었어요. 여러모로 변화의 시기네요.

“작년에 와서 보니 대한사회복지회 1층에 병원이 있었어요. 예전에는 입양 업무 때문에 병원이 꼭 있어야 했는데 이젠 법이 바뀌어서 병원이 없어도 됩니다. 병원에서 매년 7000~8000만 원 적자가 생기길래 과감히 접고 1층 전체를 임대줬어요. 최근에 3층도 통으로 임대를 줬습니다. 자산 효율화를 통해 고유목적 사업에 쓸 수 있는 수익이 오히려 늘었죠. 우리가 정말 잘할 수 있는 게 뭔지 들여다보면서 선택과 집중을 하려고 해요.”

-어떤 사업을 염두해 두고 있나요.

“저출산, 초고령 시대에 맞춰 사업 영역을 고민하고 있어요. 특히 고령자와 장애인의 일자리 창출에 관심이 많아요. 산하시설 중에 ‘고양시니어클럽’이라는 곳이 있는데 여기가 무척 재밌습니다. 노인복지관인데 사회적기업처럼 돈을 벌어요. ‘행주농가’라는 이름으로 어르신들이 직접 들기름, 참기름, 볶음참깨를 만들어 판매하는데 연 매출이 2억 원이 넘어요. 양장점이나 수선일을 했던 어르신들이 아기옷이나 앞치마를 만들어 파는 ‘할머니와 재봉틀’ 사업도 잘된다고 해요.”

-어르신들 반응은요.

“너무 좋아하시죠. 본인이 일한 만큼 수익 쉐어를 하니까요. 고양에서 만난 한 어르신이 ‘일거리가 없으면 건강이 더 안 좋아진다. 출근할 곳이 있어서 행복하다’고 말씀하시는 걸 듣고 역시 일자리를 만드는 게 최고의 사회적가치 창출이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전형적인 사회복지시설과는 다른 모습이네요.

“그렇죠. 수익 사업을 하면서 스스로 자립하는 구조를 만들고 있으니까요. 사회복지나 비영리에도 이런 게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어요.”

임팩트로 말한다

강대성 회장은 영리기업에서 30년(SK에너지 상무, SK네트웍스 전무), 사회적경제에서 5년(행복나래 대표이사)간 근무했다. 대한사회복지회에 오기 전 6년간은 비영리(굿피플 상임이사)에서 일했다.

-사회복지사 자격증이 있다고 들었어요.

“네, 저도 사회복지사예요. 사회적기업인 행복나래 대표를 맡으면서 사회복지를 공부하기 시작했고 석박사를 밟았습니다. 영리에서 오래 근무했지만 사회복지의 중요성이나 사회복지사라는 직업의 전문성에 대해 누구보다 잘 알고 있어요.”

-가장 인상적이었던 사회복지 현장이 있었다면요.

“산하시설 중에 대구에 있는 ‘늘사랑청소년센터’가 기억에 남아요. 범죄를 저지른 뒤 6호 처분을 받은 여학생 30여 명이 모여 지내는 곳이었어요. 그런데 아이들의 표정이 그렇게 밝을 수가 없어요. 그림도 잘 그리고 춤도 잘 추고 검정고시를 치면 100% 합격이라고 해요. 센터장님을 비롯한 어른들이 아이들을 잘 보살핀 덕분이죠. 퇴소한 아이에게 ‘앞으로 어떤 일을 하고 싶어?’하고 물었더니 ‘센터 아이들에게 동기부여를 하고 용기를 주는 일을 하고 싶다’고 했어요. 감동이죠.”

-아이들의 삶을 실제로 변화시킨 좋은 사례네요.

“전통적인 사회복지나 비영리단체는 대게 투입(input)과 산출(output)에 대해 이야기해요. 저는 직원들에게 ‘1억 원으로 어려운 이웃 100명을 도왔다’는 식의 아웃풋은 중요하지 않다고 말합니다. 실제로 어떤 변화를 일으켰는지, 즉 소셜임팩트에 대해 이야기하라고 해요. 늘사랑청소년센터 사례처럼 임팩트 있는 사업들을 더 늘려가려고 합니다.”

대한사회복지회는 소상공인들이 매출액의 일부를 매월 어려운 이웃에 후원하는 ‘We대한 가게’, 청소년을 기부하는 시민으로 성장시키기 위한 ‘We대한 학생기부’, 저소득층 여학생들에게 생리대 키트를 기부하는 ‘We대한 상자’ 캠페인 등 취약계층을 위한 다양한 모금을 펼치고 있다.

“최근에 저희 직원들이 처음으로 ‘임팩트 보고서’라는 걸 만들었어요.깜짝 놀랐어요. 정말 잘 만들었더라고요. 올해 산하시설들을 돌면서 계속 했던 말이 ‘기업가정신으로 일하자’ 였어요.사회문제가 복잡해지고 AI와 기술이 빠른 속도로 발달하면서 비영리와 사회복지도 변화의 흐름 한가운데 있습니다. 위기 속에서 기회를 찾고 자원을 최적화해 헤쳐 나갈 방법을 찾아야 해요. 도전하고 실패하고 또 도전하면서 방법을 찾는 ‘기업가정신’이 비영리에 필요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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