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난한 사랑노래’ 부른 민중시 거목 지다 [고인을 기리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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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농무'를 비롯해 '갈대', '목계장터', '가난한 사랑노래' 등 서정적인 민중시를 창작해온 한국 시단의 원로 신경림 시인이 22일 오전 암 투병 중이던 경기 고양시 일산 국립암센터에서 별세했다.
시인인 곽효환 한국문학번역원장은 "'창비 시선' 1번인 '농무'는 우리 시단에서 민중시의 첫 장을 연 시집으로, 민중시의 장도 열었지만 서정성과 문학적인 길도 동시에 담보한 분"이라며 "훌륭한 인품으로 후배들이 불편한 얘기를 해도 괘념치 않고 받아주신 품이 넓고 따뜻한 분이었다. 후배들에게 시로도, 인품으로도 영향을 주신 분"이라고 추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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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년 89세… 1956년 등단
1973년 창비 첫 시집 ‘농무’
민초 슬픔 서정적으로 표현
한국 시단 민중시 첫 장 열어
시론·평론집 등도 활동 왕성
“징이 울린다 막이 내렸다/ 오동나무에 전등이 매어달린 가설무대/ 구경꾼이 돌아가고 난 텅 빈 운동장/ 우리는 분이 얼룩진 얼굴로/ 학교 앞 소줏집에 몰려 술을 마신다/ 답답하고 고달프게 사는 것이 원통하다/ 꽹과리를 앞장세워 장거리로 나서면/ 따라붙어 악을 쓰는 쪼무래기들뿐/ 처녀애들은 기름집 담벼락에 붙어 서서/ 철없이 킬킬대는구나”(‘농무’ 부문)
“가난하다고 해서 사랑을 모르겠는가/ 내 볼에 와 닿던 네 입술의 뜨거움/ 사랑한다고 사랑한다고 속삭이던 네 숨결/ 돌아서는 내 등 뒤에 터지던 네 울음./ 가난하다고 해서 왜 모르겠는가/ 가난하기 때문에 이것들을/ 이 모든 것들을 버려야 한다는 것을”(‘가난한 사랑노래’ 부문)
시인은 시편 ‘가난한 사랑노래’처럼 민초들의 슬픔과 한, 굴곡진 애환을 질박하면서도 친근한 언어로 서정적으로 노래하는 등 민중성과 서정성을 겸비한 시작 활동을 이어왔다. 충주고와 동국대 영문과를 졸업했고, 민족문학작가회의 이사장과 한국민족예술인총연합 상임의장, 동국대 석좌교수 등을 역임했다.
시인인 곽효환 한국문학번역원장은 “‘창비 시선’ 1번인 ‘농무’는 우리 시단에서 민중시의 첫 장을 연 시집으로, 민중시의 장도 열었지만 서정성과 문학적인 길도 동시에 담보한 분”이라며 “훌륭한 인품으로 후배들이 불편한 얘기를 해도 괘념치 않고 받아주신 품이 넓고 따뜻한 분이었다. 후배들에게 시로도, 인품으로도 영향을 주신 분”이라고 추모했다.
빈소는 서울대병원 장례식장 2호실. 장례는 고인과 그의 작품이 한국 현대시와 문단에서 차지하는 위상을 고려해 대한민국 문인장으로 치러질 예정이다. 발인은 25일 오전 5시30분. 장지는 충북 충주 노은면 선산. 시인을 기억하는 한, 그의 ‘농무’는 끝나지 않을 것이다.
“보름달은 밝아 어떤 녀석은/ 꺽정이처럼 울부짖고 또 어떤 녀석은/ 서림이처럼 해해대지만 이까짓/ 산구석에 처박혀 발버둥친들 무엇하랴/ 비료값도 안 나오는 농사 따위야/ 아예 여편네에게나 맡겨 두고/ 쇠전을 거쳐 도수장 앞에 와 돌 때/ 우리는 점점 신명이 난다/ 한 다리를 들고 날라리를 불거나/ 고갯짓을 하고 어깨를 흔들거나”(‘농무’ 부문)
김용출 선임기자 kimgija@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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