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아오는 강원 - 특별함 있는 강원도 농어촌살이] 6. 박찬우·오병아 부부

박현철 2024. 5. 23. 0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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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금 덜 벌고 느리게 살래” 자급자족 ‘인생 2막’ 시작
주말농장 시작, 횡성 청일면서 새출발
남편 박씨 사서근무 틈틈이 농사 병행
“작은 학교 모두가 형·동생” 교육 만족
부인 오씨 파트타임 근무로 삶에 여유
“문화생활 어려움 없어 시골생활 만끽”
SNS 개설해 귀농·귀촌인 경험 공유
농산품 가공 ·판로개척 창업계획도

번잡한 도시에서의 생활을 정리하고 횡성군 청일면 초현리 농촌마을에서 ‘제2의 인생’을 꿈꾸고 있는 청년부부가 있다. 주인공은 박찬우(42)·오병아(38)부부. 이들 부부는 통상적인 사람들처럼 시골에 로망 때문에 귀농·귀촌을 했다기보다는 주말이면 횡성에서 농사를 짓던 오도이촌(五都二村)의 삶이 이도오촌(二都五村)의 삶으로 자연스럽게 바뀐 케이스다. 오병아씨의 부모는 횡성 출신으로 청일면에 땅이 있어 이들 부부는 주말농장 생활을 마감하고 4년 전 청일면으로 귀촌해 전문직에 근무하며 틈틈이 농사를 짓는 자급·자족의 삶을 누리고 있다.

▲ 박찬우·오병아씨 부부가 횡성군 청일면 초현리 밭에서 농사일을 하고 있다.

청일면에 살다

남편 박찬우씨는 대구에서 대학을 졸업한 뒤 성남과 서울 강남을 오가며 영상제작과 컴퓨터 관련 업종에서 프로그래머로 일했다. 10여년 전 컴퓨터그래픽 업체를 창업했고, 코로나19 때는 온라인 강의 플랫폼을 만들어 판매하며 도시에서 생업을 유지했다. 부인 오병아씨는 유치원교사로, 남편 박 씨를 만나 결혼한 뒤 하린(11)·하륜(9)을 키우며 워킹맘으로서의 역할에 충실했다. 그러던 중 코로나19가 한창 유행하던 지난 2020년 오 씨는 남편에게 부모의 땅이 있는 횡성 청일면으로 이주를 제안했고, 박 씨 또한 시간과 장소에 구애받지 않는 프리랜서였기에 큰 고민없이 횡성에서의 새출발을 결정했다.

박 씨는 횡성 이주 후 감리회사에서 2년을 근무했고, 올 1월부터 우천면에 있는 작은매화도서관에서 사서로 근무하고 있다. 자신이 거주하는 청일면에서 우천면까지 출·퇴근 하는 불편은 있지만 평소 책을 좋아하는 탓에 도서관 주민과 어린이들에게 책을 찾아주거나 말벗이 돼주는 등 친숙한 동네 서점 아저씨 같은 인자한 모습이다.

그는 “요즘 친구들이 횡성에 일자리가 있냐라고 물어보는 경우가 많은데, 기존 일자리를 고수하면 없겠지만 횡성에서 일자리 구하는 것이 그리 어렵지 않다”면서 “사서자격증은 없지만 궁금한 것은 스스로 배우면서 도서관 이용자들과 소통하고 있다”며 직업에 대해 애정을 드러냈다.

특히 그는 아이들의 교육환경에 더 큰 만족감을 나타냈다. 그는 “작은학교인 청일초교에 다니는 7명 모두가 형, 동생처럼 지낸다. 도시에서는 피아노, 태권도, 악기 등을 배우려면 돈이 들어가지만 여기에서는 모든 것이 무료로 할 수 있다. 친구들은 조금 적을 수 있지만 가족처럼 지내는 이곳으로 이주를 잘한 것 같다”고 소회를 밝혔다.

▲ 횡성군 청일면으로 귀촌한 박찬우씨는 평소 우천면에 있는 작은매화도서관에서 사서로 근무하고 있다

시골 슬로 라이프

주말이면 박 씨와 오 씨 부부는 아이들과 할일이 더 많다. 이들 부부의 초현리 집 앞 600여평의 텃밭에는 웬만한 작물은 다 심었다. 호박, 콩, 고추, 파, 마늘, 딸기, 블루베리 등 자급자족을 위한 터전인 셈이다.

