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애인 근로자, 이직을 꿈꾸다

최지은 TheButter 기자 2024. 5. 23. 00: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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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달장애인 김우상(가명, 23)씨가 경기 화성 씨엘씨컴퍼니에서 마스크 포장 작업을 하고 있다./한국장애인고용공단 제공

“월급에서 80만원을 저축해요. 나머지는 부모님 용돈 드리고, 핸드폰 요금도 내고, 맛있는 것도 사 먹어요. 돈 모아서 언젠간 제 이름으로 된 아파트를 갖고 싶어요.”

중증 발달장애인 김우상(가명, 23)씨에게 삶의 목표가 생긴 건 작년 1월. 전 직장을 떠나 지금의 회사로 옮기면서다. 주 40시간을 일해도 월급 90만원을 받던 과거와 달리 지금은 월 200만원을 번다.

고등학교를 갓 졸업하고 입사한 첫 직장은 경기 화성에 있는 사단법인 한국장애인협회 생산시설이었다. 입사 초기 우상씨는 일에 대한 열의가 크지 않았다. 돈을 왜 벌어야 하는지, 왜 출근을 매일 해야 하는지 등에 대해 고민해 본 적이 없었다. 그런 우상씨가 커리어 욕심을 내기 시작한 건 한국장애인고용공단에서 진행하는 ‘근로장애인 전환지원 사업’에 참여하면서다. 우상씨 곁에서 업무와 직장생활 적응을 돕는 전담 인력도 생겼다. 업무상 잔실수가 줄면서 성취감도 처음 맛봤다. 직원들과의 관계도 더욱 좋아졌다. 덕분에 우상씨는 첫 직장에서 1년9개월 동안 근속을 했다.

지금은 마스크 제조 기업인 씨엘씨컴퍼니에서 일한다. 마스크를 5장씩 비닐에 넣고 열을 가해 봉합하는 작업을 한다. 추희정 씨엘씨컴퍼니 반장은 “우상씨는 오전 8시에 업무 시작인데 6시 50분에 출근할 정도로 성실하다”며 “손이 유독 빨라서 정해진 물량을 불량 없이 납품하는 데도 큰 도움이 된다”고 말했다.

한국장애인고용공단은 근로장애인 전환지원 사업을 통해 최저임금을 보장받지 못하는 최중증 장애인들에게 양질의 일자리를 얻도록 지원한다. 최저임금법 제7조에서는 정신장애나 신체장애로 근로 능력이 현저히 낮은 경우에는 사업주가 고용노동부 장관의 인가를 받아 최저임금 적용을 제외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다. 이 법안에 따라 최저임금 적용을 받지 못하는 장애인 근로자는 2022년 기준 약 1만명이다. 이 중 대부분은 장애인 특수시설인 직업재활시설에서 일한다.

중증장애인 최저임금 적용 제외에 대해서는 장애인의 노동기본권을 침해한다는 비판이 꾸준히 제기돼 왔다. 고용노동부와 보건복지부, 장애인 단체 관계자들은 2019년 문제해결을 위한 태스크포스(TF)를 구성했다. 이듬해 ‘직업재활시설 저임금 장애인 노동자 지원 방안’을 발표하고, 근로장애인 전환지원 사업을 추진했다. 근로 장애인의 업무 능력과 사회성 향상을 지원해 일반 사업체에서도 비장애인과 동등하게 일할 수 있는 역량을 갖추도록 하는 것이 최종 목표다.

지원은 ▲전환 준비 ▲취업 ▲취업 후 고용안정 등 3단계로 진행된다. 전환준비 과정에서는 장애인 근로자가 업무와 사회생활의 기초를 익힐 수 있도록 직무지도원을 통한 밀착 지원이 이뤄진다. 직무지도원은 담당하는 장애인 근로자를 위한 업무 매뉴얼을 만들어 개별 교육을 진행하기도 하고, 업무가 손에 익을 때까지 반복 훈련을 실시하기도 한다. 외부 강사를 파견해 타인과 의사소통할 때 감정을 전달하는 방법, 직업생활을 유지하기 위한 위생 수칙, 자기 관리 방법 등에 대한 별도 교육도 한다.

본격적인 취업 단계에서는 ‘취업 성공 패키지’ 등 다양한 취업 지원이 제공된다. 비장애인 청년을 대상으로 하는 지원보다 좀 더 친절한 방식이다. 구체적으로 면접을 앞두고 실전 연습을 진행하고, 면접 당일에는 면접 장소에 동행하면서 근로장애인의 긴장을 풀어준다. 최대한 역량을 발휘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것이다. 직업재활시설을 떠나 일반 기업으로 일자리를 옮기는 걸 두려워하는 장애인에게는 상담 서비스를 제공한다. 이밖에 추가적인 직업 훈련, 취업 알선, 견학 등도 지원한다. 취업에 성공한 후에는 근로지원인 제도를 통해 새 직장에 적응하기 위한 도움을 받을 수 있다.

금전 지원은 장애인 근로자와 사업체 모두에게 특히 만족도가 높다. 적은 급여를 받는 장애인 근로자의 생활 안정을 돕기 위해 마련된 제도로, 전환 준비 단계에서 장애인 근로자에게 월 30만원의 고용전환 촉진 수당을 지원한다. 기업에서 일정 기간 고용을 유지하면 장애인 근로자와 사업주 모두 추가 지원금을 받을 수 있다. 장애인 근로자는 3개월 동안 총 100만원, 사업주는 장애인 근로자에게 지급하는 임금의 75%를 최대 3년간 지원받는다. 취업 후 안정적으로 새 일자리에 적응하도록 하는 유인이 되는 셈이다.

전환지원 사업을 거쳐 일반 사업체에 취업한 장애인은 299명에 이른다. 2020년 사업 시작 당시 3.6%였던 전환 성공률은 지난해 약 10%로 증가했다. 조향현 한국장애인고용공단 이사장은 “전환지원 사업은 직업재활시설에 있는 최중증 장애인 근로자가 당당한 사회의 일원으로 자리 잡을 수 있도록 지원하는 사업”이라며 “앞으로 장애인과 사업체에 대한 지원을 다각도로 확대해 최저임금 미만을 받는 장애인을 단계적으로 줄여가는 청사진을 그리고 있다”고 했다. 이어 “궁극적으로는 모든 장애인이 어디서 일하든 최저임금 이상을 받고, 경력이 쌓일수록 더 많은 월급을 받는 등 적정한 대우를 받으면서 일할 수 있는 구조를 만드는 게 목표”라며 “앞으로도 장애인의 안정적인 직장 적응을 위한 지원을 아끼지 않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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