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부금 거부의 역사

문일요 TheButter 기자 2024. 5. 23. 00: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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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9년 다일복지재단(現 다일공동체)은 김영삼 전 대통령의 차남 김현철씨가 기부한 5억원 가운데 100만원만 받고 나머지 4억9900만원은 반환했다. 불법 정치자금 수수 혐의로 재판을 받던 김씨는 비자금으로 지목된 70억원을 헌납하겠다는 의사를 밝혔었다. 그런데 당초 헌납을 약속한 70억원에서 벌금, 추징금, 세금을 제외한 26억원을 여러 비영리단체에 나눠 냈다. 재단은 성명서를 통해 “대다수 사회복지기관과 고귀한 자원봉사자들을 목적이나 수단으로 쓰지 말기 바란다”고 지적했다.

비영리 모금단체가 거액의 기부금을 거부하는 건 큰 용기가 필요하다. 순수성의 의심되는 기부금을 받자니 여론이 나빠지고, 안 받자니 재정이 아쉽다. 한 번 정한 원칙을 고수하지 못하면 훗날 돈을 가려 받는다는 비난에 직면할 수도 있다. 쉽지 않은 결정이지만 대부분의 비영리단체들은 국민 정서를 우선했다. 기부하고 싶다고 해서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건 아니라는 뜻이다.

기부금 전달 의사를 세 번 연속 퇴짜 맞은 사례도 있다. 2020년 3월 신천지는 사회복지공동모금회에 120억원을 입금했다가 당일 반환당했다. 코로나19의 전국 확산의 온상으로 비난받자 여론 반전을 위해 ‘120억원 기부 카드’를 꺼내 든 것이라는 관측 때문이다. 신천지의 120억 기부금은 전국재해구호협회로 갔다가 거절 당했고, 대한적십자에서 전달하려다 이 역시 무산됐다. 코로나 당시 삼성그룹은 300억원, 현대차·SK·LG는 50억원씩 기부한 것과 비교하면 어마어마한 규모다.

국민 정서가 고액의 기부금보다 무서운 건 외국도 마찬가지다. 2019년 미국 메트로폴리탄박물관, 구겐하임미술관, 프랑스 루브르박물관은 세계 미술계의 기부 큰 손인 새클러 가문의 기부금을 줄줄이 거부했다. 새클러 가문 소유의 제약사 퍼듀파머가 마약성 진통제를 과잉 유통시켜 부를 축적했다는 논란에 휩싸이면서다. 퍼듀파머가 만든 진통제로 미국에서만 50만명이 목숨을 잃은 것으로 추정된다. 지난해에는 영국의 국립초상화갤러리가 130만 달러(약 17억원)의 기부금을 거부하면서 ‘나쁜 돈은 거부한다’는 대열에 합류했다.

“거절할 수밖에 없었다.” 최근 국내 비영리단체 희망조약돌은 가수 김호중의 팬클럽이 전달한 기부금 전액을 반환했다. 음주 접촉 사고를 내고 도주한 혐의를 받는 김호중과 관련된 기부금을 수령하는 것이 곤란하다는 입장이다. 김호중의 팬클럽이 기부한 금액은 50만원이었다. 사회적 물의를 일으킨 당사자가 여론 반전을 꾀한 행동은 아니지만 결과적으로는 안 하느니만 못한 기부가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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