물론 자급자족하고 남는 것은 지인들에게 판매하며 시골에서의 삶을 공유한다. 주말에는 오 씨의 부모도 성남에서 횡성으로 내려와 농사일을 함께 한다. 고추를 수확하면 고추장을 만들고 블루베리는 잼을 만든다. 메주도 직접 담근다. 밭 옆에는 10여마리의 닭도 키우고 닭장 청소도 한다. 최근에는 ‘시골 슬로우 라이프’라는 이름으로 블로그를 만들어 횡성으로 귀촌한 젊은 부부와 아이들과 함께하는 스토리도 올렸다. 블로그에는 전통방식인 ‘인걸기’로 밭을 갈고 고추를 심는 모습을 사진과 함께 상세히 설명하거나, 직접 재배한 콩으로 ‘콩국수 만들기’를 소개하며 시골에서의 삶을 알리고 있다.

부인 오 씨 역시 횡성으로 이주할 때 구체적인 계획을 가지고 있지 않았지만 도시에서 바쁜 삶을 보내기 보다는 시골에서 느리게 살며 인생 2막을 준비하고 싶다는 생각에 자연스럽게 귀촌을 결심했다. 그녀는 성남에 있을 때 유치원 교사였는데 모든 시간을 유치원에 할애하다 보니 자신을 돌아볼 여유가 없었다. 횡성으로 귀촌 후 인근 초등학교를 돌며 방과후 교사를 하고 있는 그녀는 일주일에 3~4일 하루 3시간 정도를 근무하고 귀가해서는 아이들을 돌보며 틈틈이 농사일을 하고 있다. 그녀는 횡성에서의 삶 자체에 만족하고 있다. 주변에 모든 것이 자연이고 차를 타면 자연 속으로 드라이브하는 듯한 느낌이기 때문이다. 오 씨는 “일반적으로 시골은 문화소외지역이라고 하지만 횡성에 와서 오히려 문화생활을 더 많이 한다”며 “횡성읍내로 나가면 문화예술회관에서 매월 정기적으로 좋은 공연을 무료로 관람할 수 있고, 영화관에서는 여성들에게 한달에 한번 최신 개봉작을 무료로 보여준다”고 횡성에서의 문화생활에 흡족해했다.
 

▲ 박찬우·오병아씨 부부가 횡성군 청일면 초현리 집에서 하린·하륜이와 농촌생활을 만끽하고 있다.

농촌에서 희망을 일구다

박찬우·오병아씨 부부는 시골에서의 삶은 느리지만 부지런하게 보내고 있다. 직장생활과 농사일 뿐 아니라 주말이면 틈틈이 시간을 내서 농원 매표소나 카페 등지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며 희망을 일구고 있다. 이들 부부는 “귀농·귀촌을 하는 적지 않은 사람들이 건강상의 이유나 채무에 쫓겨서 어쩔 수 없는 경우가 있다”면서 “귀농·귀촌을 결심하더라도 낯선 환경에 적응해야 하는 탓에 망설여지는 이유”라고 설명했다.

박 씨는 “앞으로 엄청난 돈을 벌어도 좀더 좋은 집을 짓고 좋은 차를 살수 있겠지만 현재 농촌에서의 생활이 크게 바뀌지는 않을 것”이라며 “시장에서 사먹던 바나나를 백화점에서 살 수 있겠지만 맛은 똑같기 때문”이라고 자신의 철학을 말했다.

그는 횡성에서 농사를 지으면서 그 동안 습득한 노하우를 자신의 전공인 컴퓨터와 연계한 온라인 창업을 준비하고 있다. 인구소멸지역에 고령화하는 농촌에서 농산물 판로개척에 어려움을 겪는 주변 사람들의 농산물을 팔아주거나 농산물 가공품을 만들 계획이다. 이들 부부는 최근 초보 귀농·귀촌인에게 자신들의 경험을 알리기 위해 최근 블로그와 인스타 등을 개설했다. 인구소멸의 농촌지역이 지만 각자의 삶에서 조그마한 행복의 소중함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이들 부부는 “도시에서는 소비를 많이 하기 때문에 300만~400만원을 벌어도 한달에 모을 돈이 없다. 도시에서는 남보다 잘 나가는 것처럼 보이려고 대출을 받아 고급차를 사는 과시형 문화가 만연해 있다. 반면 시골에 살면 과시하지 않아도 된다. 앞으로는 정착한 삶의 터전에서 창의적인 미래를 일궈나가겠다”고 포부를 밝혔다. 이들 부부가 보여주는 시골에서의 삶은 아름답고 단단하다. 농업과 시골에 대한 낭만주의에 기댄 삶은 아니다. 새로운 삶의 방식으로, 도전할 만한 새로운 업으로, 농촌을 바꾸고 성장시키는 동력이 되고 있다. 박현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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