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문화칼럼함께하는세상] 일손을 원해도 사람이 온다

2024. 5. 22. 23: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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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도한 건 아니지만 가리봉동은 개방적이다.

노후주택 담장과 비좁은 골목을 넘어 소리와 냄새가 오가는 걸 막을 수 없고 일을 나갔는지 집에 있는지 무슨 일이 생겼는지 서로 알게 되는 것 또한 막을 수 없다.

그녀들이 무슨 일로 저리됐는지 알 수 없으나 이주민 여성 혼자 한국에서 살아남기가 정신력의 한계를 초과할 만큼 힘들었나 보다.

경제가 살아날 때는 공급과 수요를 연결할 세일즈맨의 역할이 긴요했고 몸을 바쳤던 세일즈맨은 성공한 인생이라 자처했으나 오래가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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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도한 건 아니지만 가리봉동은 개방적이다. 노후주택 담장과 비좁은 골목을 넘어 소리와 냄새가 오가는 걸 막을 수 없고 일을 나갔는지 집에 있는지 무슨 일이 생겼는지 서로 알게 되는 것 또한 막을 수 없다.
며칠 전에 경찰이 찾아와 중국어 통역사를 찾았다. 뉘 집 대문 앞에 낯선 이가 넋을 놓고 앉아 있어 신고가 들어왔는데 대답을 못 하는 걸 보니 한국인이 아닌 것 같단다. 그이가 여성이란 얘기에 걱정이 앞서 뒤따라갔다.
정종운 서울 구로구가족센터장
골목, 골목, 골목을 지나치는 동안 골목에 나와 있는 사람들과 부딪쳤다. 골목 끝 대문 앞 계단에 한 여성이 웅크리고 있었다. 이 개방적인 동네의 이목을 집중시킬 만큼 그녀의 상태는 심란해 보였다. 중국어로 물어보니 표정으로 반응한다고 경찰이 반색을 했고, 요즘 무슨 스트레스 받는 일이 있냐는 질문에 눈물을 흘렸다며 우리 통역사는 가슴 아파했다. 골목을 돌아나올 때 아주머니 한 분이 읊조렸다. ‘에고 얼마나 힘들었으면 저리됐나?’ 마음까지 개방적이다.

지난봄에도 중년여성 한 명이 센터 로비를 거처 삼아 드나들었다. 말도 통하지 않았고 눈도 맞출 수 없는 그녀가 한편 걱정되고 한편 두려웠다. 홀연히 자취를 감추었을 때 존재마저 잊고 살았는데 훗날 가리봉동장님한테 들은 바로는 어찌어찌 중국 가족과 연락해서 고국으로 돌아가게 했단다.

‘보호시설이나 가족의 도움을 받을 수 있을 테니 다행이다.’ 이렇게 나를 안심시키면서 부담을 덜어내는 게 나의 대처방식인데 ‘에고 얼마나 힘들었으면 저리됐나?’ 아주머니 혼잣말이 자꾸 떠올랐다.

그녀들이 무슨 일로 저리됐는지 알 수 없으나 이주민 여성 혼자 한국에서 살아남기가 정신력의 한계를 초과할 만큼 힘들었나 보다. 이 골목에선 얼마나 힘들었으면 ‘쯧쯧’하는 시선이 있어 다행이다. 어디서든 ‘누칼협’이란 냉정한 훈수만은 두지 말길 바란다. 누가 칼 들고 협박한 것도 아닌데 왜 와서 고생이냐는 말은 누구라도 돌려받을 부메랑이 될 수 있으니 말이다.

일찌감치 ‘세일즈맨의 죽음’이 예견했다. 경제가 살아날 때는 공급과 수요를 연결할 세일즈맨의 역할이 긴요했고 몸을 바쳤던 세일즈맨은 성공한 인생이라 자처했으나 오래가지 않았다. 그 쓸모를 다하고 냉정하게 해고될 때 세일즈맨 윌리 역시 정신을 놓았다. 무능한 가장, 못난 아버지가 개인의 어리석음 탓으로 돌려졌다. 그러나 시대를 초월해 윌리의 억울한 인생에 백배 공감하는 사람들이 끊이지 않음은 왜일까?

우리 사회가 부족한 노동력을 외국인으로 대체하는 정책은 어쩔 수 없을 것 같다. 하지만 가성비 좋은 노동력만 구매하리란 기대는 오산이다. 막스 프리슈는 이주노동자에 대해 “우리가 원한 건 일손이었는데 사람이 왔다.”고 했단다. 한낱 노동력에 그치는 사람은 없다. 노동력을 발휘하기 위해 얼마나 많은 것이 작용하는지 매일 느끼며 살고 있지 않은가. 우리가 일손을 원해도 사람이 온다.

정종운 서울 구로구가족센터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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